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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3년 11월 08일(金)
실크로드의 동쪽 끝은 中시안 아닌 한국의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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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사전/정수일 편저 /창비

사전을 읽다 몰입되는 일은 드물다. 지하철에서 ‘실크로드 사전’을 읽다 세 정거장이나 지나쳤다. 사전은 딱딱하다는 상식을 깬다. 동서문명교류의 중추적 역할을 한 지역인 ‘수이아브(텐산 산맥의 북쪽 기슭)’, 원나라 시대에 이슬람 역법을 참고해 만든 역법인 ‘서정경오원력’,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다양한 여행기 등을 망라한 저자의 내공은 독자들을 탐험적 상상력의 세계로 이끈다. 때론 혼을 쏙 빼놓는다.

문명교류사에 등장하는 중요한 단어와 역사적 전개과정 등을 명징하게 반영하면서도 흥미롭게 읽히는 것이 이 사전의 미덕이다. 용어에 대한 뜻풀이로서의 사전(辭典)이 아니라 새로운 개념정리까지 응축시킨 사전(事典)이다. 실크로드학의 방대한 용어와 문명교류사를 이만한 통찰력을 가지고 압축할 수 있는 학자가 또 있을까. 저자는 아랍어, 페르시아어, 말레이어, 중국어, 일본어 등 10여 개 언어를 구사한다. 그의 비범한 언어실력이 다양한 국가가 걸쳐있는 실크로드(사진)를 연구하고 사전을 편찬하는데 결정적 도움이 됐음을 물론이다.

이 사전은 실크로드학과 문명교류에 관한 묵직한 성과를 집대성한 세계적 역작이다. 1092쪽 분량인 이 사전에는 표제어 1907개에 색인이 8015개나 실렸다. 전면 컬러로 약 350장의 사진과 지도도 실었다. 편저자의 답사 여행의 흔적도 곳곳에서 묻어나온다. 표제어 가운데 중요한 항목은 원고지 50∼100장 분량을 할애해 상세하게 서술했다. 때로는 잘못된 사료(史料)에 대한 비판도 마다치 않는다. 편저자는 중세 이탈리아 여행가인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 중 일부는 전해 들은 것을 기록해 잘못 혹은 과장된 것도 있다고 지적한다.

‘왕오천축국전’이나 ‘지봉유설’ ‘지구전요’ 등 우리의 값진 고전 속에서 그려진 실크로드인의 모습도 재현했다. ‘실크로드 사전’에서 ‘자바섬’ 항목을 찾아보면 1614년 간행된 한국 이수광의 지리서 ‘지봉유설’의 한 대목이 튀어나온다.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자바인에 대해 ‘얼굴빛이 거무칙칙하고 원숭이 머리에 맨발’이라고 썼다. 위대한 모로코의 여행가 ‘이븐 바투타’(1304∼1368년)에 대해서는 세계 곳곳에 있는 무슬림 여행자들의 숙소이자 보급기지인 자위야 덕에 그가 장장 30년간 10만여㎞를 답파할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로마에 대한 한(韓)의 이해’라는 항목을 보자. ‘후한서’에서 로마는 지중해 서쪽에 위치한 ‘대진(大秦)’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렸고, 여러 가지 중국 고서들에서 로마가 이헌, 이간, 이건 등 3가지 표기로 쓰였다는 점을 정리해놓고 있다. 문명교류사 분야의 세계적 학자인 저자는 간첩활동 혐의가 드러나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0년 형집행정지로 출소한 뒤 2003년 특별 사면·복권됐다. 편저자는 감옥에 있던 1998년 4월부터 2000년까지 약 2년 반 동안 편지지 앞뒷면을 빽빽하게 활용해 실크로드의 기본개념을 정리했다. 도배하고 남은 종이에 실크로드 지도를 그리기도 했다. 그는 출소할 때까지 원고지 6000장 분량에 표제어 974항목을 갖고 나올 수 있었다. 이 원고가 실크로드 사전의 밑거름이 됐다. 경상북도의 ‘코리아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중심과제 중 하나로 선정되면서 사전 편찬 작업은 날개를 달았다.

이 사전의 가장 큰 특징은 실크로드의 동쪽 끝이 중국 시안(西安)이 아니라 한반도 경주로 규정한 것이다. 경주에서 출토된 로만글라스는 신라와 로마의 교역이 일찍부터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이 사전과 함께 도록-실크로드 육로편도 함꼐 나왔다. 경상북도와 한국문명교류연구소가 함께 펴낸 이 도록은 로마에서 실크로드 59개 도시와 유적·유물을 집중 소개하고 있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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