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장 사진보다 더 선명한 자연의 ‘소리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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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노래를 들어라 / 버니 크라우스 지음, 장호연 옮김 / 에이도스

본래 스튜디오 기타리스트였던 저자는 ‘새로운 소리’에 대한 호기심으로 생물음향학을 전공해 40여 년 동안 전 세계를 누비며 1만5000여 종의 생물음(生物音)을 녹취해 왔다. 그가 평생 찾아다닌 소리에 대한 이야기와 보통 사람들이라면 일상에서 미처 듣지 못하는 소리, 자연의 소리가 가르쳐주는 의미 등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더불어 눈이나 시각이 아닌 귀와 소리에서 출발하는 저자의 신선한 통찰도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흥미로운 것 중의 하나가 ‘소리풍경(Soundscape)’이란 개념. 풍경이란 시각을 전제로 한 것이지만, ‘소리풍경’이란 특정한 순간에 우리 귀에 포착되는 모든 소리를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말을 이른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소리를 하나하나 나누지 않고 소리의 경험을 총체적으로 새로운 맥락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물의 소리와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 분주한 출퇴근길 소음이 뒤섞여 있는 도시 공원을 보자.

이 공원의 소리풍경은 오로지 그곳 특유의 음향적 표식을 갖고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생물과 지구상의 모든 장소는 저마다 독특한 음향적 표식을 갖고 있고, 그 소리풍경이 바로 생태계의 평가 지표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줄곧 ‘소리풍경이 1000장의 사진보다 훨씬 더 많은 사실을 이야기한다’고 주장한다. 소리를 통해 거기에 얼마나 많은 동물이 서식하고 있는지, 그곳의 생태가 건강한지 등을 모두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바닷속 산호초가 생명력 있게 살고 있는지, 혹 죽어가는지도 소리주파수를 통해 알 수 있단다. 간벌하기 전의 숲과 벌목 뒤의 숲은 눈으로는 큰 차이가 없지만 소리풍경은 완전히 다르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소리는 그곳의 상황과 풍경을 선명하게 재현하지는 않지만 상상력을 자극한다. 눈으로 보는 TV보다 귀로 듣는 라디오가 더 많은 상상을 하게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책의 저자에게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저자는 1990년대 중반의 어느 날 짐바브웨의 울창한 원시림에서 아침의 소리풍경을 녹음한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때가 묻지 않은 지역이었다. 그를 안내한 생태학자에 따르면 수만 년 동안 야생의 소리가 거의 바뀌지 않은 곳이었다. 저자는 그 숲에서 아침의 소리를 들으며 수백만 년 전 인류의 선조들이 아프리카 대륙에 처음 등장했을 때 낙엽수가 대부분이었던 숲이 어떤 모습이었을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소리가 음악으로 변천돼 가는 과정을 탐구하기도 하고, 환경소음 문제의 심각성과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저자는 1960년대 이후로 자신이 녹취한 소리풍경의 절반쯤은 이제 녹음자료에서만 들을 수 있을 뿐이라며 아쉬워한다. 그렇다면 이미 훼손된 야생의 소리풍경은 회복할 수 있을까. 저자의 대답은 희망적이다.

희망의 증거로 내세우는 게 1986년 체르노빌 원전 붕괴사고. 이후 생태계는 완전히 파괴됐지만 불과 몇 년 만에 사고지역에서는 야생의 소리풍경이 회복되고 있었단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간혹 문장 옆에 ‘’ 표식이 돼 있는데 그 부분에서 소개하는 소리를 인터넷 웹사이트(www.thegreatanimalorchestra.com)로 들을 수 있다는 뜻이다. 저자가 녹음한 소리풍경이 근사하니 가능하다면 소리와 함께 책을 읽을 것을 권한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