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경제, 이제는 사회적 기업이다>대기업도 반한 고품질 장갑… 종업원 전원 장애인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1일 대구 동구 각산동 화진산업 장갑공장 반코팅 생산라인에서 장애인들이 제조된 장갑을 포장하고 있다.

지난 11일 오후 대구 동구 각산동 화진산업 장갑공장. ‘윙∼ 턱, 윙∼ 턱’ 하는 소리를 내며 반코팅 생산라인에서 앞면이 붉은색으로 변한 장갑이 정확히 3초마다 3켤레씩 떨어졌다. 3명의 종업원은 장갑을 10켤레씩 포장하고 2명은 다시 300켤레씩 자동화 기기로 묶었다. 또 5명은 손처럼 생긴 기계(몰드)에 면장갑을 일일이 끼우고 있었다. 500㎡의 공장에서 제조되는 장갑은 하루 2만 켤레. 쉴새없이 돌아가는 생산라인 앞에 있는 종업원들의 손놀림은 매우 바빴다. 또 옆에서는 10여 명의 종업원들이 면장갑을 편직기로 생산했다. 붉은색 색소를 배합한 라텍스 반코팅장갑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같이 장갑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25명으로 모두 청각·지적장애인들이다. 이 공장은 지난 2009년 7월 서기석(43) 대표가 설립했다. 당시 공장에는 5명의 장애인이 근무했다. 하루 생산 장갑은 2000켤레. 공장은 당시 한국장애인고용공단으로부터 장애인표준사업장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장갑을 찾는 곳은 많았지만 이익은 박해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따라 화진산업은 공장 옆에 장갑 판매매장을 열고 본격적으로 시장개척에 나섰다.

“장애인 3명이 교대로 근무하면서 매장을 가동하고 직접 공장을 뛰어다니면서 판매에 나섰어요. 이 결과 입소문이 퍼져 앉아서 주문받고, 생산인력도 매년 보충하면서 판매해 연간 12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어요.” 서 대표의 말이다.

소문은 대기업으로도 퍼졌다. 2011년 말부터는 SPP조선이, 2012년 11월부터는 SK 계열사가, 지난 8월부터는 CJ대한통운이 장갑을 구매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화진산업 전체 장갑 매출액의 45%를 담당하고 있다. 건설, 조선, 운송에는 질이 좋은 장갑이 필요했으며 화진산업의 제품이 걸맞아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들이 대부분인 장갑공장에 남다른 관심을 갖는 이도 있다. 강병무(57) 공장장. 그는 다른 업체에서 근무하다 장애인고용사업장에 대한 애착으로 이곳을 찾았다. 그는 “코팅액이 굳으면 한 차례 40만 원이 넘는 비용이 든다. (장애인들이) 기계에 자주 기름칠을 하지 못하거나 점검하지 못해 발생하는 손실을 막는 역할을 한다”며 우회적으로 장애인들에 대한 애정을 표시했다. 그는 1년 전부터 이 공장에 근무 중이다. 청각장애 3급으로 2007년 12월부터 근무 중인 최태옥(여·57) 씨는 “다른 회사에 근무할 때는 장애인이라는 편견에 상처를 받곤 했지만 이 회사는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 줘서 일하는 데 자신감이 넘친다”고 말했다.

화진산업에는 장갑공장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화진택시회사도 있다. 화진택시는 1981년 서 대표의 부친이 설립했다. 당시 근무인원은 택시 20대에 40명으로 모두 일반인이었다. 그러나 1999년 서 대표가 부친과 함께 일하면서 43대에 일반인 12명과 장애인 24명이 근무하는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서 대표는 2010년 택시회사를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았다. 이 회사는 장갑공장 바로 옆에 있다. 같은 날 이곳에서는 시각장애인과 지적장애인 2명이 운행을 앞둔 택시 세차에 정신이 없었다. 정모(28·지적장애 3급) 씨는 “내가 할 일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재미있다”며 미소를 잃지 않고 연신 택시를 닦았다.

택시회사에는 노조가 설립돼 있다. 그러나 20년이 넘었지만 파업 한 번 한 적 없다고 한다. 비결은 장애인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한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대구시내 택시회사는 대구시 택시운송조합과 대구택시노조에서 맺은 협약을 따른다. 그러나 이 회사는 이를 따르지 않고 자체적으로 다시 규약을 만들었다. 하루 운송수입금은 3% 정도 덜 내고 한 달 근무도 다른 택시회사와 달리 3일 정도 덜하는 것이다. 4년째 근무 중인 지체장애인 택시기사 권모(45) 씨는 “직원들을 배려하는 회사 덕분에 무엇보다 운송수입금 스트레스는 없다”고 말했다.

이같이 서 대표가 장애인들과 동고동락하는 기업체를 꾸리게 된 것은 1990년대 말 불어온 경제위기가 계기가 됐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실직자들이 택시회사로 쏟아지고 돈도 많이 풀리면서 택시운송업은 의외로 호황을 맞았다”며 “근 3년 동안 큰 수익을 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경제위기가 올 것을 예측하고 장애인 고용에 나섰다. 당시 대구지역 상당수 택시업체들이 장애인을 고용했다가 실패하고 다시 경영 위기를 맞았지만 꿋꿋하게 재교육을 하면서 버티고 고용장려금을 받으면서 큰 충격없이 탄탄대로를 걸었다. 택시회사도 연간 11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화진산업은 전체 직원 78명 중 57명이 장애인이다. 나머지 10명은 취약계층, 11명은 일반인이다.

화진산업은 2008년 4월 장갑공장과 택시회사를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았다. 대구시는 사업 개발비와 시제품 개발비를 적극 지원하고 광고홍보에 나섰으며 관할 동구청은 일자리 창출에 힘을 보탰다. 지난 8월 초에는 서 대표의 아내가 경영에 참여했다. 이로 인해 여성기업으로도 인정받으면서 8월 말에는 그 동안 사용했던 ‘화진테크 화진택시’라는 회사이름을 화진산업으로 변경했다. 서 대표는 “공공기관에서 장갑을 사더라도 장애인표준사업장뿐만 아니라 사회적기업, 여성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되면 더욱 많은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10년 2월부터 한국사회적기업중앙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서 대표는 “사회적기업 운영자 상당수가 인건비 등 정부의 예산 지원이 끝나면 기업을 이끄는 데 큰 애를 먹곤 한다”며 “이 같은 지원에 얽매이지 않고 제품의 가격과 품질 등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전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쟁력이 있는 제품에는 대기업들이 스스로 뛰어들어 제품구매에 나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투자는 제가 했지만 회사는 직원이 있어서 움직인다”며 “직원이 주인인 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서 대표의 이 같은 경영철학이 배어있는 화진산업은 7월 SK 행복나눔재단이 주최한 ‘세상 사회적 기업’ 콘테스트에서 성장기업 부문 2등을 차지했다.

대구=글·사진 박천학 기자 kobbl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