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 >감염되면 100% 枯死 ‘소나무 AIDS’ 1그루가 1㎞ 전염… 135만 그루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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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철 푸르름을 자랑하며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해온 ‘국민 나무’ 소나무가 유례 없는 수난을 당하고 있다. 20세기 초·중반 일본 전역의 소나무를 초토화한 뒤 1988년 부산 금정구 금정산을 시작으로 국내에 상륙한 소나무 재선충병은 국내 발생 25년을 맞은 최근 들어 다시 무서운 속도로 번지고 있다. 제주와 남부지방을 휩쓴 재선충병은 중부 지방을 거쳐 수도권까지 위협하면서 ‘재난’ 수준으로 확산되고 있다. 현재의 재선충병 확산세를 차단하지 못할 경우 국내 산림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소나무 숲이 수십 년 내에 황폐해질 수 있고, ‘남산 위의 저 소나무’는 애국가 제창 때나 접할 수밖에 없는 사태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 소나무 재선충병 얼마나 심각한가 = 소나무 재선충병 방제에 초비상이 걸렸다. 지난 2005년 ‘소나무 재선충 방제 특별법’이 제정되는 등 적극적인 방제 사업으로 한때 잠잠하던 재선충병이 올해 다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현재 재선충병이 발생해 방제가 진행 중인 지역은 전국 229개 기초자치단체의 24.9%인 57곳. 특히 제주, 울산, 경남 김해·밀양·거제, 경북 포항·경주, 경기 양주 등 9개 지역은 관내 전역에 피해가 발생해 ‘극심 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세계 7대 경관지역이라는 제주의 경우 올해부터 내년 4월까지 베어내야 할 소나무 고사목이 20만 그루에 달할 전망이어서 방제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올레길 주변은 물론 한라산 턱밑과 세계자연유산인 만장굴 주변 일대 등 주요 관광지까지 재선충병이 번져 경관을 망칠 판이다. 전국 최대 피해 지역은 경남으로 63만 그루의 피해가 예상되며, 경북 29만 그루, 울산 12만 그루 등의 순으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소나무 재선충병 피해목에 대한 집계가 시작된 것은 지난 1988년으로, 이때부터 지난해까지 약 530만 그루의 소나무가 피해를 입었다. 소나무는 국내에서 참나무(166만㏊)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종으로, 현재 우리나라에 16억 그루(145만㏊) 정도가 자생하고 있다. 국내 전체 산림 면적의 22.7%가 소나무 숲이다.

재선충병이 극성인 올해의 경우 연간 피해목이 100만 그루를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산림청은 올해부터 내년 4월 말까지 16개월 동안 약 135만 그루의 피해목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지난 25년간 발생했던 총 피해의 4분의 1이 1년 4개월 남짓한 기간에 집중되는 셈이다. 전체 소나무 수를 감안하면 아직 피해가 미미한 규모지만 방제 방어선이 뚫릴 경우 전국으로 확산될 위험성도 크다.

◆ 재선충은 어떻게 소나무를 죽이나 = 소나무 재선충병에 한 번 감염된 소나무는 100% 말라죽는다. 치료제가 없어 한 번 감염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전염성도 강해 감염목이 1그루라도 발견되면 주변 반경 1㎞ 내의 소나무를 전부 베어내는 ‘모두 베기’를 해야 할 정도로 피해가 극심하다. 이 병은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나 북방수염하늘소에 의해 재선충이 나무 조직 내부에 침입하면서 일어난다. 매개충의 몸 안에서 서식하던 1㎜ 길이의 실처럼 가느다란 재선충이 빠르게 증식하면서 나무의 수분과 양분 이동 통로를 막아버린다. 1쌍의 재선충은 3주일이 지나면 20만 마리로 늘어날 만큼 증식 속도가 빠르다. 매개충은 죽은 나무의 조직 속에도 남아 있기 때문에 벌목, 약품 처리, 소각, 파쇄 등을 통해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중부권에서는 소나무 외에 잣나무가 재선충 피해를 입기도 한다. 예방약으로 ‘나무 주사’가 있긴 하지만 1차례 접종에 20만 원 가까운 비용이 들기 때문에 문화재 보호구역 내 소나무 등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 사용된다. 매개충이 돌아다니는 5월 이후엔 항공 방제도 대책 중 하나지만 양봉 농가들과 환경단체의 반발로 제약을 받고 있다.

◆ 재선충병은 천재(天災)인가 인재(人災)인가 = 본래 재선충병 매개충의 활동 범위는 반경 300m 이내에 불과하다. 태풍 등을 타고 이동해도 3㎞ 정도 움직일 수 있는 게 고작이다. 매개충의 활동을 통해 자연적으로 확산되는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지만 감염목의 ‘인위적 이동’이라는 변수가 개입하면 상황은 크게 악화된다. 산림청은 올해 소나무 재선충병이 다시 확산된 이유에 대해 일선 지방자치단체의 부실 방제 등 인위적 원인과 자연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우선 일선 지자체장들의 관심 부족이 문제로 지적된다. 산림 보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단체장들이 초기 대응을 미적거리다 화를 불렀다는 지적이다. 제주 등 20여 개 지자체에서 지난 4월 매개충이 성충이 되기 이전에 7만3000그루 정도의 고사목을 제거하지 않고, 방치한 사실이 산림청에 의해 확인됐다. 감염 가능성이 큰 벌목된 소나무류가 화목 보일러 땔감이나 목재 등으로 무분별하게 외부로 반출돼 새로운 지역으로 피해가 확산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올해의 경우 남부지방의 고온현상과 가뭄 등으로 매개충의 활동기간이 길어졌고, 개체 수도 급증하면서 삽시간에 피해가 번졌다는 분석이다.

◆ 산림청 대책은 = 산림청은 지난 10월부터 ‘재선충병과의 전쟁’을 선포한 상태다. 본청 사무관급 이상 간부 전원에게 전담 지역을 할당, 해당 지자체의 방제와 감염목 제거를 지도 감독하도록 했다. 피해가 확산되지 않도록 매개충이 돌아다니기 이전인 내년 4월 말까지 연인원 23만여 명을 투입해 현장에 남아 있는 피해 고사목 88만 그루를 전량 제거한다는 계획이다.

감염목은 산불 우려 때문에 현장 소각이 어렵다. 그 대신 나무를 잘라 소독한 뒤 비닐로 묶어 밀봉하는 훈증처리법과 나무를 잘게 부수는 파쇄처리법 등 2가지 방법으로 재선충을 제거한다. 내년 방제예산으로 573억 원을 확보해 고사목 제거에 449억 원, 나무 예방주사 주입에 44억 원, 항공 및 지상 방제 등에 80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신원섭 산림청장은 “다른 산림사업을 잠정 중단하더라도 재선충병 방제에 총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가용 인력과 예산을 총동원하고 있다”며 “매개충을 고립, 차단, 박멸하는 강력한 방제전략을 통해 내년부터 재선충병의 기세를 크게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전 = 김창희 기자 ch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