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 3.0>‘예스터데이’에 꽂혀 신문·사진 500점 모아… 이젠 책까지 3권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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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13-11-2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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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금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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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경기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 지하 1층에 마련된 ‘비틀스 마니아’ 서강석 씨 작업실엔 책과 신문, 포스터, 음반 등 비틀스 관련 자료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그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당시 뉴욕포스트 신문 1면에는 1980년 존 레넌을 살해한 마크 채프먼 기사가 실려있다. 수원 = 임정현 기자 theos@munhwa.com


1970년 ‘렛 잇 비(Let It Be)’ 음반을 마지막으로 해체한 전설의 밴드 비틀스. 1980년대 중·고교를 다닌 지금의 40, 50대들에게 비틀스는 가깝고도 먼 아티스트다. 해체 이후 그들의 새 음반과 공연이 없으니 잊어지기 쉬웠고 1980년대 새로 유입된 강한 록의 물결은 팝 같은 록을 구사하는 비틀스를 약한 존재로 내몰기 일쑤였다. 비틀스를 기억하려는 세대들은 그들이 남긴 노래와 메시지의 힘을 믿을 뿐이었다.

비틀스 마니아 1세대로 불리는 서강석(42·사진) 씨도 그들 중 한 명이다. 그는 2007년 네이버 카페 ‘한국 비틀즈 마니아’를 개설해 현재 3만 명에 육박하는 가장 많은 회원수를 자랑하고 있다. 해외에서 나오는 비틀스와 관련된 소식은 모두 이 카페에 즉시 전달되고, 인터뷰 번역, 비틀스 노래 전곡 해설 및 비틀스 일대기 번역, 관련 소장품이나 희귀품들을 이 카페에서 모두 만날 수 있다.

그가 비틀스와 인연을 맺은 건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3, 4학년 때쯤, 서세원이 진행하던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만난 비틀스의 ‘예스터데이(Yesterday)’가 그 시작이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팝송 차트’를 소개하던 이 프로그램에서 서세원은 “이 노래가 지금 17위인데, 1위에 올라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한 곡”이라고 소개했다. 서강석 씨는 서세원의 설명과 곡조에 감명받고 그때부터 라디오에서 비틀스 노래가 나오기만을 학수고대했다.

중 2년 때, 비틀스 노래 15곡 정도를 꿰뚫자 음악 잡지 ‘월간 팝송’ 마지막 페이지에 수록된 팬클럽 BFC(Beatles Fan Club) 모집 광고를 보고 가입 절차를 밟았다. 또래 친구들 3, 4명을 제외하고 주요 회원들은 모두 대학생. 회비 5000원을 내면 회지를 받아볼 수 있었다.

“비틀스 팬클럽은 아마 국내에선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팬클럽에 가입하기 전까진 그냥 막연하게 음악만 좋아했는데, 가입 이후엔 선배들이 들려주는 비틀스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어요. 특히 존 레넌의 메시지가 사춘기 소년에겐 영웅의 서사시처럼 들렸어요. 평화를 주창하고, 현실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그의 행동들이 놀라움으로 다가왔거든요. 요즘 체 게바라 티셔츠를 입은 청소년들이 느끼는 정서와 비슷한 감정이랄까요?”

학창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음악은 헤비메탈이었다. 메탈리카냐 메가데스냐를 놓고 학교에서 설전을 벌이는 일이 다반사였고, 마이클 솅커나 레드 제플린 정도가 아니면 록 이야기에 명함도 꺼내기 힘든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들 사이로 비틀스는 당시 상황에선 초라한 화두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해체된 비틀스에 천착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 특별한 이유가 있었어요. 하나는 제가 접할 수 있는 비틀스에 대한 정보의 양과 질이 다른 밴드보다 훨씬 뛰어났다는 점이에요. 당시 밴드 정보는 ‘월간 팝송’과 ‘음악 세계’ 두 개의 잡지에서 다 나왔는데, 모두 흔히 접할 수 있는 정보들이었죠. 하지만 팬클럽이 주는 비틀스 정보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훌륭했어요. 또 하나는 감성적인 면인데, 소녀 팬들이 그들의 공연을 보고 울부짖고 기절하고 비명 지르는 현상이 궁금했어요. 지금까지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춘기적 호기심이 더 컸어요.”

그가 처음 산 비틀스 음악은 1000원짜리 불법 테이프였다. 첫 LP(Long Playing Record·옛 전축판)는 ‘비틀스 발라드’, 첫 CD는 ‘플리즈 플리즈 미(Please Please Me)’였다. 구매의 시작은 불법과 짝퉁이었지만, 대학 때까지 모은 수집량은 엄청났다. 당시 소위 ‘백판’(불법 유통 LP)으로 불리던 LP만 150장에 달했다. 신문, 잡지, 사진집 등 비틀스 관련 서적만 500개 이상이고, ‘비틀즈, 젊음, 그 영원한 기록들’ ‘존 레논-인 히스 라이프(In His Life)’(공저) ‘비틀스-앤솔로지’(공저) 등 직접 번역한 책도 3권이다.

지난 12일 찾은 경기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은 입구부터 비틀스 관련 수집품으로 넘쳐 났다. 1984년 비틀스 팬카페 시절부터 모은 음반과 책, 사진과 포스터 등이 질서정연하게 놓여져 있었다. 그는 “대학 때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서 수집품도 거의 다 날렸다”며 “여기에 있는 수집품 대부분은 그 이후에 모은 것들”이라고 했다.

오프라인 팬클럽에서 PC통신으로 소통의 창구가 바뀌고, 직장을 가지면서 그도 자연스레 마니아적 기질에서 점점 벗어나기 시작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작은 보습학원을 운영할 땐 더욱 그랬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비틀스가 다시 그의 심장에 들어온 것은 2001년 조지 해리슨의 사망 소식을 듣고 나서부터. 알 수 없는 슬픔이 전신에 퍼지면서 비틀스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됐다.

“거기에다 비틀스에 대한 잘못된 정보들이 인터넷에 자주 떠돌았어요. 그래서 제가 직접 정보 수정 차원에서 카페를 만들고 활동에 나서기 시작했어요. 먼지 쌓인 자료들을 카페에 올리고, 질문에 답하다 보니, 어느새 비틀스 인생에 다시 끼어들었죠.”

2000년 이후, 그는 비틀스 자료를 목록화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음반보다 원서를 읽기 시작했다. 그래서 3권의 번역서도 냈고, 최근 차린 출판사 ‘러버 소울’을 통해 비틀스 관련 책도 낼 계획이다. 인터뷰 말미. 팬과 마니아의 차이는 무엇인지 물었다. “팬은 치부를 감추고 좋은 면만 부각시키려는 경향이 강하죠. 반면 마니아는 객관적인 시점으로 치부도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비틀스의 모든 면이 옳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수원 = 김고금평 기자 dann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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