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해전 참전 하사관, 모친과 다투다 불질러

지난 1999년 발생한 제1연평해전에 참전했던 해군 하사관 출신 40대 남성이 당시 충격으로 오랜 정신질환에 시달려오다 “이제 그만 잊으라”는 어머니와 다툼 끝에 집에 불을 질러 구속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지난 19일 오전 4시 50분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한 아파트 복도 앞에서 술을 마시고 어머니 A(67) 씨와 다툰 데 앙심을 품고 어머니와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불을 지른 혐의(현주건조물방화)로 해군 하사관 출신 박모(41) 씨를 구속했다고 22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박 씨는 아파트 복도에 놓여 있던 전단지에 1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인 후 창을 열고 방 안에 던져 이불과 책상 등을 불태운 혐의를 받고 있다. 다행히 불은 6분 만에 진화돼 47만 원 상당의 재산피해를 내는 데 그쳤고 이른 시간이었던 탓에 아파트 주민들의 대피소동도 없었다. 박 씨는 어머니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조사 결과 박 씨는 지난 1999년 6월 북한군의 기습으로 발생한 제1연평해전에 참전했던 해군 하사관 출신으로 제대한 이후 무직 상태로 지내왔으며 전쟁 당시 받았던 충격 때문에 종종 정신질환에 시달려 온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평소 TV에 북방한계선(NLL)이나 북한 도발 등의 뉴스가 나오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격앙돼 술을 마셨던 그는 최근 연평도 포격 도발 3주기가 다가오면서 NLL 관련 뉴스 등이 많아지자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니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박 씨가 “참전 이후 술을 많이 마시면 귀신이 나온다” “꿈에서 계속 군대에 있을 때 전쟁했던 장면이 나온다”며 횡설수설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 당일에도 박 씨는 TV에서 NLL 관련 뉴스를 접한 뒤 만취 상태로 집에 들어왔고 A 씨가 “더 이상 연평해전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 정신병원에 한번 가보지 않겠느냐”고 말하자 “지금 나를 무시하고 있는 거냐”며 화를 내고 다툼을 벌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박 씨는 A 씨의 얼굴을 한 차례 때리는 등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군 제대 후 박 씨는 특별한 전과는 없지만 술을 먹고 시비가 붙어 행패를 부리는 등의 이유로 여러 차례 법원에서 약식명령을 받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박 씨를 그대로 풀어줄 경우 다시 어머니를 찾아가 위협하거나 또 술을 먹고 유사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판단이 들어 구속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연 기자 leewh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