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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3년 11월 22일(金)
침침한 감옥이 고급 호텔로… 코코아 창고가 콘서트홀로… 황량함 벗고 ‘아름다운 변신’
기발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로 유럽의 도시 활력있게 재창조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 / 김정후 지음 / 돌베개

영국 멀던시의 블랙워터라는 강을 둘러싼 개발문제를 취재한 일이 있다. 경관 좋은 블랙워터 강 주변은 고급주택이 우후죽순격으로 들어설 수밖에 없는 입지조건이었다. 하지만 멀던시는 주민들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개발도 허용하지 않았다. 유럽의 많은 지방 정부들은 자연보존뿐 아니라 전통이 깃든 건물에 대해 보존을 둘러싼 분쟁이 생길 때도 보존을 위해 단호한 태도를 취한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동경하는 ‘아름다운 유럽’이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도시철도, 발전소, 제철소, 양조장, 가스저장고, 탄약공장 등 낙후돼 허물어야 할 산업 시설조차 문화예술 공간으로 바꾸는 유럽인들의 도심 재생 프로젝트는 천재적이다. 미켈란젤로, 볼테르, 괴테의 자손답게 이들은 고정관념을 송두리째 바꾸는 인문학적 지혜를 도심 재생에 창조적으로 접목시키고 있다.

건축가이자 도시사회학 박사인 저자는 유럽에서 10년 이상 거주하면서 사양길로 접어든 석탄·철강 도시 등이 어떤 과정을 거쳐 문화·예술 도시로 바뀌는지를 깊이있게 살폈다. 책은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 스웨덴 등 유럽 전역에 고르게 퍼져 있는 산업 유산 재활용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빛과 시간조차 얼어붙을 것 같은 감옥이 호텔로 변신하고, 코코아 창고가 콘서트홀로 바뀌는 모습은 마치 마술적 리얼리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핀란드 헬싱키 남부 카타야노카 감옥의 변신은 가장 드라마틱하다. 유서깊은 카타야노카 감옥은 175년간 수많은 죄수가 거쳐간 혐오시설이었다. 감옥에 갇힌 수인들은 친구들에게 농담으로 ‘난 국립호텔에서 지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말이 현실에서 실현된 곳이 지금은 ‘베스트 웨스턴 호텔’로 바뀐 카타야노카 감옥이다. 방치된 감옥을 106개의 객실을 가진 최고급 호텔로 개조하는 데 성공했다. 리노베이션 원칙은 역사성을 지닌 기존 감옥의 원형과 분위기를 최대한 유지하는 것이었다.

“복도 양옆으로 요란한 장식 없이 객실이 일렬로 늘어서 있고, 군데군데 설치된 철제 난간과 계단을 볼 수 있다.(중략) 또한 감옥 관리를 위해 구역을 나누었던 중간 철문을 그대로 남겨둠으로써 마치 놀이동산에 만들어 놓은 ‘감옥체험’ 공간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121∼122쪽)

2000년 런던 동쪽에 문을 연 ‘와핑 프로젝트’도 대담하다. 1890년에 세워진 와핑 수력발전소는 수력발전의 효용성이 떨어지면서 찬밥 신세가 됐다. 건물 재생은 그 외형을 살리면서 내부는 새로운 기능에 맞게 바꾸는 것을 기본문법으로 삼는다. 하지만 호주 출신의 예술가 줄스 라이트는 발전소 당시 사용했던 내부를 고스란히 남겨둔 채로 이곳을 독창적 레스토랑과 갤러리를 갖춘 매력적인 예술공간으로 만들어냈다. 1층에 자리잡은 와핑 푸드라는 레스토랑은 늘 손님들로 북적인다. 발전소 내부의 녹슨 기계 속에서 식사를 한다는 것은 세계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경험이다.

같은 해 영국 런던 템스 강변에 문을 연 테이트모던 현대미술관(Tate Modern Art Gallery) 역시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를 개조해서 만든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세계적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독일 에센의 촐퍼라인 탄광은 1851년부터 1986년까지 약 135년 동안 유럽 최대의 탄광이었다. 이곳이 문을 닫자 도시 경제는 붕괴위기로 치달았다. 이 도시는 재개발 대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재생하는 것을 선택했다. 탄광에 건립된 권양탑이 20세기 디자인 미학의 결정체라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창조적 미술·디자인 작업을 병행하고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는 등 전략적 개발을 밀어붙였다. 이곳은 오늘날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다양한 박물관이 자리를 잡아 문화 예술 기지로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유럽의 문화수도로까지 선정되었다. 독일 뒤스부르크 환경공원 역시 60만 평(약 198만3471㎡)에 이르는 거대한 부지의 티센 제철소가 전신이다. 낙후된 제철소 시설물을 고스란히 활용한 것이 이 공원의 특징이다. 1997년 문을 연 이곳의 굴뚝은 도시전망대로, 용광로는 스킨스쿠버장으로, 철제 파이프는 미끄럼틀로 변신했다. 이곳을 둘러보는 이들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기발하고 다양한 아이디어의 향연에 놀라게 된다. 암벽등반코스로 탈바꿈한 외벽과 굴뚝을 오르는 특이한 광경, 녹슨 철판 49개를 연결해 만든 ‘철의 광장’ 위를 뛰어노는 청소년 사진을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해상 교통의 요충지였던 독일 함부르크는 수송 체계의 변화로 인해 더 이상 독일 제2의 도시라는 명성을 되찾아올 수 없었다. 도시의 도약을 위해 함부르크가 선택한 것은 항구의 재생이었다. 이름을 ‘하펜시티’(Hafencity·항구 도시)라고 붙일 만큼 이곳을 하나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굳건했다. 콘서트홀로 변신한 코코아 창고는 화려한 왕관을 씌워놓은 것 같다. 2017년에 완공될 이 엘베 필하모니 콘서트홀이 묵직한 감동을 준다. 이곳에는 2000석 규모의 대형 콘서트홀과 소형 콘서트홀, 250개의 객실을 보유한 호텔 등이 동시에 들어설 계획이다.

세계 곳곳에서 황량하고 쓸모없어진 산업유산이 멋진 예술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동원되고 있지만, 휴머니티와 지속가능성, 켜켜이 쌓인 시간의 기억을 후대에 물려주겠다는 집념이 그 바탕에 공통적으로 깔려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화신백화점, 단성사, 스카라극장, 동대문운동장, 남산야외음악당 등 건축사와 역사에 남을 건물들이 어이없이 허물어지고 사라졌다. 서구적 건물을 동경하면서 소중한 문화유산인 전통의 자취를 허문 셈이다. 이젠 한국에서 역사를 느끼게 해 주는 장소는 고궁 외에는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정부와 시민, 건축가 등이 함께 지혜를 짜내면서 오래된 건물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유럽 사례를 뼈아프게 배워야 하는 이유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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