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미사일 위기’ 막은 JFK ‘13일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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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F. 케네디의 13일 / 셀던 M. 스턴 지음, 박수민 옮김 /모던타임스

#번디의 보고를 받은 존 F 케네디(사진)는 분노에 찬 표정과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 작자가 나한테 이럴 수는 없어.” 그러고는 이날 아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를 소집하라고 지시했다. 로버트 케네디는 정찰 사진을 본 즉시 이렇게 외쳤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이런 소련 개자식들.”(54쪽)

#회의가 시작되면서 방 안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합참의장이 운을 뗀다. “오늘 아침은 각하께서 합참 수뇌부의 말을 직접 들으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군 최고통수권자가 회의를 주관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 주기라도 하듯 케네디 대통령은 합참의장의 말에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곧장 자기 할 말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네디는 부자연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계속 횡설수설한다. “이 문제에 대해 말 좀 어… 우선 어… 그 문제가 무엇 어… 적어도 어…제가 보기에는, 어… 첫째 어….”(127쪽)

책은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케네디 대통령의 말을 방송중계하듯 생생하게 전한다. 책이 전하는 케네디의 발언들은 위대한 리더는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갖는다는 통설과는 다른 것들이다. 22일은 케네디 대통령 서거 50주년이다. 책은 케네디 영웅신화의 이면을 들춰낸다. 하지만 저자는 케네디가 위기 국면에서 오만과 독선에 빠지지 않았으며 쿠바를 공습하거나 침공하라는 끈덕진 압박 속에서도 자신의 입장을 계속 굽히지 않았다고 썼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1962년 10월 16일부터 28일까지 13일간 소련의 핵탄도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하려는 시도를 둘러싸고 미국과 소련이 대치하여 핵전쟁 발발 직전까지 갔다. 1962년 10월 14일 미국의 첩보 정찰기 U-2는 쿠바에 배치된 소련의 준중거리탄도미사일을 발견한다.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은 이틀 뒤 이 사실을 보고받고 국가안전보장회의집행위원회(엑스콤)를 소집한다. 이후 13일간 엑스콤 비밀회의에서는 인류의 운명을 뒤흔들 만한 대화들이 오갔다. 케네디 대통령은 ‘13일’의 진실을 알게 해줄 녹음테이프를 남겼다. 피그스 만 침공이 실패했을 때 케네디는 회의 자리에서 침공 계획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작전이 실패하자 말을 바꾼 사실에 불같이 화를 냈다. 이 때문에 케네디는 10월 16일 자신의 집무실과 각료회의실에 동생 로버트 케네디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게 녹음 장치를 설치했다. 그렇게 해서 이른바 ‘케네디 테이프’가 만들어졌고 저자는 테이프의 해제작업에 참여한 바 있다.

저자는 쿠바 미사일 위기를 담은 ‘케네디 테이프’를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내 독자들이 대화 내용을 정확하고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사건에 관여한 행위자들이 느꼈을 불확실성을 생생하게 묘사해 소설과도 같은 스릴을 느끼게 해준다.

이 기간에 케네디는 자문위원과 의회 지도자들의 호전적인 조언에 대해 거의 혼자서 맞선 경우가 많았다.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조차 10월 18일에는 이틀 전의 신중한 태도를 버리고 합동참모본부가 제시한 계획을 옹호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실행 가능한 군사적 행동으로 전면 침공이나 다름 없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공습은 하루면 실행 가능하지만 침공은 오랜 시간 지속해야 하고 긴장도 증가시킨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국방장관 논리의 허를 찔렀다.

테이프에 따르면, 로버트 케네디까지 매파에 가까운 입장을 취했다. 존 F 케네디는 각종 군사적 조치가 내포하고 있는 우려스러운 의미를 확실히 이해했다. 핵전력에 있어서 미국이 소련에 비해 압도적으로 앞서 있었지만, 핵전쟁에서의 승리가 의미 없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었던 셈이다. 동생을 밀사로 보내 미사일 맞교환이라는 밀약을 하게 하고, 전직 유엔 관리를 통한 이면 전략까지 준비해 놓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케네디가 군사 충돌을 피하고 정치적으로 절묘한 해법을 내놓는 과정을 디테일하게 그려낸 역작이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