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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윤석진 교수의 드라마 세상 게재 일자 : 2013년 11월 27일(水)
기황후, 당신의 조국은 어디였습니까
기황후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국권 상실기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나타난다. 국가의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개인의 잇속만 챙기는 부류와 잃어버린 국권을 되찾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희생하는 부류가 그들이다. 역사는 보통 전자를 매국노라 평가하고, 후자를 애국자로 기록한다. 매국노의 이기적인 행적에도 불구하고 애국자의 헌신적인 희생이 있었기에 조국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역사적인 평가를 두고 정치적 논쟁이 일어나면서 올바른 역사인식에 혼란을 가져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일신의 영달과 안위 때문에 조국을 매도했던 매국노의 반민족적 행위에 대한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정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문제가 일부 정치 세력에 의해 왜곡되고 굴절돼 정치적 논쟁의 도구로 전락하면서 올바른 역사의식의 형성을 방해하는 것은 역사의 비극을 되풀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소재로 취하면서 극적인 재미를 위해 허구적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역사드라마가 종종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도 작가의 상상력이 역사적 평가와 다를 때 발생한다.

역사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드라마로서의 극적 재미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화되면서 역사 왜곡이나 고증 시비에서 자유로워졌지만, 여전히 역사드라마의 무게 중심은 ‘드라마’가 아닌 ‘역사’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려 말기에 원나라로 끌려간 공녀 출신으로 황후의 자리에 오른 기황후의 일대기를 다룬 ‘기황후’가 방영되면서 역사드라마에서의 역사 왜곡과 고증이 다시 문제가 되고 있다. ‘원나라에 공물로 바쳐진 여자’라는 의미의 ‘공녀’는 불행했던 역사의 단면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나라의 황후가 된 뒤 형제들을 내세워 자신의 조국이었던 고려의 내정에 간섭하고 침략하는가 하면, 고려 백성들을 착취했던 기황후의 반민족적 행위가 용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 왜곡 논란 때문에 ‘기황후’를 제외한 다른 인물들의 이름을 바꾸고 ‘허구’임을 강조하면서 방영을 시작한 ‘기황후’는 공녀로 차출되어 끌려가다가 원나라 군대의 수장이 쏜 화살을 맞고 죽어가는 어머니의 최후를 목도해야 했던 어린 기승냥의 참담하고 가혹한 성장 과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면서 역사 왜곡 논란을 피해가고 있다. 또한 생존을 위해 남장 여자로 살아가던 ‘기승냥(하지원 분)’이 고려 말기 쇠락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절치부심하는 ‘왕유(주진모 분)’, 고려로 유배 아닌 유배를 온 원나라 황태제 ‘타환(지창욱 분)’과 인연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면서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어머니의 비참한 죽음과 백성의 안위를 보장해 주지 못하는 고려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커갈수록 자신에게 닥친 운명과 정면으로 맞서는 기승냥의 행위는 극적인 설득력을 갖게 된다. 대원제국의 지배자로 군림한 고려 여인 기승냥의 일대기가 극적인 재미를 더할수록 역사 왜곡 논란이 거세질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원나라의 마지막 황후로 30여 년간 실권을 행사하면서 고려를 능멸했던 기황후의 조국은 과연 어디였을까?

고려의 입장에서 보면 매국노에 지나지 않았을 ‘기황후’의 일대기가 드라마틱하게 그려지면서 설득력을 갖게 될수록, 시청자의 역사 인식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작가의 상상력에 방점을 찍은 ‘팩션사극’임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기황후’의 역사 왜곡이 우려스러운 것도 그래서이다. 그녀의 조국은 과연 ‘고려’였을까, 아니면 ‘원나라’였을까? 그녀에게 묻고 싶다. 기황후, 당신의 조국은 어디였습니까?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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