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왕국의 제왕’… 꽃보다 아름다웠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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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계절의 정원으로 남은 사람 / 칼 푀르스터 지음, 고정희 옮김 엮음 / 나무도시

독일 숙근초 육종가이자 정원사이며 작가였던 칼 푀르스터(1874∼1970).

한국의 일반 독자에겐 생소한 이름이지만 그는 독일 20세기 정원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남긴 인물이다. 정원왕국의 칼 대제, 꽃의 제왕으로 불렸으니 그에게 쏟아진 사랑과 권위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정원계의 황제 자리에 오른 것은 그가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정원 예술가였기 때문도, 그의 정원의 꽃이 유난히 아름다웠기 때문도 아니다. 물론 그는 뛰어난 예술가였고, 그의 정원은 아름다웠지만 그가 숱한 정원예술가와 달랐던 점은 그의 신념과 철학이었다.

독일 역사 중에서 가장 파란이 많았던 격동의 세월을 통과한 그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꽃과 꽃으로 가득한 정원을 통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가졌고, 전세계, 전세계가 안된다면 최소한 독일 전역에 정원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는 평생 이 신념을 복음처럼 전파했고, 사람들에게 정원을 처방했다.

이 책은 그가 열다섯에 정원사 교육을 받기 시작하며 쓴 편지부터 세상을 뜨기 직전인 96세에 쓴 글과 메모까지 긴 세월의 흔적을 담았다. 30대 중반에 포츠담 보르님 구에 있던 감자밭을 구입해 숙근초 재배 및 육종원을 만든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정원에 머물며 362종의 숙근초 신품종을 만들고, 27권의 책을 썼다. 그의 5000㎡의 정원은 많은 정원인들, 정원 예술가들의 순례지였고, 그는 그곳에서 언제나 마음 좋은 할아버지처럼 사람들을 맞이했다고 한다.

책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8년 뒤 부인과 친지들이 내놓은 ‘어느 정원에 대한 기억’이라는 제목의 두툼한 책을 옮긴 것이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 그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에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일곱 계절의 정원’을 부각시키기 위해 제목을 바꿨고, 책도 일곱계절순으로 엮었다. 편역자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쓴 그의 삶에 대한 글도 함께 엮었다.

그는 1년을 우리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사계절이 아니라 초봄, 봄, 초여름, 한여름, 가을, 늦가을, 겨울의 일곱계절로 나눴는데, 이는 계절을 좀 더 세분한 것이 아니라 1년 내내 늘 꽃이 피어있는, 그러면서도 언제나 변화하는 정원을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이책에는 천문학자를 아버지로 둔 덕분에 알렉산더 폰 훔볼트가 설립하고 칼 프리드리히 쉰켈이 설계한 왕립천문대, 그것도 3000평이 넘는 정원이 딸린 천문대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보낸 어린 시절, 대낮에도 머리 위 별을 생각했던 아버지에게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 별이었다면, 어렸을 때부터 꽃과 풀을 사랑했던 그에게 별은 꽃이었다는 이야기, 1930년대 만들기 시작한 포츠담 보르님 정원의 혁신적인 스타일, 그리고 그곳에서 머물며 세상을 상대로 다정하게 들려줬던 정원과 꽃 이야기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그가 1930년대 개발한 보르니머 스타일은 당시 유행했던 기하학적 정원을 거부하고 수초를 비롯한 온갖 식물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풍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해외에 전파돼 미국에 뉴 웨이브 스타일, 영국의 뉴저먼 스타일로 주목받았고, 국내에서는 지난달 폐막한 순천만 국제 정원 박람회에 칼 푀르스터 정원이 조성되기도 했다. 한편 이번에 그의 딸이자 역시 정원예술가인 마리안네 여사가 남긴 정원 일기 ‘내 아버지의 정원에서 보낸 일곱 계절’도 함께 나란히 번역, 출간됐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