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神들의 음료’ 인가 ‘악마의 마약’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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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과 잔혹의 커피사 / 마크 팬더그라스트 지음, 정미나 옮김/을유문화사

“오, 커피여! 그대는 모든 근심을 쫓아 주고, 학자들은 그대를 탐하여 마지않는도다. 그대는 신과 벗하는 이들의 음료이니.”(1511년 아라비아의 시 ‘커피 찬미’)

“(왜 남자들은) 시커멓고 탁하고 맛도 고약하고 쓴 데다 냄새도 불쾌한 흙탕물 같은 그런 걸 끓이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돈을 허비한단 말인가?”(1674년 ‘커피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탄원’)

이처럼 양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식품도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커피에 얽힌 정치·경제·문화·전쟁 등 거의 모든 것을 망라하고 있다. 우선, 커피에 관한 상식 하나. 저자에 따르면, 카페인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섭취되는 향정신성 마약이며, 커피는 카페인의 첫째 가는 전달식품이다. 카페인 함유 음료의 세계 소비량을 환산하면 전 세계적으로 매일 1인당 한 잔씩 마시는 꼴이다. 미국에서는 그 섭취 형태를 막론할 경우 습관적으로 카페인을 섭취하는 비율이 전 인구의 90% 가량에 이른다.

현재의 커피 문화는 전 세계적으로 가히 열풍에 가깝다. 인터넷 상에는 커피를 주제로 하는 블로그와 뉴스그룹은 물론이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웹사이트들까지 있고, 스타벅스 매장들이 다른 커피하우스나 체인점들과 경쟁을 벌이며 모든 길거리 모퉁이마다 들어서 있는 지경이다. 하지만 이 같은 대중화는 최근에 들어와서의 일이다.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커피를 둘러싼 논란은 끊임없었다.

1912년 등장했던 커피 대용음료 ‘포스텀’의 광고는 이렇다. “커피에 함유된 마약, 즉 카페인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어야 할 밤에 잠을 못 이루고 있습니다. 커피의 이런 짜증스러운 단점을(단점이 이것 하나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느껴 보셨다면 이제는 커피를 끊고 포스텀을 마시지 않겠습니까.” 20세기의 전환기에 수많은 개혁론자들은 커피를 ‘악마의 마약’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커피를 무절제하게 마실 경우 정신이 돌거나 심지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고 여겼다.

그런가 하면 하루에 열 잔 넘게 커피를 마셔도 흥분한다거나 안절부절못하는 일 없이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도 간혹 있다. 이는 카페인 내성이 생겨서 그런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갑자기 커피를 끊으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될 수도 있다.

커피의 유래부터 시작하는 책은 어떻게 전 세계인들이 커피에 빠져들게 됐는지 그 전파 과정을 보여준다. 참혹한 환경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노예들, 그리고 노예제가 없어지고 나서도 크게 변하지 않은 노동조건에서 일하던 농민·노동자들의 모습과 커피가 농장주들의 배만 불리던 과거를 조명한다. 이어 커피 마케팅 전쟁의 시작과 더불어 격동의 시대가 열리는 모습을 생생하게 되살린다.

커피의 역사는 논란과 정략으로 점철돼 있다. 예컨대 커피는 아라비아 국가들과 유럽에서 혁명적 선동의 원흉으로 여겨져 금지됐던 적이 있었다. 지상 최대의 건강 파괴범으로 비난받았는가 하면 인류에게 베풀어진 혜택으로 찬사되기도 했다. 과테말라에서는 인디언 원주민들을 여전히 예속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핵심인가 하면, 코스타리카에서 민주주의 전통이 싹트거나 미국 서부가 온순하게 길들여지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우간다에서는 독재자 이디 아민이 국민들을 살상할 당시에 커피가 사실상 그의 자금줄이 돼 주었고, 니카라과에서는 산디니스타 반군이 소모사 대통령의 커피 농장을 탈취함으로써 혁명이 시작됐다.

저자는, 커피 보급에 큰 역할을 했던 1·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커피를 생산하는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내전이 시작되는 과정 또한 훑고 있다. 이와 맞물려 한쪽에서는 라디오와 TV가 등장하며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커피 마케팅의 세계가 그려진다. 그 와중에 스페셜티 커피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커피의 시대가 열렸고, 그 열풍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