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골프 이야기>골프가 유일한 취미인 ‘golfholic’… 癌·風도 극복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피홍배 최경주재단 이사장이 지난해 10월 경기 용인 88골프장에서 열린 자선골프 행사에서 어프로치샷을 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피 이사장이 이날 행사에 참석한 최경주 프로와 담소하며 함께 걷는 모습. 최경주재단 제공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프로골퍼 최경주(43·SK텔레콤)가 ‘아버지’라 부르는 피홍배(77) 최경주재단 이사장. 그는 “골프가 없었으면 지금처럼 걸어다닐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골프를 ‘정말로’ 사랑하고, 골프가 건강을 챙겨주는 유일한 취미라고 여긴다.

1964년부터 골프를 쳤으니, 그의 구력은 50년이 다 됐다. 골프 인구래야 400여 명 정도밖에 안 되던 시절, 연습장도 골프장도 드물던 때였다. 18홀짜리는 현 서울 성동구 능동 어린이대공원에 ‘군자리코스’가 유일했고, 태릉에 9홀짜리가 있었던 게 고작이었다. 대학 졸업 후 1960년대 청와대 총무비서실에 근무하던 그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권유로 골프를 접했다. 우연히 골프채 하나를 얻어서 배우기 시작했다. 지프차를 타고 다녔지만 트렁크가 없어 뒷자리에 골프백 대신 군용담요로 채를 싸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처음 사용했던 던롭 골프채는 차 트렁크에 넣어 놨다가 도둑을 맞기도 했다.

그는 공직을 그만두고 1972년부터 폐기물 처리사업체인 ㈜삼정을 설립해 지금은 전선 및 전기자재 부품을 제조 판매하는 등 5개 계열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그러나 사업을 일구기 위해 서울과 부산을 매일 다니다시피 하며 과로가 겹쳤기 때문일까. 50대 후반에 중풍이 왔다. 하지만 기적처럼 다시 일어섰다. ‘여기서 끝인가’ 하는 생각에 자살 충동까지 일었지만 의사의 권유로 수술을 결심했다. 수술 후 바로 남들이 잠든 심야시간 아내 부축을 받으며 병원 계단을 오르내릴 정도로 재활에 골몰했다. 그는 뇌 수술받은 지 3년 만에 클럽 챔피언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골프에 눈을 뜬 그는 실력도 삶의 의지만큼 강해졌다. 그의 베스트 스코어는 5언더파 67타로 인천시사이드골프장(현 인천국제) 백티에서 기록했다. 공식대회에서는 1996년 남성대골프장 클럽챔피언전에서 3언더파 69타를 쳐 우승했다. 그 동안 준우승과 3위는 몇차례 했지만, 60세에 처음이자 유일한 클럽챔피언에 올랐다. 68세 때까지 챔피언 티에서만 쳤다. 한창 때는 주로 프로와 로핸디캐퍼들을 상대했던 그는 동갑인 한장상 프로를 비롯해 이일안, 강영일 등 당대의 프로들과 자주 어울렸다. 비거리도 아마추어로서는 빠지지 않을 만큼 많이 나갔다. 240m 이상을 날렸다.

4년 전 그는 암이 폐와 전립선까지 퍼져 수술대에 다시 올랐다. 항암 치료를 받던 날, 이대로 누워 있으면 죽는다는 생각에 다시 치료 후 곧바로 서울 성북구 성북동 스카이골프연습장에 갔다. 티 위에 공을 놓고 샌드웨지부터 쳤다. 수술 후유증으로 손에 힘이 없어 야구배트 잡듯이 그립을 잡았다. 이후에도 매일 샌드웨지, 피칭, 9번, 8번 순으로 하루에 한 클럽만 사용하며 두 달을 반복 연습하며 다시 골프를 칠 수 있었다. 처음엔 100걸음 정도인 집 계단을 2번 왕복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요즘엔 30번을 왕복할 만큼 회복됐고, 한 번도 못했던 팔굽혀펴기를 이젠 60∼70회까지 할 만큼 체력이 강해졌다.

골프는 그에게 살아가는 방법도 가르쳐 주었다. 그는 “5시간 동안 70∼80번의 샷을 하는데, 똑같은 상황이 한 번도 없다. 바람이 불거나 공이 벙커에 빠지고, 샷 거리도 예측불허인 때가 부지기수다. 그때마다 환경 탓을 하면 무슨 발전이 있겠나? 프로가 되려면 문제의 원인을 외부가 아닌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글을 수없이 해봤다는 그는 국내에서 홀인원은 아직 한 번도 못했다. 20년 전 필리핀에서 첫 홀인원을 했고, 지난 8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블비치 인근 디해머에서 홀인원을 기록했다. 당시 치료와 휴양을 위해 머물던 때였는데 아내가 7월에 홀인원을 했고, 자신도 같은 곳에서 한 달 만에 홀인원을 작성했던 것.

그는 ‘에이지 슈트’보다 더 어렵다는 ‘에이지 브레이크’도 작성했다. 2007년 11월 최경주재단을 창립한 이듬해인 2008년 4월 경기 용인의 88골프장에서 ‘에이지 브레이크’를 달성했다. 에이지 브레이크란 나이보다 적은 타수를 치되 반드시 ‘언더파’를 기록해야 한다. 그는 72세 때 1언더파 71타를 쳤던 것. 이날 버디를 5개나 기록했던 그는 동반자였던 조카(피주환 재향군인회 전선사업단장)가 같은 코스 13번홀에서 홀인원을 작성하는 겹경사가 이어졌다. 홍민 88골프장 대표가 기념패까지 만들어줬다.

그의 골프인생에서 최경주 프로와의 인연을 빼놓을 수 없다. 88골프장 운영위원장 시절 소속 프로였던 최경주를 처음 만났다. 이후 그는 최 프로가 미국에 진출할 때 후원회를 자신이 주도해서 조직해 안정적으로 선수생활을 하도록 도왔고, 그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 프로는 2007년 자신의 재단을 만들 때 그를 재단이사장으로 추대했고, 지금도 그를 ‘아버지’라고 부를 만큼 각별하게 생각한다.

그는 골프와 기업경영에 일맥상통하는 점이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골프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규칙을 잘 지키면서 하는 신사의 스포츠”라며 “내가 몇 타를 쳐서 남들보다 잘했다는 것을 뽐내는 것보다 더 의미가 있다.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로 룰을 지키며 얻는 이윤이 가치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


■ 피홍배 골프 프로필

▲ 입문 = 1964년

▲ 비거리 = 180m(68세까지 240m)

▲ 기록 = 베스트 스코어 5언더파 67타, 클럽챔피언 1회, 홀인원 2회, 에이지 브레이크 1회

▲ 골프란 = 인생과도 같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절대 싱글 핸디캐퍼가 될 수 없다. 한 가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은 다른 일도 열심히 하게 돼 있다. 골프 싱글은 인생살이도 싱글이고 사업도 싱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