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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3년 12월 13일(金)
‘멸사봉공’은 유교의 가르침 왜곡하는 것
유교 공동체 원리 다각도 조명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500년 공동체를 움직인 유교의 힘/한형조 외 지음 /글항아리

조선 왕조 500년 역사는 세계사에서도 드문 경우다. 중국 최초로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는 겨우 15년 만에 문을 닫았으며, 중국 왕조 중 가장 번성했던 당나라도 300년을 넘기지 못했다. 천년을 이어간 로마제국이나 623년 동안 나라를 유지했던 터키의 오스만제국 정도가 예외에 속한다.

조선 왕조를 이토록 오랫동안 지속시킨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책은 세계사적으로도 드문 조선 500년을 추동시켜온 실질적인 힘인 유교의 공동체 원리를 철학적·역사적·정치사회학적 차원에서 재조명했다. 각 분야에서 유교를 연구해온 중진 연구자들이 수차례에 걸쳐 글을 발표하고 토론한 산물로 유교적 공동체론의 원리와 구현 그리고 유교적 공동체론의 현대적 접목 가능성도 모색했다.

책에 따르면 유교는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라는 가르침을 주지 않는다. 일본식 조어인 멸사봉공(滅私奉公)만큼 유교를 왜곡하는 것도 없다. 유교는 기성 권력이 아니라 ‘백성’을 생각하며, 집단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인류 보편적 관점에서 사고한다. 이를 공(公)이라고 불렀다. 유교에서 공(公)이란 ‘건전한 감응의 상호 작용과 그 네트워크’를 말한다. 사(私)란 그것을 방해하는 제반 독소를 총칭한다. 유교는 ‘사적 관심과 마비’를 치유하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그렇다면 유가(儒家)들이 설계하고 운영한 조선은 어떤 제도적 특성을 갖고 있을까. 오항녕 전주대 교수는 이를 ▲국가라는 제도의 유지와 관리를 위해 기초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정부 조직 ▲어떤 국가나 사회를 지향하는가를 보여주는 조직 등 둘로 나눈다. 전자를 행정형 조직이라 한다면, 후자는 이념형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오 교수는 언관제도가 조선사회를 지탱한 핵심 이념의 제도적 표출이고, 유교가 그런 제도를 받쳐준 이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언관제도는 왕의 전권을 제한하기 위해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등의 기관을 둬 왕에게 건의하는 제도다.

‘회복적 정의’라는 개념을 통해 유교사회를 진단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회복적 정의는 1980년대에 형사제도의 다이버전(Diversion, 형사·제재의 최소화 또는 형사처벌 절차로부터 배제 또는 중지)이나 피해자의 치유 방안을 추구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시작됐다. 기존 형사제도의 한계를 느낀 사람들의 실천 프로그램으로 시작된 회복적 정의는 유교의 교화(敎化)이념과 맞닿아 있다. 유교는 범죄나 폭력에 대해 법에 호소하기보다는 마을 안, 문중, 서원 등에서 자치적으로 교화를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책은 이 밖에 ‘여성주체성과 유교 전통: 페미니즘의 재탄생’이란 주제로 유교의 페미니즘적 해석도 제시한다.

박원재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은 “ ‘조선 500년’은 유교의 공동체적 구상이 가장 핍진(逼眞)하게 실험된 공간이다”며 “기본적으로 왕정(王政)이되 학자-관료군의 견제와 비판을 통해 통치권의 자의적인 행사가 제한되었고, 같은 맥락에서 공론(公論)이 무엇보다 중시되었으며, 복지와 계몽이 병행되는 향촌 공동체의 꿈이 그곳에서 그려졌었다”고 말했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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