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직무 관련 부조금도 뇌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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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주/이화여대 교수·행정학

대법원은 최근 공무원이 직무 관련 업체에 청첩장을 돌리고 받은 축의금에 대해 개인적 친분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뇌물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우리 사회에서 관혼상제(冠婚喪祭)에 청첩장을 돌리고 축의나 부의를 하는 것은 사교적 의례이나, 공직 수행을 위해 권한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무원에게 부정한 이득과 사교적 의례의 경계는 매우 모호한 게 사실이다. 공무원과 관련 업체 사이에는 갑·을(甲乙)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 엄격한 해석을 한 법원의 판단은 대가성을 뇌물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로 사용했던 이전의 판례에 비해 진일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부패 수준은 1∼2개의 혁신적 판결로 해결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지난 3일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2013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를 보면 한국은 100점 만점에 55점을 받아 177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46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의 반부패 수준은 2009년 39위, 2011년 43위, 2012년 45위로 최근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TI가 발표한 부패인식지수는 한국 공무원의 부패 수준이 국제 기준에서 볼 때 매우 높고 그 상태가 매년 악화(惡化)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정부의 부패 수준이 국제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것은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은 물론 외국인의 투자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시급하게 개선해야 한다.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이고 다차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부정부패를 방지하는 공직자 행동강령을 구체화하고 이와 관련된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부정부패와 관련된 공직자의 의식구조를 변화시켜 관행적인 부정부패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연줄에 의한 청탁과 뇌물을 회피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 준다면 청렴한 공직자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의 제정 노력도 이러한 관점에서 높게 평가될 수 있다.

공직자의 부당한 사익(私益) 추구를 예방하기 위한 두 번째 방법으로는,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적발하고 처벌하는 독립 기구를 갖추는 것이다. 독립 기구의 신설이 어렵다면 현재 반부패 정책을 총괄하는 국민권익위원회에 독립성을 확보해 주고 부패 관련 수사권을 부여하는 등 역할과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부패 수준이 낮은 대부분의 국가는 공직부패 수사를 전담하는 독립기구를 갖고 있다. 부패행위조사국을 두고 있는 싱가포르와 염정공서(廉政公署·ICAC)를 설치한 홍콩의 반부패인식지수가 각각 5위와 15위인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2008년 국회가 비준한 유엔 반부패협약의 의무사항인 독립성을 갖춘 부패방지기구의 존립 보장을 아직까지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가 자발적으로 국제사회에서 한 약속을 한시바삐 이행해야 한다.

이밖에도 정부의 투명성 제고, 사회 전체적인 청렴(淸廉)교육 확대, 반부패를 위한 정부와 시민사회의 협력적 거버넌스의 구축 등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반부패 정책 수단은 무수하게 많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정부패 척결을 약속했지만 부패 수준이 지속적으로 악화한 가장 큰 이유는 공약과는 달리 부정부패 척결(剔抉)을 위한 대통령의 적극적인 실천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과정에서 ‘공무원의 직무수행과 관련된 사익 추구 금지’를 강조했다. 박정부는 부패를 근절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이 선진국 도약 실패는 물론 후진국으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반부패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