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식 기자의 버디 & 보기>스코어·동반자 새록새록… ‘골프 일기’의 재미

2013년도 열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맘 때면 후회가 남고, 반성도 따릅니다. 그러면서 또 다시 내년을 기약합니다. 고사성어 중 창왕찰래(彰往察來)와 내시반청(內視反聽)은 자신을 반성한다는 의미이지만 뜻은 다른 내용입니다. 창왕찰래란 지나간 과거의 것을 잘 밝혀서 다가올 미래에 대해 분석의 기초로 삼는다는 뜻이고, 내시반청은 남을 꾸짖기에 앞서 먼저 자신을 돌아보면서 반성한다는 의미입니다.

얼마전 한 지인을 만났습니다. 나이는 60세이고 골프 실력은 핸디캡 8을 놓는 ‘짱짱한 싱글’입니다. 그는 해마다 이맘 때면 1년 동안 모았던 스코어카드를 차근차근 정리하는 재미로 산다고 합니다. 올해 골프장에서 거둔 ‘농사(?)’를 평가하고 내년 골프 목표를 세운답니다. 그는 스코어카드를 보면 누구와 쳤는지, 몇 타를 기록했는지, 내기에서 얼마를 따고 잃었는지 등 ‘골프 가계부’를 훤히 꿰뚫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젠 10여 년째 연례 행사를 해오니 스코어 카드만 봐도 그날 라운드가 한편의 영화처럼 기억이 새록새록하다고 합니다. 그가 싱글핸디 캐퍼를 유지하는 비결이었던 셈입니다.

기자에게도 “내년부터 스코어카드를 한번 모아 보라”고 권합니다. 이 말을 듣고 올해 ‘내 골프’기록을 더듬어 봤지만 좀체 생각나지도 않습니다. 불과 한 달 전 함께했던 동반자나 스코어조차 가물가물합니다. 단지 올해도 ‘라이프 베스트’에는 근접조차 못한 것만 기억납니다. 내년부터는 스코어카드를 꼭 모으겠다고 스스로 다짐해 봅니다.

그를 보면서 2년 전 취재 도중 만났던 의사 출신의 70대 중반 골퍼를 떠올렸습니다. 그 노(老)의사는 골프를 다녀올 때마다 ‘골프 일기’를 쓰고 있다며 그동안 써온, 20권이 넘는 다이어리를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그날의 스코어부터 버디와 보기, 동반자 이름 그리고 동반자의 성향까지 깨알처럼 적혀 있었습니다. 기록을 왜 남기느냐고 했더니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게 더 많기 때문”이랍니다. 그는 마치 진료기록부만 보면 그 환자의 병을 훤히 꿰찰 수 있듯이, 그 역시 자신의 골프 병을 고치기 위해 귀찮아도 잊지 않고 꼬박꼬박 적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니 동반자들이 모든 것을 기억하는 자신을 때론 존경스러운 듯, 때론 놀라는 표정으로 보는 게 재미있어졌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올해도 저물어 갑니다. 일찍 찾아온 한파와 폭설로 인해 상당수 골프장들이 문을 닫았고, 주말골퍼들 중 대다수가 골프채를 이미 내려 놓았습니다. 한 해 동안 자신의 골프를 되돌아볼 기록들을 보면 연습장에서 땀흘리며 ‘칼’을 가는 것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골프여제’ 박인비도 새 시즌을 앞두고, 옛 기록을 살피며 잘 됐을 때와 잘못 쳤을 때를 오랫동안 기억에 떠올리며 연습한다고 합니다. 독자 여러분은 내년에 어떤 골프를 치길 원하십니까.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