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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4년 01월 17일(金)
곰은 왜 사자에게 ‘동물의 왕좌’를 내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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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몰락한 왕의 역사 / 미셸 파스투로 지음, 주나미 옮김 / 오롯

역사를 둘러싼 오류와 왜곡, 이념 갈등으로 얼룩진 한국사회는 프랑스의 역사학자 미셸 파스투로가 펼치고 있는 ‘창의적인 연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사학의 수준을 높이고 역사교육의 지평을 넓히는 건 이념 논쟁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과 개척정신이 아닐까.

파스투로는 중세의 문장·인장·이미지들을 연구해 역사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40여 권의 저술 중 ‘블루, 색의 역사’ ‘악마의 무늬, 스트라이프’ 등을 통해 국내에서도 호응을 얻은 그가 이번에는 동물을 역사 연구 주제로 삼았다. ‘곰은 왜 사자에게 동물의 왕 자리를 빼앗겼을까?’ 하는 난해하지만 흥미로운 질문을 앞세워 말이다.

모든 문화는 동물의 왕을 선택해 상징체계의 중심에 놓는다. 저자는 고대 유럽에서 힘과 용기의 화신, 즉 권력의 상징이었던 곰이 12∼13세기에 이르러 유럽 숲에 존재조차 하지 않는 사자에게 왕좌를 내주는 과정을 파고든다. 파스투로는 “곰에서 사자로 동물의 왕이 교체되는 과정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난 문화현상”이라고 말한다. 즉 책은 ‘동물 위계로 본 서양 문화사’로 집약된다. 저자는 곰이라는 동물이 유럽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 살피면서 결국 인간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곰에 대한 숭배는 ‘단군신화’에도 흔적이 남아있듯이 고대 북반구지역에서 폭넓게 나타난다. 지금도 일본 아이누인과 스칸디나비아의 라플란드인, 그린란드의 이누이트 등에게서 그 전통을 발견할 수 있다. 고대 유럽도 마찬가지다. 책에 따르면 중세 초까지 동물원에서 곰은 가장 돋보이는 존재였으며 12세기까지 모든 왕실과 군주의 동물원은 여러 마리의 곰을 보유했다.

왕가의 ‘최고의 선물’이기도 해서 혼수품이나 평화협정을 위한 선물 목록에도 곰은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또, 다른 네발짐승들과 달리 직립이 가능한 곰은 사람과 닮은 존재로 여겨졌는데, 가죽을 벗기면 더욱 인간의 몸과 비슷해 곰 고기를 먹으면 ‘식인’이 됐다. 곰과 인간의 친족성을 강조한 전설과 이미지도 상당하다. 곰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들은 언제나 용맹한 전사였고, 명망가의 시조가 됐다. 그리스 신화의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상징도 곰이고, 중세 기사문학 속 아서왕의 이름도 곰을 나타내는 어근에서 비롯됐다.

“교회의 시각에서 볼 때 이 모든 것은 완전히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중략) 다채로운 형태로 견고하게 뿌리내린 곰 숭배는 이교도들의 개종을 방해했다. 알프스에서 발트해에 이르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곰은 그리스도의 경쟁자로 자리 잡고 있었다. 교회는 곰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곰을 왕좌와 제단에서 끌어내려야만 한다고 판단했다.”(16쪽)

싸움은 이미 5세기부터 시작됐다. 사제와 신학자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곰을 가장 위험한 동물로 여겼고, 성인(聖人)들을 내세운 문헌·이미지·설교를 동원해 악마화 작업을 진행한다. 곰을 둘러싼 믿음을 뿌리 뽑기 위해서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가 “곰은 악마”라고 선언한 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습성에도 수많은 악덕을 덮어씌웠다. 교부들의 문헌과 참회규장서 등은 곰에게 폭력과 분노, 잔인함, 탐식, 탐욕, 음욕, 음탕 등을 입혔다.

“사탄은 종종 곰의 모습으로 변장했는데, 특히 주둥이·머리카락·발을 즐겨 취했다. 그림과 조각 같은 물질적 이미지만이 아니라 꿈과 환상이 만들어낸 공상의 이미지 속에서도 사탄은 거의 언제나 사람들을 위협하고 괴롭히는 곰의 모습으로 나타났다.”(160쪽)

중세 초에 이르면 곰은 평범한 동물들의 대열에 합류한다. 사슴이나 멧돼지처럼 덩치 큰 사냥감 가운데 하나로 말이다. 봉건시대에도 여전히 왕실 동물로서 옛 지위를 어느 정도 간직한 곰은 13세기로 넘어갈 적에 완전히 폐위됐다. 교회는 목적을 이뤘지만 왕좌를 비워둘 수는 없는 것. 민간신앙과 오랜 사고 습관은 곰의 자리에 또 다른 동물을 앉히게 된다. 사제와 수도사들은 다른 야수를 선택한다. 바로 유럽의 숲에는 없는 사자였다.

“13세기에는 전사들은 더 이상 곰과 싸우지 않았다. 그 대신 사자나 가능하다면 용과 맞섰다. 아서왕 이야기에 나오는 왕들과 아들들, 란슬롯, 트리스탄, 가웨인 같은 주요 기사들과 원탁의 기사들이 모두 그렇게 했다. 사자를 무찌르는 것은 매우 특별한 위업이 되었다.”(193쪽)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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