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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4년 01월 17일(金)
북극곰·얼음·오로라로 빚어낸 ‘純白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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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얼음의 땅,북극을 꿈꾸다 / 배리 로페즈 지음, 신해경 옮김 / 봄날의 책

세계적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북극의 아름다움에 주목한 사람이었다. 피아노의 장식음과 기교를 극도로 싫어한 굴드는 빛과 얼음만이 존재하는 북극의 순백을 사랑했다.

굴드는 피아노 연주를 하면서 흥얼거리거나 한여름에도 두꺼운 모피 외투에 털장갑을 끼고 다니는 등 갖가지 기행(奇行)으로 유명했다. 역시 괴짜다. 북극 순백의 공간을 사랑했지만 굴드는 한때 자신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금광의 투자 상태를 탐지하기 위해 북극을 찾기도 했다. 1957년 1월의 어느 날 저녁, 뉴욕에서 오케스트라와 데뷔 무대를 가졌을 때 굴드는 모피 외투를 몸에 두른 북극 탐험대원 차림이었다. 굴드처럼 시인의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북극에 매료된다.

하지만 급격한 기후변화로 영구 동토였던 툰드라가 녹아 늪이 되고 있고, 에스키모와 동물들의 북극은 빠른 속도로 무너져내리고 있다. 북극 얼음이 녹으면서 ‘새로운 금광’인 북극 가스·석유 개발이 본격화하고 있다. 개발경쟁과 함께 대규모 영유권 분쟁도 우려되고 있다. 개발이 본격 진행되면 지구촌의 순수 공간과 생태계 파괴가 우려된다. 북극의 미래는 이제 유동적인 것이 됐다. 시인들의 순수에의 외침은 메아리를 잃고 있다.

책은 철학과 북극의 자연과학적 주제가 자연스럽게 동거하는 ‘북극 인문학’이다. 저자가 별빛처럼 토해내는 글들의 압도적 아름다움에 도취될 수밖에 없다. 저자를 최고의 자연 작가 반열에 올려놓은 이 책은 ‘북극’ 오로라의 아름다운 빛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저자는 북극에서 밤 산책을 하면서 절하는 것에 익숙해졌다고 말한다. 길들지 않은 새들의 헌신적 삶과 동물들의 신비로운 삶에 대해 감사하는 자세다.

“외딴곳에서 마주친 예기치 못한 생명의 풍성함 때문에 숨결처럼 한숨처럼 땅을 내려 덮는 고요한 북극의 빛 때문에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새들과 둥지에 든 생명의 증거들을 향해 슬쩍 고개를 숙이곤 했다.”

그는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로 보지 못하고 자연을 대상화해서 인식하는 서구적 자연관에 비판적이다. 책은 북극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과학적 사실들이 빼곡하다. 저자가 직접 현장 생물학자로 5년간 북극에서 일하면서 겪었던 경험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예컨대 북극곰이 사냥을 할 때 쓰는 다양한 전략을 소개하고, 추위를 견딜 수 있는 생체시스템, 겨울잠을 잘 수 있는 구조까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책의 한 부분을 읽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19세기 물범잡이배 선원들이 북극곰을 꾀려고 암컷과 새끼들 간의 관계를 이용한 예다. 책에 따르면 선원들은 바다코끼리 지방을 쌓아놓고 불을 놓았다. 북극곰 암컷 한 마리가 가까운 곳에 새끼들을 앉혀놓고 불붙은 지방 덩어리를 낚아채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안전한 갑판에서 불꽃과 싸우는 광경을 지켜봤다. 그들은 암컷에게 작은 지방 덩어리를 던졌고, 암컷은 그것을 새끼들에게 가져갔다. 어미가 마지막 조각을 얻으려고 다가오는 순간, 사람들이 두 마리 새끼를 쏘아 죽였다. 그로부터 30분이 넘도록 암컷은 두 발로 새끼들을 일으켜 세우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어미는 일어나 걸어가며 새끼들을 불렀고, 돌아와 신음소리를 내며 한없이 다정하게 새끼들을 쓰다듬었다.

이런 대목도 있다.

“마취총을 맞은 암컷(북극곰) 한 마리가 부서진 얼음더미 근처에 쓰러졌다. (연구팀의) 동료 한 사람이 의식이 없는 곰을 돌려 눕혔다. (중략) 외음순이 부어 있었다. 암컷 생식기는 크기나 모양이 인간과 유사하다. 나는 시선을 돌렸다. 곰의 사생활이 침범당한 것처럼 느껴졌다.”

북극을 탐험하는 유럽인들은 북극곰을 보는 족족 죽였다. 1896년의 어느 한가한 여름날 오후 아문센만에서 할 일 없는 고래잡이 선장이 그저 심심풀이로 북극곰 35마리를 쏘기도 했다는 것.

저자는 책에서 동물과 새, 인간이 북극으로 이동하는 패턴과 경로 등을 설명하고 에스키모의 자연관과 서구 자연관의 차이를 설명한다. ‘대이동, 숨결이 지나가는 길’이라는 저자의 표현이 멋지다. 에스키모인들은 사냥을 죽은 동물에게 신세를 지는 일로 봤다. 에스키모인들은 자연스러운 생명의 먹이사슬 속에서 자신의 삶을 이어온 반면 서구인들은 북극을 탐험하고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봤다.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북극 생물인 일각고래는 오랜 기간 신화 속 생명체로 인식됐다. 다양한 소리와 진동으로 서로 소통하는 일각고래의 사회적 관계와 의사소통 구조는 신비롭기만 하다. 일각고래의 엄니가 유럽 중세시대에는 유니콘의 뿔로 둔갑해 값비싸게 유통됐다. 에스키모인들은 그 엄니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저 유용한 도구로 생각했다. 책에는 북극의 얼음과 빛, 토양 등 다른 책이나 매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주제들이 많아 새로운 지식을 얻는 재미가 쏠쏠하다. 각각의 주제가 인간과 어떤 상호작용을 거쳐왔는지를 매번 정리해주고 있다. 때로는 북극점에서 적도 쪽으로 가상의 여행을 하며 태양의 움직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설명하고, 북극의 계절과 백야·흑야의 원리도 알려준다.

북극의 얼음과 북쪽 하늘에서 춤추듯 내려오는 빛의 잔치인 오로라 등은 예술 작품에 영감을 줬다. 저자는 서유럽 회화사에서 북극이 어떻게 재현됐는지를 보여준다. 프레드릭 처치의 작품 ‘빙산들’의 원작에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관람자들의 반응이 너무 없어 부랴부랴 난파선을 연상시키는 부러진 돛대를 그려넣어 사람의 흔적을 남겼다는 것. 서구 문화사에서 빙산은 성당에 비유됐다. 아름다운 빙산에 대한 찬미가 유럽에서는 거의 종교적인 단계로까지 승화됐음을 알 수 있다. 북극을 돌아 아시아로 가는 해상 무역로를 찾기 위해 분투했던 19세기 초 영국의 북극탐험과 북극항로도 다룬다. 쿠라흐를 타고 영적인 항해에 나섰던 젊은 수도사 무리나 16세기에 존 데이비스와 함께 배를 탔던 세속적인 선원들은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책은 자연의 쇠퇴, 문명의 덧없음을 날카롭게 바라본 훌륭한 문명비평서로도 읽힌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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