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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4년 01월 17일(金)
최치원부터 한용운까지… 마음으로 읽는 漢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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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시 삼백수 : 7언 절구편 / 정민 엮음 / 김영사

인문학자인 정민 한양대 교수가 우리 한시 중 좋은 것을 새로 번역하고 해석해 엮었다. 칠언절구와 오언절구 삼백수씩 육백수를 골랐다고 한다. 우선 펴낸 책은 칠언절구 삼백수다. 저자는 이십여 년 전 ‘한시미학산책’으로 한시의 독특한 매력을 현대에 전달한 공이 혁혁하다. 이 책은 저자의 안목을 믿고 즐길 만한 우리 한시집이라 할 수 있다.

책에는 신라시대 최치원이 가야산에 스스로를 유폐시키고 늘그막을 보내며 지은 홍류동계곡의 물소리를 읊은 시에서부터, 동지팥죽에 산꿀을 타 먹으며 그 맛을 읊은 이색의 시, 아내를 묻으며 쓴 이계의 시, 근대 일제강점기 철창 감옥에 갇혀 쓴 한용운의 시에 이르기까지 한시의 역사가 흐른다. 그 시 속에 시대의 목소리가 도도하고 감각의 향유가 풍요롭다. 한 수 한 수 읽노라면, 가슴을 울리는 깊이 있는 내용에다 세심하고 리드미컬한 번역이 어우러져 번역명시의 재탄생을 감상하는 재미가 적지 않다. 잠 안 오는 겨울밤에 깊이 음미하면서 읽고 싶은 시들이다. 시삼백은 동양 문화권에서 최고의 앤솔러지란 뜻과 같다. 최고의 걸작만 망라했다는 의미다. 날마다 한 수씩 읽어 나가도 휴일을 빼고 나면 근 한 해 살림에 가깝다. 원문에는 독음을 달아 독자들이 찾아보기 쉽게 했다. 우리말로 번역한 시는 3·4조의 리듬을 타고 읽히도록 했다.

정 교수는 “작가별로 한 수씩 싣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몇 수씩 실은 경우도 있다”고 썼다. 고려시대의 경우 40명의 시인이 소개됐다. 3수가 선택된 시인은 김극기, 이규보, 혜심, 이색 등 4인이다. 조선시대에서 3수가 선택된 시인은 서경덕, 백광훈, 이달, 이안눌, 김득신, 권만, 최성대, 이용휴, 박지원, 신위, 김삿갓(김병연), 이건창 등 12인이다. 삼당시인으로 손꼽히는 시인(백광훈, 이달, 최경창) 중 최경창은 4수가 선정됐다. 흥미로운 것은 5수가 실린 시인이 있다는 사실이다. 신광한이 그다. 신광한의 시 한 수가 이러하다. “젊은 날엔 산집의 고요함이 좋아서 선창에서 옛 경전을 많이도 읽었었네/ 흰머리로 우연히 다시 이곳 이르니 불전엔 그때처럼 등불 하나 푸르구나.” 마지막 구절의 ‘일등청(一燈靑)’은 의미심장하고 맛깔스럽다. 과거에 대한 기억에서 초롱초롱 빛나는 산사의 푸른 등불이다. 신광한의 시심이고 이를 찾아 소개하는 저자의 시심이다.

“새벽녘 등 그림자 젖은 화장 비추고/ 이별을 말하려니 애가 먼저 끊누나/ 반 뜰 지는 달에 문 밀고 나서자니/ 살구꽃 성근 그늘 옷깃 위로 가득해라.”

정포(1309∼1345)가 양주의 객관에서 정인과 이별하며 쓴 시다. 그 시를 푼 정 교수의 글맛이 일품이다.

“창밖이 아슴아슴 밝아 온다. 이별의 시간이 왔다. 헤어짐이 안타까운 두 사람은 밤새 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퉁퉁 부은 눈, 자꾸 울기만 한다. 이제 헤어지면 다시는 못 만날 것을 둘 다 잘 안다. 이제 가야겠노라고 말하면서 내 애가 마디마디 끊어진다. 달빛도 다 기울어 이젠 마당의 반도 비추지 못한다. 지게문을 밀고 나선다. 차마 뒤돌아볼 수가 없다. 살구꽃 성근 그림자가 내 옷 위에 가득 어리는 것을 본다. 사랑하는 사람. 아, 끝내 돌아보지 못한다.”

책이 선발한 제 300째 시의 작자는 한용운이다. 그의 국문시는 이미 온 국민의 애호를 받고 있지만 그의 한시도 만만치 않음을 알려 준다. 제목은 ‘설야’(눈오는 밤)로, 일제의 감옥에 갇힌 상황을 노래하고 있다. “사방 산 감옥 에워 눈은 바다 같은데/ 찬 이불 쇠와 같고 꿈길은 재와 같네/ 철창조차 가두지 못하는 것 있나니/ 밤중의 종소리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저자의 해석은 이렇다. ‘여(如)’가 세 번 거듭 나왔으니 한시의 형식미로 치면 빵점이다. 하지만 정신의 높이로 읽어야 할 시가 있다. 이 시가 그런 시다. 얼음장보다 찬 홑이불에 꿈길마저 재처럼 싸늘하게 식어 간다.

오언절구 삼백수도 곧 출간될 예정이다. 정 교수는 2년 동안 한시를 골라 해설의 글을 쓰면서 행복했다고 한다. 스스로 채워둔 곶감처럼 든든해서 이따금 하나씩 뽑아 혼자 맛보곤 했다는 것. 절제의 언어인 시의 속뜻을 헤아리는 재미가 어린 시절 소풍날의 보물찾기 같았다고 고백한다. 그 맛과 재미의 향유는 이제는 독자들의 몫이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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