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評>전략적 통화정책 필요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정식/연세대 교수, 한국경제학회 차기회장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금리정책은 매우 중요하다. 올바르게 정책이 수립될 경우 물가를 안정시키면서 기업투자를 활성화시켜 성장률을 높일 수도 있으나 잘못 사용될 경우 외환위기로 국부가 유출되면서 나라 경제를 장기 침체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처럼 미국이 긴축통화 정책과 금리를 높이는 출구전략을 사용할 것을 천명하고 있는 시기에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금리정책은 너무나 중요하다. 충분히 대응하지 못할 경우 그 나라는 위기를 겪을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는 시기에 세계경제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미국은 1990년 이후 최근까지 세 번 금리를 높였다. 그 가운데 두 번, 세계경제는 위기를 겪었다. 금리를 높인 1994∼1995년 직후인 1997년에는 아시아 외환위기가 초래됐으며, 2005∼2007년 직후인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다.

미국 금리정책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는 일본과 중국은 이미 지난해부터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일본은 양적완화 정책이라는 확대통화정책을 사용하여 엔화의 평가절하를 통해 수출을 늘려 20년 경기침체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그동안 무분별하게 늘어났던 그림자 금융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늘어난 시중 유동성을 관리해 미국의 출구전략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려 하고 있다.

외국 중앙은행의 이러한 대응과 비교하면 우리의 대비는 충분하지 않다. 한국은행 총재 교체기가 겹치면서 향후 통화정책에 대한 논의는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그동안 우리 통화정책 환경이 많이 변했는데도 적극적으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미국 출구전략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통화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먼저, 저성장 국면에 알맞은 통화정책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 경제는 과거와 달리 저성장, 저물가의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한국은행은 향후 금리정책에 대한 기대가 가능하도록 통화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이나 일본의 이른바 ‘아베노믹스’를 봐도 중앙은행은 모두 물가나 실업률 목표치를 주고 이를 달성할 때까지 확대통화정책을 사용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긴축통화정책을 사용할 때도 출구전략의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중앙은행이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통화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투자자에게 금리정책의 불확실성을 줄여서 투자를 확대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행도 우리 경제를 성장시키고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또한 미국의 출구전략에 대응하기 위해서 향후 통화정책과 금리정책의 방향을 정하고 사전에 이를 충분히 알릴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전략적 통화정책이 필요하다. 폐쇄경제 아래서 통화정책은 외국 통화정책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국내 경제 상황만을 고려해서 통화정책과 금리정책을 사용하면 됐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자본 자유화가 되고 무역을 통해 국가 간의 경제가 상호 연결된 상황에서 중앙은행은 외국의 통화정책에 대응해 통화정책과 금리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웃 국가의 통화정책에 의해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특히, 미국의 통화정책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경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를 겪을 수 있다. 일본과 중국의 중앙은행이 이러한 점을 충분히 인식해 미국의 출구전략에 대응해 선제적으로 통화정책을 수립하듯이 한국은행도 전략적 통화정책을 사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환율정책과 공조할 수 있는 통화정책을 세워야 한다. 한국은행이 목표로 하는 물가나 성장률 모두 환율정책과 깊은 관련이 있다. 따라서 환율정책과 충분히 공조하지 않은 채 수립되면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물가는 안정시켰지만 경상수지 악화로 외환위기를 겪을 수 있고 해외에서 유동성이 유입되면서 유동성 조절에 실패할 수도 있다.

미국의 출구전략과 저성장 국면의 지속으로 우리 통화정책의 환경은 크게 변했다. 변화한 환경에 맞는 새로운 통화정책의 패러다임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해야 미국 출구전략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고 물가도 안정시키면서 동시에 지금의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