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경영의 공통점은 기본기와 창의성”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30주년 갈라 공연을 준비하는 문훈숙 단장은 “올 한 해 우리 고전 소재의 발레 ‘춘향’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김연수 선임기자 nyskim@munhwa.com

지난 11일 서울 광진구 능동로 유니버설발레단 연습실에서 32명의 발레리나가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발레 ‘라 바야데르’ 중 ‘망령들의 왕국’ 군무를 연습 중이었다. 오는 21∼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유니버설발레단 30주년 공연을 준비하며 문훈숙(51) 단장은 하나인 듯 완벽한 ‘칼군무’를 위해 “발레리나 32명이 손바닥을 펴는 동작부터 맞춰야 한다”고 디테일을 강조했다.

지난 1월 말 일본 공연을 거쳐 문 단장이 엄선한 발레단 창단 30주년 갈라의 레퍼토리는 이 밖에 ‘잠자는 숲속의 미녀’ 중 ‘로즈 아다지오’, ‘오네긴’의 ‘회한의 파드되(2인무)’를 비롯, 모던발레 ‘두엔데’, 창작발레 ‘춘향’ 및 관객도 참여하는 ‘마이너스7’ 등이다.

국내 첫 민간발레단인 유니버설발레단 30주년을 맞아 문 단장을 11일 만났다.

―30년 전 창단공연은?

“첫 작품이 1984년 7월 13일 리틀앤젤스회관에서 공연한 ‘신데렐라’입니다. 저는 21세 나이에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주역인 패트릭 비셀과 공연하며 엄청 긴장했던 기억이 납니다.”

―30년 세월의 큰 변화라면….

“초기엔 객석이 텅 비었죠. 관객들이 박수도 안 쳐서 공연이 끝나면 머쓱해 퇴장하기 바빴어요(웃음). 이젠 객석이 꽉 차고 공연 후 기립박수에 커튼콜이 이어지고 많이 바뀌었어요. 발레용 토슈즈를 외국서 한꺼번에 구입해 들어오면 세관에서 이게 뭐냐고 한 소리 들었어요. 요즘은 토슈즈를 알아보며 사인까지 청한답니다.”

―개인적으론 발레리나에서 ‘예술 CEO’로 변신했지요.

“초기 11년은 주역무용수로서 춤만 생각했어요. 수석무용수와 단장을 겸하기 시작한 게 1995년이죠. 춤과 경영을 병행하기가 너무 힘들어 2002년부터 춤은 안 추고 단장 역할에 몰두해 왔어요. 발레리나로서 젊음과 성숙함이 공존하며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30대에 단장 직을 맡느라 춤에선 손해였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7월 ‘오네긴’ 공연의 피날레로 수석무용수 강예나 씨의 고별행사를 진행하며 눈시울을 붉혔던 문 단장은 정작 자신의 은퇴식을 갖지 않았다. 문 단장은 “발레는 일곱 살 이후 내 삶인데 은퇴라니 끝인 듯 서럽다”고 밝히며 “은퇴식을 안 치렀으니 난 아직 발레리나”라고 웃었다. 발레리나로서 마지막 무대가 2001년 ‘심청’ 공연이었던 그는 “당시 제대로 아듀 인사를 못해 관객에게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발레만 하다가 발레단 경영을 맡아 어려움이 컸을 텐데….

“단장을 맡고 보니 경영을 모르는 내 눈에도 할 게 많아 보여 춤에 몰두할 수만은 없었어요. 경영서적도 찾아 읽고, 최고경영자(CEO) 모임에 참가해 조언받고 경험도 나누었지요. 이즈음 경영이란 걸 그야말로 조금 알게 됐지요. 발레리나가 무대에선 우아하고 편해 보여도 실은 숨이 꼴까닥 넘어갈 정도로 힘들어 쓰러질 지경이거든요. 그 어려운 발레를 해냈는데, 그 열정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발레리나출신인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도 잘 해내셨잖아요. 신임 강수진 단장도 잘 해낼 겁니다.”

그는 ‘상식적 차원’이라는 단서를 붙이며 예술과 경영의 닮은 점으로 ‘원칙과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와 ‘창의적이어야 한다’ 두 가지를 지목했다. 또한 그는 단원에게 ‘내면세계와 창의성을 표현하는 자기만의 색깔’과 ‘전체를 이루는 작은 부분의 의미를 다하는 정성’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요즘 발레 실기보다 말로써 발레를 전파하는 인기 강연자인데….

“원래 말하기, 마이크 잡기를 싫어해요. 그러나 발레와 발레단을 알리면서 나서야 했어요. 2008년 정기공연부터 막이 오르기 직전 작품에 대해 10분 정도 간략하게 설명하는 ‘해설있는 발레’를 시작했어요. 해설 덕분에 발레팬이 됐다는 분들도 적지 않고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아 해설을 맡고 있습니다. 해설 원고를 누가 써주느냐고 묻던데, 여러 날 고민해 직접 원고를 준비합니다. 요즘은 기업이나 단체의 요청을 받아 발레 역사나 감상법 등을 1시간 정도 이야기하는 교육프로그램도 진행 중입니다.”

―해외투어를 적극 추진했지요.

“창단 이듬해인 1985년, 한국발레단으론 처음으로 해외투어를 했어요. 1998, 1999년엔 북미와 유럽에서 공연했지요. 국내에선 발레 공연이 뜸해 레퍼토리 확보와 충실한 연습을 위해 외국으로 나갔습니다. 2011년 이후 월드투어를 통해 러시아, 프랑스, 오만,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지서 ‘발레한류’를 일궈 왔습니다.”

―한국적 소재의 창작발레도….

“첫 창작발레 ‘심청’은 초대 예술감독 에이드리엔 댈러스 선생이, 이어 제가 두 번째로 ‘춘향’을 발레화했습니다. ‘춘향’은 외국서도 공연이 원활하도록 스토리 전개와 무대를 보강해 오는 9월 새롭게 선보입니다.”

―현대무용과의 접목도 활발했죠.

“발레단 공연을 다 챙겨볼 만큼 발레 애호가이고 적극 지원하는 아버지(박보희 유니버설문화재단 명예이사장)는 고전발레에 충실하기를 원했어요. 그러나 2001년 국내 현대무용가들과 처음 협업했어요. 현대무용과 발레의 만남이 1990년대 중후반 이후 세계 트렌드거든요. 그후 이어리 킬리언, 나초 두아토, 윌리엄 포사이드 등 해외 현대무용가와 작업했습니다. 이제 아버지도 창작발레를 즐겨 보고, 레퍼토리 등 발레단 운영과 관련해 저를 믿고 맡깁니다.”

‘영원한 발레리나’ 단장은 내년에 해외 안무가와의 신작을 준비 중이며, 30주년 이후의 과제로 안무가 발굴을 첫손으로 꼽았다.

신세미 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