禁書, 혁명을 선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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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혁명 / 로버트 단턴 지음, 주명철 옮김 / 알마
책의 탄생 / 뤼시앵 페브르·앙리 장 마르탱 지음, 강주헌·배영란 옮김 / 돌베개

“보르도의 베르주레는 자기가 원하는 책 60권을 적고, 극도로 노골적인 철학책 11권에 가새표를 한 뒤 이렇게 설명했다. ‘가새표를 한 책을 다른 책들과 결혼시켜주시요.’ 책을 결혼시킨다는 말은 어떤 책의 종이와 다른 책의 종이를 서로 섞는 것을 뜻했다. 서적상들은 이런 관행을 ‘돼지 비계 끼워넣기’라고 불렀다.”

미국의 저명한 서양사학자인 로버트 단턴이 쓴 ‘책과 혁명’에 나오는 금서의 유통 방법이다. 18세기에 책은 대개 제본하지 않은 상태에서 발송됐기 때문에 건전한 책 안에 주문자가 필요로 하는 금서를 몰래 끼워넣을 수 있었다. 단속을 해도 ‘어느 곳에나 있으면서도 아무 데도 없는’ 철학책으로 둔갑한 금서를 적발하기는 힘들었다. 책은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의 문학풍경 속을 깊이 파고든다. 당시 정부가 판매를 불허한 포르노소설, SF, 중상비방문 같은 책들은 ‘철학책’이라는 은어로 쓰이거나 ‘은밀한 책’ ‘고통’ 등의 용어로 통용됐다. 마치 요즘 인터넷상 음란물이 넘쳐나는 것처럼 당시 금서에서는 음란물이 주류였다. 밀수꾼·운송업자·마차꾼·소매업자를 거치면서 책값은 크게 올랐다. 소비자들은 생산원가의 두 배에서 심지어 열 배까지 내고 포르노 소설 등을 사야 했다.

단턴은 출판업자와 검열관, 인쇄업자, 서적상 등이 남긴 방대한 사료를 분석해 평범한 사람들의 세계관을 엿보았다. 이를 통해 루소나 볼테르의 정통 저작물을 읽는 것만으로는 1700∼1800년에 살았던 일반인들의 의식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계몽주의와 같은 고급 사상은 정치적 포르노그래피와 같은 ‘금서 베스트셀러’라는 통속장르로 바뀌어 대중을 사로잡았다. 지금 보면 유치한 이 책들은 “18세기 독자에게는 저항할 수 없을 만큼의 진실성으로 그들의 가슴을 울렸고”, 책들은 대중의 감정을 폭발적으로 자극해 세상을 뒤집어엎겠다는 집단정신자세(망탈리테)를 낳았다는 것. 평등에 대한 열망도 계몽 서적의 우아한 논증으로부터 대중들에게 인식된 것이 아니었다. 단턴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기를 관통한 ‘평등’은 지극히 감각적인 것이었다. 단턴은 정통적 가치를 전복시킨 책은 결코 고전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소설 주인공들의 사랑이 신분질서 때문에 가로막힌 상황을 안타까워했고, 이것이 불합리한 사회 구조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1787년경 독서 대중은 모든 종류의 불법 서적에 물들어있었다. 이러한 서적은 앙시앵 레짐의 정통 가치를 모든 방면에서 공격했다.”(364쪽) 짧은 소책자 형태의 중상비방문은 루이 16세를 보좌한 대신들을 타락한 난봉꾼, 선량한 시민을 바스티유에 집어넣는 괴물로 묘사하면서 비방했다.

금서 유통이 프랑스 혁명의 직접적 동력이 됐는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하층민들에게는 위험이 높아도 고수익이 보장되는 금서 유통업은 신분상승의 기회를 제공했다. 뛰어난 사업수완을 발휘해 ‘금서’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은 18세기의 출판 벤처사업가들과는 달리 궁핍함을 묵묵히 감내하면서 책이라는 경이로운 도구를 만들어낸 출판 직인들의 이야기는 자못 감동적이다. 프랑스 근대사학자 뤼시앵 페브르과 앙리 장 마르탱이 쓴 ‘책의 탄생’에는 이 같은 장인들이 등장한다. 책은 문헌사학의 고전이다. 이 책 역시 인쇄술과 책의 보급이 역사 변동의 원동력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15∼16세기에 활약한 인문주의 성향의 인쇄업자와 철학적 소양의 서적상, 종이 수급과 재정의 문제, 각종 책 박람회, 책의 지리적 분포 등이 거시적인 사회사 관점에서 조명됐다. 인쇄술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과학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저자들은 “종교개혁이 인쇄술의 발명의 결과로 나타난 사건이라는 우스운 주장을 펴지 않을 생각”이라며 하지만 “책은 망설이던 사람들까지도 함께 엮어 가담시켜주는 힘이 있다”고 주장한다. 활판 인쇄술의 출현을 르네상스의 비판적 인문정신을 널리 퍼트리고 프로테스탄티즘의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인쇄혁명이 없었다면 에라스뮈스도 루터도 없었다. 에라스뮈스의 ‘격언집’은 1525년부터 1550년까지 약 50회나 간행됐다. 프랑스어로 작품을 쓴 라블레는 탈주하는 인문주의자로 불린다.

“라블레의 책 ‘팡타그뤼엘’은 최소 27회 재인쇄됐다. 이는 16세기부터 라블레의 여러 저서들이 수만 부 팔려나갔음을 입증한다. 소실본까지 감안하더라도 10만 부 이상은 되었을 것이다.”(465쪽)

10만 부라니. 중세 독자들이 폭발적 독서구매력을 분출했다는 게 놀랍다. 라블레는 “대포가 악마의 암시로 인해 발명된 것과 정반대로 인쇄술은 신의 영감에 의해 발명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책의 탄생’에 따르면 15세기 말과 16세기 초 파리 도서시장의 선두 주자였던 장 프티는 1000여 종 이상의 책을 출판했다. 그는 푸줏간 집안 출신이었지만 상당한 교양을 쌓았고, 당대의 유명 지식인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인쇄인들은 유럽 전역에 걸쳐 지식공동체를 만들었다. 책은 기억으로 보존돼 오던 정보를 전파하는 혁명적 매체였다.

‘책과 혁명’ ‘책의 탄생’이라는 두 권의 기념비적 고전은 구텐베르크 인쇄술이 몰고 온 책의 혁명이 엘리트 문자 문화에서 대중을 위한 문자문화로의 이행을 뜻한다는 것을 함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