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리 정보 모음? 그 시대의 욕망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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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지도 / 제리 브로턴 지음, 이창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지도는 누가, 왜 만들었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지도를 만들려는 욕구는 인간의 기초적이고 지속적인 본능”이라고 단언한다. 지도가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당연히 길을 잃겠지. 하지만 저자는 이처럼 ‘뻔한’ 대답을 넘어 “지도는 단지 여기서 저기까지 어떻게 가는지를 묻는 질문만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질문에 답을 준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저자는 “사람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줄곧 정보를 공간적으로 처리하면서 자신을 더 넓은 세상과의 관계에서 이해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세계지도 12개를 중심으로 지도에 숨겨진 당대 제작자와 사용자의 욕망을 파헤치고 있다. 이를 통해 인류의 세계관이 어떻게 변해 왔는가를 고찰하고 있다. 르네상스 및 지도사(史) 전공 학자인 저자는 12개의 욕망 코드를 통해 각각의 지도가 제작 당시의 사회적 욕망이 반영된 시대의 거울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욕망 코드 12개는 과학·교류·신앙·제국·발견·경계·관용·돈·국가·지정학·평등·정보 등이다.

예컨대 ‘제국’ 코드에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를 통해 중국 너머의 세계를 보려 했던 조선의 결연한 의지를 살핀다. 1402년 조선의 새로운 왕조가 만든 세계지도인 이 지도는 전 세계와 유럽, 조선을 그린 동아시아 최초의 지도다. 당시 신생국이던 조선은 동아시아의 권력관계 안에서 당대 세계 최강의 제국인 중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되 세계를 바라보는 독자적인 시각을 갖추고자 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강리도)’는 세계 최강의 고대 제국에 지도 제작으로 대응한 것이며, 조선이 자국의 자연 지형과 정치 지형을 동시에 인식해 만든 지도다. 중국과 조선은 경험을 활용해 지도를 만들었고, 그렇게 탄생한 지도는 단지 지리적 정확성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것은 구조적 관계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강리도’와 그 사본은 작지만 당당했던 새 왕조가 덩치가 훨씬 큰 제국의 영역 안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었다.”

책은, 기원전 700년 바빌로니아의 점토판 세계 지도부터 디지털 지도가 초래할 미래의 세계까지 시·공간을 넘나들며 그 변화를 통찰한다. 아울러 유럽과 아메리카, 이슬람 문화권과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읽는 이를 지도가 탄생한 맥락 속에 끌고 들어가 추체험이 가능하게 한다. 저자는 피타고라스의 이론과 중력이론, 동양의 개천설(蓋天說)과 혼천설(渾天說) 등 각종 이론을 쉽게 풀어 지도 제작 원리를 설명한다. 또 수많은 사료들을 바탕으로 데카르트와 뉴턴, 이성계와 권근 등 역사 속 인물들이 지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풀어내고 있다.

오늘날 인류는 가상공간에 지도를 만드는 시대에 이르렀고, 그 어느 때보다도 지도를 많이 사용하게 됐다. 지구 어디에서든 위치를 알려 주는 인터넷 지도 덕에 어쩌면 현 인류는 ‘길을 잃는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이 같은 디지털 지도가 초래할 인류의 미래가 도리어 암울할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거대 기업이 지도와 관련한 엄청난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 우려된다는 것. 지도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정치적 의도로 조종되며, 사생활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 문명의 진보가 이 같은 디스토피아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겐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통찰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지도를 바라보는 것을 넘어 지도 이면의 욕망을 읽어냄으로써 인류가 거쳐온 세계관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 책은 그러한 요구를 충분히 충족시키고 있다. 책에선 저자가 특별히 선정한 12개의 지도 외에도 쉽게 접하기 힘든 동서양의 고지도를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특히 본문 중에 해당 지도를 싣고, 중간에 삽입된 컬러 화보를 통해 생생한 지도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게 해 읽는 이의 이해를 돕고 있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