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문10답 뉴스 깊이보기>최근 ‘단말기 보조금’ 대란… 무엇이 원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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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통신사들의 단말기 보조금 지급 경쟁을 두고 흔히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부른다. 저쪽에서 총알이 날아오면 이쪽에서도 총알을 날려야 하기 때문이다. 아니 한 발 늦은 만큼 대포라도 쏴야 한다. 한 쪽이 보조금을 뿌리기 시작하면 다른 쪽도 방어 차원에서 보조금을 뿌려야 한다는 의미다. 가입자 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100만 원이 넘는 스마트폰이 오늘 70만 원에 팔렸다가 내일은 30만 원에 팔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이유다. 30만 원에 샀다고 좋아할 일도 아니다. 싸게 산 스마트폰이 며칠 뒤 마이너스폰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호갱(호구+고객)’이라는 말이 나온다. 똑같은 스마트폰을 비싼 값에 산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수많은 호갱들을 양산하는 과다 보조금이 지급되는 이유와 해결책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본다.


1. 보조금은 무엇이고 언제 등장 ?

단말기 보조금은 이동통신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실제 단말기 가격보다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하는 행위를 말한다. 특히 한정된 시장에서 이통사들이 경쟁을 하다 보니 타 이통사로부터 가입자를 빼앗아오는 데 주로 사용된다. 보조금을 얹어 단말기를 할인하더라도 장기적으로 가입자로부터 얻는 이익이 할인 금액보다 크다면 보조금을 지급할 이유는 충분하다. 보조금이 처음 시장에 등장한 것도 1997년 5개 이통사가 시장에서 경쟁을 벌이면서부터다. 그전까지는 1개 사업자만 존재했다. 당시 시장에서 경쟁을 벌이던 업체는 한국이동통신, 신세기통신, 한국통신프리텔, LG텔레콤으로 이통사들은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사활을 건 전쟁을 벌였다.

이후 정부는 시장 과열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2003년 4월 보조금을 법으로 금지시켰다가 2008년 3월 다시 부활시켰다.


2. 법적 상한선과 실상

현재 방송통신위원회는 휴대전화 보조금 가이드라인을 27만 원으로 정하고 이 금액을 초과해 보조금이 투입될 경우 이통사에 제재 조치를 내리고 있다. 보조금 가이드라인은 2010년 9월 이통 3사의 영업보고서를 기준으로 마련됐다. 가입자 1인당 평균 예상 이익 24만3000원에 제조사 장려금을 더해 결정한 액수다. 이보다 많은 액수의 보조금을 특정 가입자에게 지급하면 다른 가입자에게 비용을 전가할 수 있다고 방통위는 판단했다. 이를 어기면 전기통신사업법이 제한하는 ‘부당한 이용자 차별 금지’에 해당되기 때문에 과징금 등 처벌 대상이 된다. 그러나 실상 방통위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이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방통위의 감시가 소홀해지는 주말이면 70만∼80만 원대 보조금이 지급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3. 어떤 단말기가 대상인가

보조금은 주로 고가의 롱텀에볼루션(LTE) 스마트폰, 비싼 LTE 요금제 등에 실린다. 이른바 제조사와 이통사가 ‘미는’ 스마트폰에 보조금이 실리는 것이다. 비싼 요금제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사실 국내 시장이 ‘외산폰의 무덤’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외국계 제조사들의 경우 대부분 휴대전화 장려금을 지급하지 않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이통사도 국내 제조사와의 관계 때문에 외국계 제품에 대해 보조금을 많이 지급하긴 어렵다. 최근에는 3세대(3G) 스마트폰과 피처폰에도 보조금이 실리는 기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출시된 지 20개월 이상 지난 단말기에 대해서는 방통위 보조금 단속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시장 점유율을 늘리거나 유지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4. 최근 보조금 대란의 원인

최근 보조금 대란의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다. 가장 먼저 제조사들의 신제품 스마트폰 출시를 앞두고 재고를 떨어내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국내시장에는 21일 LG전자의 G프로2 출시를 시작으로 삼성전자 갤럭시S5 등 신제품 출시가 줄줄이 예정돼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현상은 매년 반복되는 것으로 지난해에도 삼성전자의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100만 원에 가까운 갤럭시S4가 10만 원대에 시장에 나온 바 있다.

2월 임시국회에서 다뤄질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도 원인으로 꼽힌다. 차별적 보조금 금지와 보조금 공시 등의 내용을 포함한 단통법이 시행될 경우 과거와 같이 과대 보조금을 통해 경쟁사의 가입자를 빼앗아오는 게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5. 과다 보조금 어떻게 발생하나

휴대전화는 보통 제조사→이통사→대리점→판매점 등의 순서를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판매 활성화를 위해 각각의 유통주체는 보조금을 지급한다. 제조사 장려금, 이통사 보조금 등 다른 용어가 쓰이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모두 보조금이다. 보조금의 과다 지급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이러한 단계별 유통주체의 보조금이 몰렸을 때다. 가령 시장에 나온 지 일정 시간이 지난 휴대전화의 경우 제조회사는 재고 부담을 덜기 위해 장려금을 대폭 높여 이통사에 제공한다.

이통사는 이를 가입자 유치의 절호의 기회로 보고 대폭 보조금을 높인다. 대리점과 판매점은 가입자를 유치하게 되면 유치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일정 금액을 보조금에 더 한다. 때로는 100만 원을 넘기는 과다한 보조금 지급은 이 같은 구조를 통해 이뤄진다.


6. 과다 보조금 지급 양상

최근 과다 보조금 지급 정보는 주로 온라인을 통해 유포된다. 이 같은 정보는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방통위의 단속이 허술한 새벽에 올라왔다가 몇 시간 뒤면 사라진다. 이른바 ‘떴다방 보조금’이다. 말그대로 떴다방이기 때문에 ‘어제 어디 대리점에서 싸게 팔았다’는 소문을 듣고 가봐야 오늘도 싸다는 보장은 없다. 실제 최근 보조금 대란 때 인당 최대 145만 원을 지급한 모 이통사가 하루 만에 보조금을 100만 원 줄여 수많은 호갱을 양산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뻗치기 보조금’이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뻗치기’는 언론계 은어로 취재원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것을 뜻한다.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뻗치기 보조금은 선착순으로 가입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가입 희망자들이 매장으로 직접 방문해 순서를 기다려 받는다. 역시 시간대는 주로 새벽이다.


7. ‘마이너스 폰’ 이란 ?

보조금 경쟁이 확대되면 보조금이 출고가를 넘기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를 ‘마이너스폰’이라고 한다. 스마트폰을 공짜로 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출고가를 넘어서는 보조금이 추가로 지급되는 방식이다. 실제 최근 보조금 대란에서 삼성전자의 갤럭시S4 LTE-A 등 일부 최신 스마트폰이 마이너스폰으로 풀린 것으로 나타났다. 제품에는 보조금이 최대 120만 원까지 붙었는데, 제품의 출고가는 95만4000원으로 소비자들은 결국 현금으로 24만6000원을 받아갈 수 있었다. 출혈 경쟁인 것은 맞지만 마이너스폰을 받는 대신 가입자가 고가의 요금제를 선택하도록 하기 때문에 이통사가 반드시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8. 보조금 왜 문제되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싸면 쌀수록 좋다. 보조금이 많이 투입돼서 스마트폰 가격이 내려가면 이득이다. 소비자들이 보조금 수준을 제재하는 정부를 성토하는 이유다. 문제는 보조금 재원이 전체 이통 서비스 이용자가 내는 요금에서 나오지만, 혜택을 보는 이용자는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실제 상대적으로 정보 접근이 취약한 중장년층 이상 이용자는 똑같은 스마트폰을 비싸게 사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이용자 차별에 해당한다. 이통사들의 서비스 품질이 낮아질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손쉽게 보조금을 풀어 가입자를 유치하면 되기 때문에 이통사들이 서비스 품질을 올려 가입자를 유치할 동인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이통사나 소비자 모두에게 이로울 게 없는 상황이다.


9. 정부의 제재 수단

27만 원 이상의 보조금을 투입해 이용자 차별을 유발할 경우 방통위는 전체회의를 통해 이통사를 대상으로 과징금 부과, 영업정지 등의 제재를 내리고 있다. 방통위의 이 같은 규제로 지난해 초 이통 3사는 LG유플러스 24일, SK텔레콤 22일, KT 20일의 영업정지를 순차적으로 받고 총 118억90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지난해 말에도 방통위는 이통 3사에 사상 최대인 1064억 원의 과징금 부과와 함께 이용자 차별 금지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후에도 과다 보조금 행태는 끊이지 않고 있다. 방통위는 최근 이통 3사의 시행명령 이행 여부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30일 이상의 영업정지를 내릴 것을 미래창조과학부에 요청했다.


10. 근본적 해결책 없나

휴대전화 과다 보조금 지급은 주로 이통사 위주로 이뤄지지만 제조사, 대리점 등의 역할도 적지 않다. 그러나 현행 전기통신사업자법상 방통위 등의 조사와 제재 대상은 이통사에 국한돼 있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고자 나온 것이 단통법이다. 제조사와 대리점의 휴대전화 보조금 문제에 대해서도 규제의 잣대를 들이대겠다는 것이다. 현재 미래부와 방통위는 단통법 제정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상태다.

단통법이 시행될 경우 제조사 주도의 보조금 교란 행위는 다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단통법이 시행되면 휴대전화 과다 보조금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규제는 불가피하게 생각지도 못한 회피 수단을 만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조금 관련 규제 철폐와 통신요금 인가제 폐지를 통한 경쟁 활성화 등이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해소 방안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임정환·유회경 기자 yom7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