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통일은 대박’?… Risk 고려 안하면 Crazy한 것”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은 4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2008년 금융위기 후 미국이 글로벌 리더십을 잃으면서 이제 세계는 이끌어갈 리더가 없는 ‘G제로’ 상태에 빠지게 됐다”면서 “G제로 시대는 한국에게 위기이자 기회인 만큼 미국 및 유럽연합,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경제 및 안보협력을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munhwa.com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이 4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지정학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특강을 하고 있다. 특강 후 ‘미국 쇠퇴론’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미국이 쇠퇴하는 게 아니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정책이 글로벌 현안에서 후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고, ‘러시아 쇠퇴론’에 대해선 “소비에트혁명 이후 줄곧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게 바로 러시아”라고 꼬집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munhwa.com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

미국의 위기컨설팅 업체인 유라시아그룹을 이끄는 이언 브레머(44) 회장은 1990년대 공산체제 붕괴 이전 소련 각 지역을 두루 여행하면서 소련체제가 변화할 경우 세계가 겪게 될 문제를 연구 분석해온 전문가다. 스탠퍼드대에서 구소련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소련 붕괴에 따른 지정학적 변화를 분석하기 위해 유라시아그룹을 설립했다. 유럽과 아시아 지역을 포괄하는 개념인 유라시아를 회사 이름으로 내세운 것 자체가 상당히 의미 심장하다. 국내 포럼 및 특강을 위해 방한한 그를 지난 4일 만나 우크라이나 사태와 동북아 중·일 갈등, 그리고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회사 이름을 유라시아그룹로 정한 이유가 있는가.

“대학시절인 1986년 여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 서기장일 때 우크라이나와 아제르바이잔, 중앙아시아 모든 곳을 여행했다. 1988년 동유럽 소련 지역에서 민족주의 물결이 터져나오기 전에 구소련 지역의 대부분을 방문했다. 그때 러시아어를 한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접하지 못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그러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소련 붕괴라는 유니크한 역사적 국면을 맞게 됐다. 소련 붕괴 후 구소련 지역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컨설팅 회사를 만들었고 이름도 유라시아그룹으로 했다.”

―요즘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며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20대 때 구소련의 러시아계 주민 문제에 대해 연구했다. 아르메니아를 제외한 모든 구소련 국가에서 인구의 5% 이상은 러시아계다.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등지의 구소련 국가에서 러시아계가 어떤 조건에서 뭘하고 사는지, 독립을 원하는지 여부 등이 아주 큰 문제였다. 당시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의 ‘문명의 충돌’이 인기였는데 헌팅턴은 문화적 충돌을 얘기하며 구소련 지역 무슬림 문제를 얘기했다. 그런데 나는 그때 기독교와 무슬람 간의 ‘문화적 충돌’은 없을 것으로 봤고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연구를 했다. 그래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을 조사했는데 러시아계와 무슬림계는 큰 문제가 없었다. ‘노(No) 문명의 충돌’인 것이었다. 오히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듯이 러시아와 크림 반도는 큰 문제가 됐다. 구소련 각지에서 러시아계 주민들이 만들어내는 실제 문제는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그들이 오래 살면서 자본을 모으고 그 땅이 자기들 거라고 생각하며 경제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때 빚어진다는 것을 입증했다. 요즘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니 그때 쓴 내 박사학위 논문이 여전히 적실성이 있는(relevant) 것 같다. 지난 20년간 이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박사학위 때 견지했던 내 견해가 다시 빛을 보게 되는 것 같아 기쁘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일찍이 예견한 셈인데, 크림 반도가 다시 러시아령으로 갈 수 있을까.

“크림 반도는 단 한 번도 러시아의 것이 아닌 적이 없었다. 서구 사람들은 크림 반도가 러시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못한다. 크림 반도 인구의 대다수가 러시아계다. 러시아 사람들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서우크라이나는 아닐지라도 동우크라이나에 대해선 그렇게 생각한다. 러시아는 공산권 해체과정에서 동유럽을 잃고 구소련의 많은 지역을 잃었다. 그런 상황에서 러시아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까지 잃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유럽의 외교장관들이 우크라이나에 와서 새 대통령, 야당세력과 함께 협상한 뒤 통합정부를 세운다고 합의하고 선거를 한다고 해도 러시아로서는 수용하기 힘들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의 군사 개입을 경고했는데.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멍청하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힘이 옛날 같지 않은 게 사실이다. 러시아는 주변화한 글로벌 파워지만 그래도 우크라이나 정도는 지원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뿐이다. 러시아가 150억 달러 지원을 약속했는데 미국은 10억 달러 지원을 약속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한다고 해도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러시아와 같은 통 큰 지원은 어렵다. 우크라이나에 돈을 줄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뿐이다.”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

“2개의 옵션이 있다. 하나는 서방이 크림 반도를 제외한 우크라이나를 적극 지원하는 방안이다. 우선 IMF 자금을 투입하고 소수 러시아계 주민을 존중하되 크림 반도의 정치적 미래는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결정하도록 인정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럴 경우 크림 반도는 독립해 친러시아국이 되거나 우크라이나로부터 더 많은 자치권을 얻는 식으로 정리될 것이다. 율리야 티모셴코 전 우크라이나 총리에 대해 러시아도 재정적 지원을 하며 모든 투자를 아끼지 않을 텐데, 그가 러시아의 지원을 받으며 차기 대선에서 당선되면 그는 친러시아 정책을 펴게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서구로 가게 될 가능성은 적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원한다고 해도 그건 어렵다. 그게 강대국 정치의 현실이다. 이 같은 옵션보다 더 현실화 가능성이 있는 것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러시아 정부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대하는 경우다. 이럴 때 서우크라이나 정부가 친유럽으로 가고, 러시아는 동우크라이나 정부를 계속 부추겨서 우크라이나가 최악의 내전으로 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유럽으로 가는 에너지 공급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미·러 관계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

“미·러 관계는 이미 파산상태에 빠진 지 오래다. 푸틴은 더 이상 오바마를 믿지 않는다. 전혀 믿지 않는다. 오바마는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 때 푸틴이 역사의 잘못된 방향에 서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곧 오바마 자신만이 옳은 방향에 서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나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파키스탄에서,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당신이 정말 옳은 방향에 서 있었느냐고. 미국은 여전히 오만하다. 러시아인에게 잘못된 역사 방향에 서 있다고 말한 것은 정말 쓸데없는 얘기였다. 반작용만 일어나는 아주 최악의 말이다. 그말을 들을 때 공포스러웠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그나마 푸틴과 얘기되는 편인데 메르켈 총리가 이번 사태에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보는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유라시아그룹이 연초 펴낸 2014년의 리스크에는 우크라이나 문제가 독립 항목으로 있지 않는데 문제를 간과한 것인가.

“우크라이나 문제가 별도로 분리되지 않은 채 ‘크렘린의 변덕성’이란 항목에 포함돼 있다. 우크라이나 문제의 핵심은 크렘린에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북한도 독립 항목으로 돼 있지 않던데.

“10대 리스크에 넣지 않았지만, 별도 항목으로 물음표(?)를 넣어 마지막 리스크로 분류했다.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할지에 대해 알 수 없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지난 1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중·일 간의 영토갈등이 올해 최악의 지정학적 리스크로 새롭게 부상했다고 얘기해 주목을 받았는데 그렇게 규정한 이유는 뭔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다보스포럼에서 아베노믹스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잘했고 좋은 평을 받았다. 강력한 리더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자리에서 아베 총리는 현재의 중·일 관계를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전야의 영·독 관계에 비유해 논란이 됐다. 그게 맞을 수도 있지만 총리가 할 말은 아니었다. 일본은 강력한 외교정책의 플레이어가 되고 싶어 하고 군사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그가 그렇게 얘기한 것을 개인적으로 이해는 한다. 시진핑(習近平) 시대 중국은 공격적으로 군비를 증강하고 있고 동중국해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일본은 그런 중국에 대해 걱정하는 게 사실이다.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중국의 고위 인사는 아베 총리의 연설을 듣고 “동아시아의 문제아는 북한의 김정은과 일본의 아베”라고 말해 많이 놀랐다.”

―한국은 그런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살아야 할 숙명을 갖고 있고, 일본이 과거사를 부정할수록 과거사 문제에서는 중국과 협력을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인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한·일 양국은 법이 지배하는 민주주의 시장경제사회이고 중국은 권위주의적 국가자본주의 나라다. 과거사 문제 때문에 한국이 일본과 갈등하며 중국과 협력할 수밖에 없는 게 문제다.”

―과거사 문제 때문에 한·일 갈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택할 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북핵 문제 해법과 관련해 한국은 역할을 넓혀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만큼 최소한 북한 문제와 관련해 일본과는 건설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은 일본에 대한 관여정책을 적극적으로 펴야 한다. 북한 문제는 한국이 안고 있는 아주 위험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오는 4월 한·일 양국을 방문할 때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미·일 간 협력방안을 만들어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북한 문제에서라도 한·일 협력방안을 마련하라는 얘기인데.

“그렇다. 일본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화하려는 노력은 필수다.”

―다보스포럼에서 중국인사가 아베와 김정은을 동아시아의 문제아라고 지적했다고 했는데 박근혜 대통령도 과거사 문제에 대해선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해 실용적 접근이 어려운 상태다.

“한국과 일본, 중국 지도자는 모두 이 문제에 있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 내가 다보스포럼에서도 말했지만 과거사 문제와 종교 문제는 제기해 봤자 풀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멈춰야 한다. 들춰낼수록 재난이다. 그 대신 우리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할지 생각해야 한다.”

―미국인들은 역사가 짧아 역사 문제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중·일 3국은 수천년 역사를 공유하고 있어 쉽지가 않다. 미국은 그러한 역사의 민감성을 이해해야 한다.

“잘 알고 있다. 공감한다.”

―아베노믹스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가.

“지금까지는 성공적이었다. 아베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좀 넘었는데 그간 쉬운 문제들은 많이 진척이 됐다. 이제부터는 어려운 문제를 시작해야 한다. 나는 소비세 문제가 확실히 상황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본다. 또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문제도 쉽게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베 총리가 여성노동력 고용 문제와 원자력 문제에 집중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다. 일본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여러 문제에 그가 집중하고 있는 점은 평가해야 한다. 그는 현재 일본 정치인 중에서는 베스트 리더이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이후 가장 강력한 리더다.”

―TPP 문제에 대해 회의적인 듯한데.

“TPP는 올해 타결되긴 어렵고 잘돼야 2015년 정도 될 수 있을 것이다. TPP는 오바마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가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도 재선 캠페인을 이유로 가지 않았는데 그건 실수다. 말로는 아태 중시론을 펴면서도 선거를 이유로 APEC 정상회의에 불참해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줬다.”

―‘피벗 투 아시아(아시아로의 외교중심축 이동)’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뉘앙스의 얘기인데.

“실제 별로 되는 게 없지 않으냐.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재임 때에 비해 더 진행되는 게 없다. 한 달 전 클린턴 전 장관을 만났는데 오바마 행정부의 최근 기류에 대해 불편해하더라. 클린턴 전 장관은 아시아에서 미국이 기회를 잃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피벗 투 아시아 정책은 클린턴 전 장관의 이니셔티브였다는 점에선 이견이 없는 것 같다.

“맞다. 클린턴 전 장관은 정서적으로 아시아 중심정책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 그러나 에드워드 스노든 사건이 발생하면서 피벗 투 아시아 정책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 이후 국무부 수장이 된 존 케리 국무장관은 피벗 투 아시아 정책에 큰 관심이 없는 상태다.”

―케리 장관과 수전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 등은 외교적 중량감이 부족한 듯하다.

“최악의 약체 팀이다. 제이컵 루 재무장관을 포함해 오바마 2기 행정부 각료들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중국의 시진핑 리더십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가.

“시진핑 주석이 중국의 강력한 리더인 것은 사실이고 우리는 그런 리더가 필요하다. 그는 경제를 전환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부패와 싸워야 하고, 금융자유화를 위한 개혁이 필요하고, 자유무역지대에 대한 지속적 노력이 필요하고, 국가주도 기업의 개혁이 필요한데 환경오염 문제와 싸우기 위해서도 시진핑 주석에게 힘이 필요하다. 중국에서 지금 정치적 개혁은 없는 상황인데, 이것은 좋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정치개혁을 하면 고르바초프 같은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적 개혁을 전혀 하지 않을 경우 정치적 리스크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중국에서는 내부적 갈등 요소가 점점 커지고 있다. 톈안먼(天安門) 사건 때와 같이 정치적 대혼란을 맞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외교적 문제보다는 내적 문제가 더 중요할 수 있고 우리가 중국 내부 문제에 주목해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올해가 톈안먼 사건 25주년인데.

“내부적으로 긴장과 갈등이 지속될 수 있다.”

―요즘의 미·중 관계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가.

“미·중 관계는 지난 몇 년에 걸쳐 악화돼 왔다. 안보 문제, 사이버 보안 문제 등에서 아주 나빴던 게 그간의 상황이다. 방공식별구역(ADIZ) 문제에 대해서도 중국 대 미·일로 분리돼 대결했다. 그런데 중국은 일본과 대결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모멘텀을 찾으며 미국과 협력을 늘려가는 추세다. 시진핑 주석이 조 바이든 부통령을 환영한 것을 보면 그렇다. 더구나 클린턴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피벗 투 아시아 정책이 시들해지면서 중국으로서는 오바마 행정부 2기를 즐기는 것 같더라. 오바마 2기팀이 동아시아에 대해 덜 집중하자 중국은 그런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북한 문제, 통일 문제에 대한 생각을 알고 싶다. ‘J커브’(2007년)에서 북한을 비개방적이고 정보가 덜 유입되는 나라로 분류했는데, 이제는 정보가 많이 유입되는 상황이다.

“‘J커브’ 이후 8년이 지났는데 북한에 대해선 생각을 바꾸게 됐다. 당시 북한은 여전히 J커브의 왼쪽 중간, 그러니까 체제 안정성은 높고 개방성이 적은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제 북한에는 정보가 많이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리더 김정은은 과거 리더에 비해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현재의 특징이다. 그게 내 생각의 변화 핵심이다.”

―그런 변화란 북한의 체제 변화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인가.

“한반도 통일 문제가 점점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아주 긴박한(immediate) 우려 사항이다.”

―박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해서 주목을 받았는데.

“그런 얘기는 크레이지(crazy)한 것이다. 나는 그런 규정에 동의하지 않는다. 통일은 거대한 기회이기도 하고 거대한 리스크이기도 하다. 한국인들이 통일의 거대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크레이지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통일 대박론을 얘기한 것이 적실성이 없다는 얘기인가.

“한국 정부는 공개적으로 통일 대박을 얘기하기보다 내부적으로 급변사태를 준비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려는 나라다.”

―박 대통령이 대중적으로 통일 대박론을 편 것이 너무 과도한 낙관론이라는 얘기인데.

“그렇다. 북한은 전체주의사회다. 그런 체제는 아주 쉽게 폭발할 수 있다. 폭발하게 되면 외국의 국가들은 북한의 미래에 대해 관여하게 될 것이고 북한 사람들은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걱정하게 된다. 그런 상황은 아주 위험스럽다.”

―북한체제가 지속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북한체제는 취약성을 지니고 있지만 북한의 핵은 여전히 위협적이고 북한의 군은 한국을 단번에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

―최근 국내에 번역된 새 책에서 ‘G제로’ 개념을 제시했는데, 미국은 슈퍼파워로서의 위상이 줄어들고 있다 해도 여전히 G1 국가 아닌가. 어떤 의미에서 현재 세계가 G제로라는 말인가.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력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구조적으로 미국은 슈퍼파워로서 역할을 할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통상 미국은 G1, 중국은 G2라고 얘기하는데, 그런 구분을 부정하는 것인가.

“미국이 세계 최강이고, 중국은 경제적으로 규모가 2위이지만 두 나라 모두 글로벌 사회에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규모는 크지만 글로벌 역할이 없는 만큼 G1이냐 G2냐는 개념은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언론에서는 G2 시대라고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G2가 협의시스템을 만들고 글로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데 두 나라는 아무것도 합의하거나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G제로 시대라는 개념을 고안해낸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세계의 모든 시스템이 무너진 후 전후 세계는 미국 주도하에 서유럽과 일본 등이 함께 글로벌 문제를 논의하는 체제로 운영됐다. 말하자면 G1+동맹국들의 시대, 즉 주요 7개국(G7) 시대가 지속됐다. 그러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시작되며 미국 주도의 글로벌 체제는 사실상 깨졌다. 이때부터 G제로 시대가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요 20개국(G20) 그룹이 형성됐는데 아직 힘을 갖고 있지 못한 게 한계다.”

―G제로 시대에서 G20 시대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얘기인가.

“미국 주도의 G7체제가 붕괴됐고, 이 과정에서 G20으로 확장된 것은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아직은 어렵지만 미국과 중국이 좋은 관계를 발전시키고, 다른 나라와 협력해 나간다면 G20이 글로벌 문제를 관리해 나갈 시스템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컨설팅회사 경영자로서, 그리고 지식인으로서, 칼럼니스트로서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한다면.

“나는 사람들이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데 관심이 있다. 내가 유라시아그룹을 창립했지만 회사 운영 자체에만 신경을 쓰는 게 아니라 세상 문제에 관심이 많다. 1997년 34명이 시작했는데 이제는 150명이 일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컨설팅그룹 최고경영자(CEO)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글을 쓰고 책을 출판할 수 있는가.

“28세 때 유라시아그룹을 창립했고 요즘에도 CEO로 일하지만 회사 경영에 전력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저 우리 회사의 주주라고 생각한다. 내 활동은 세 부문으로 나뉜다. 3분의 1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만나 배우고, 글쓰는 일, 3분의 1은 강의하고 브리핑하는 일,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은 클라이언트와 함께 보낸다. 이게 나의 스타일이다. 오늘은 프레젠팅하는 날인데 내일 미국으로 돌아가면 우크라이나에 대해 배우는 데 집중할 것이고 또 이것을 브리핑하고 강의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일하고 배우고 성장하는 이 모든 일을 유라시아그룹이라는 회사에서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행운아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잘 조화된 이상적인 삶을 사는 것 같다.

“또 한 가지, 나는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내가 쓰는 글이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내 얘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나도 인간인 만큼 틀릴 수도 있기 때문에 큰 회사의 책임자로서 책임 있는 얘기를 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에게 상당히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는데.

“보통 사람들은 인기가 있을 때 더 많은 것을 쏟아내려 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 신뢰를 잃어버리게 된다.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를 봐라. 그는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등 수많은 좋은 책을 썼고 미국 최고의 중동전문가였고 명칼럼니스트다. 그런데 그가 최고로 유명한 인사가 되면서 너무 많이 쓰고 있다. 그는 세계적으로 저명하고 여전히 좋은 강연자인 것은 사실인데 더 이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안타깝다.”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의 마이클 맨들바움 교수와 함께 펴낸 ‘미국쇠망론(That Used To Be Us)’은 좋던데.

“그것은 공저다. 프리드먼이 혼자 쓴 ‘코드 그린: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는 최악의 저서다. 그는 이제 시간이 필요한 때가 됐다. 그는 정치적이지도, 이념적이지도 않은 저널리스트로서 미국에 수많은 기여를 했고 내가 정말 존경하는 분이다. 그러나 너무 바쁘기 때문에 새로운 구상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너무 유명해지면 위험하다.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인터뷰 = 이미숙 국제부장 muse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