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식도암’ 논쟁가의 죽음… 그리고 ‘미완성의 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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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말기 식도암 진단을 받고 “왜 하필 나인가?”라고 자문하다가 이내 “안 될 것도 없잖아?”라고 스스로에게 답한다.

신과 종교를 포함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비평하던 그가 생애 마지막에 집중한 주제는 ‘죽음’이었다. 머지않은 죽음을 선고받은 후 1년여 자신에 대한 관찰과 사색을 글로 남겼다.

저자는 영미권의 정치학자, 저널리스트이며 탁월한 논쟁가였다. 1949년 영국서 태어나 2011년 12월 미국 휴스턴에서 식도암으로 눈을 감기까지 그는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논쟁’ ‘리딩’ 및 ‘신은 위대하지 않다’ 등의 책을 펴냈다. ‘배니티 페어’ ‘애틀랜틱’ ‘월드 어페어스’ 등의 잡지에 칼럼과 도서비평 등을 발표했고, 튀는 글과 언행으로 화제와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그는 “죽어가는 삶”까지 글로 남겼다.

자신의 저서 홍보를 위해 전국 투어를 하던 2010년 6월, 심장발작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두렵다는 것 외에는 거의 아는 것이 없는 신세계”와 대면했다. 자신의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던 날, 식도암 진단을 받았다.

그로부터 식도에 생긴 “감정도 없고 맹목적인 외계인”과의 싸움은 시작됐다. 무신론자였던 그는 죽음에 앞서 신에 귀의한 것은 아니었다. ‘신에게 믿음을 걸면 모든 것을 얻게 되지만, 천국의 제안을 거절하면 일이 잘못될 경우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수학자 겸 사상가 파스칼의 이론, 즉 ‘파스칼의 도박’에 빠지지 않고 다만 한 인간으로서 육체의 고통과 정신의 흐름을 주목했다.

그는 물론 “내가 정말로 살아서 아이들 결혼식을 볼 수는 없는 걸까?” “세계무역센터가 다시 솟아오르는 것도 못 보나?” 같은 감상과 자기연민에 빠져들기도 했다.

한때 화학치료제 덕에 전이종양 일부가 줄어드는 짜릿함, 반대로 신약 개발이 자신의 치료용으론 너무 먼 미래일 것 같은 우울함을 경험하며, 희망과 실망 혹은 배신감을 맛보았다. 어느새 혀와 입 안의 궤양, 발의 말단 신경장애를 경험하고, 토론과 강의를 즐기는 그로선 너무도 절망스럽게 말을 못할 수도 있는 상황과 마주한다.

고통스러운 투병이 이어지면서 그의 경험은 “두려움이 미신으로 이어진다” “나쁜 뉴스에 워낙 익숙해지면 좋은 소식은 값비싼 시계나 케이크처럼 느껴진다”는 등 미완성의 단편적 메모를 통해 남는다. 죽어가는 무력감과 슬픔을 솔직히 털어놓으며 저자는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죽음 그리고 삶의 아름다움을 일깨운다.

신세미 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