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덩어리 규제’ 혁파>2001년 신기술→2011년 불법… 업체 죽이는 규제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불법창고 된 축사 31일 경기 하남시 덕풍동 614 축사에 철근 등 건축자재가 쌓여 있다. 이 축사는 지난 2009년 1월 이 지역의 가축사육을 금지하는 조례가 제정된 후 소·돼지를 기르지 못하고, 일반 물품창고로 불법 용도변경해 하남시로부터 이행강제금 부과와 함께 원상복구명령을 받았다. 하남 = 임정현 기자 theos@munhwa.com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엇박자 규제’와 ‘이중규제’로 피해를 보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자동차 폐윤활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난방기 생산·판매 업체 ㈜보명비엔엠은 엇박자 규제로 파산에 이른 중소기업이다.

경기 광주시 오포읍에 위치한 이 업체의 대표인 오창명(60) 씨는 최근 “환경부의 갈팡질팡하는 행정과 규제 때문에 회사가 20억 원이 넘는 손해를 보고 파산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수원지법 성남지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오 씨는 자동차 폐윤활유를 수거·운반·처리하는 기존 방식에서 탈피해 대기오염 없이 발생 현장에서 태우는 기술을 개발, 지난 2001년 9월 환경부로부터 ‘환경 신기술’ 지정을 받았다. 환경부는 운반차량 운행 시 배출되는 가스와 처리시설 가동 때 나오는 2∼3차 오염원을 막기 위해 “폐윤활유는 발생 현장에서 처리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오 씨의 연구 결과를 신기술로 지정했다.

당시 오 씨는 환경부에 질의해 신기술이 폐기물관리법 규정에도 저촉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한 후 신기술을 적용한 난방기 제품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씨는 수십억 원을 들여 금형을 제작, 폐윤활유를 연료로 쓰는 난방기 생산에 즉각 들어갔고 전국 자동차수리업체와 군부대 등을 대상으로 판매를 확대해 나갔다. 그 결과 난방기를 10년 동안 4000여 대나 판매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직원이 17명인 보명비엔엠은 2013년 4월 수원지법에 파산신청을 했고, 법원은 이 업체의 파산을 선고했다. 환경부가 2011년 9월 액상폐기물인 폐유는 난방기 연료로 쓸 수 없게 에너지 회수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으로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환경부가 2차 오염을 막겠다며 폐윤활유를 현장에서 처리하도록 환경 신기술로 지정한 지 10년 만에 관련법 규정을 바꿔 ‘위법’으로 규정하는 바람에 판로가 막히고 회사가 파산에 이른 것이다.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인 경기 하남시 덕풍동 축산농가들은 지자체의 이중규제로 생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남시가 지난 2009년 1월 주거밀집지역과 상수원보호구역에 가축사육을 금지하는 조례를 제정한 이후 상당수의 축산농가들이 허가를 받아 지은 축사에서 가축을 기르지 못하고, 축사를 물류창고 등으로 불법 용도변경해 사용하고 있다. 이곳 축사들을 농수산물 보관용 창고로 용도변경할 수 있도록 개발제한구역 지정 및 관리에 대한 특별조치법(개특법)이 2009년 8월 개정됐으나 제조업 물품 및 식품이 아닌 농수산물에만 국한하고 있어 농사를 짓지 않는 주민들의 생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3월 29일 경기 하남시 덕풍동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변 SH아파트 인근에는 축사를 개조한 공장을 비롯해 제품 보관창고, 청과물 및 식품 저장창고, 이삿짐 화물 보관창고 등이 즐비했다.

축사로 신고된 덕풍동 614를 찾아가자 벽돌로 지은 허름한 창고가 나타났다. 이곳은 P 씨가 2003년 4월 시로부터 축사 허가(880㎡)를 받아 건축한 뒤 가축을 기르다 주거지역에서 가축사육을 금지하는 조례 때문에 소·돼지 등을 사육하지 못하고, 농수산물 보관용 창고로도 사용할 수 없어 불법 용도변경해 일반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 P 씨는 이 창고를 최근 O산업에 철근을 건축자재용으로 가공해 보관하는 창고 및 공장건물로 임대해 줬다.

P 씨는 축사를 불법 용도변경했다는 이유로 2009년 말 시로부터 이행강제금 부과와 함께 원상복구명령을 받았다. 그는 “올해는 불법행위에 대한 이행강제금 부과 유예조치로 단속을 피할 수 있었지만 내년에 또 단속을 피할 수 없다는 생각에 늘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에 있는 덕풍동 604-3 T렌탈 등 4곳의 물품창고용 축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들 축사도 가축사육 제한을 받으면서 불법 용도변경으로 한 차례 이상 이행강제금을 내거나 행정 계고조치를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축사 이중규제로 인한 피해는 축사를 용도변경한 창고를 임차해 사용 중인 업자들의 경영난도 가중시키고 있다. 덕풍동 611-2 축사를 청과물 저온창고로 사용 중인 S유통 박모(45) 대표는 “창고가 비좁은데도 간이시설을 설치할 수 없는 것은 물론 행정단속 때문에 영업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며 “정부가 가축사육 제한 대상 축사를 일반 창고 및 제조업으로 용도변경해줄 경우 중소기업들이 세금도 정상적으로 낼 수 있고 경영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이 하남시와 남양주시, 시흥시 등에서 가축사육 금지 및 개발제한구역 용도변경 제한 등 이중규제를 받는 농가는 161곳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기도 내 그린벨트에서 축사를 사용 중인 농가가 2216곳에 달하고 이 가운데 1390곳(하남시 477곳)이 축사를 일반 창고로 용도변경, 1000만∼2000만 원의 이행강제금을 내고 창고임대업을 강행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린벨트 내 축사를 농수산물 창고뿐만 아니라 공산품 보관용 창고로 용도변경, 활용할 수 있도록 개특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하남시는 그린벨트 내 축사를 일반 창고 및 제조업으로 용도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개특법 시행령 개정안을 국토교통부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남 = 오명근 기자 om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