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통일 幻想’ 비웃는 북한 無人機

김종호/논설위원

북한 정권·체제가 반(反)이성·반상식의 전형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지는 오래지만, 개과천선(改過遷善)에 대한 일말의 기대까지 버리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비뚤어진 심성으로 패악을 일삼을지라도 언젠가는 뉘우치게 마련인 것이 인간이라는 믿음마저 떨쳐버리고 싶진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갈수록 반이성·반상식의 극단으로 치달으며 그런 미련조차 부질없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재확인시켜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드레스덴 통일 구상’에서 밝힌 대북(對北) 3대 제안을 거부하면서 시정잡배들의 사석에서도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막말·욕설을 공식 기구를 통해 공공연하게 쏟아내고 있다는 것도 비근한 예 중의 하나다.

북한의 조선노동당 기관지로 김정은 정권을 대변하는 노동신문은 지난 1일 박 대통령의 3대 제안을 두고 “제 코도 못 씻는 게 남의 부뚜막 걱정한다고 참으로 가소롭다. 오물처럼 쏟아낸 망발과 추한 행실은 혐오감과 환멸감부터 자아낸다.” 운운하며 막말을 퍼붓다 못해 욕설로 지면을 도배질하다시피 했다. “치마를 두르고 60이 넘도록 정치를 배웠다는 게 고작 악담질하는 것뿐이니 나이를 헛먹었다” “괴벽한 노처녀” “가벼운 혓바닥” “비루먹은 암캐같은 ×” 등은 박 대통령뿐 아니라 지위 고하와 국적을 막론하고 어떤 사람에게도 공개적으론 할 수 없을 욕설로, 김정은 정권의 공식 대변지에 버젓이 게재한 것이다.

더욱이 독일 통일의 성공을 상징하는 도시 중 하나인 드레스덴을 방문한 자리를 이용해 박 대통령이 지난 3월 28일 발표한 3대 제안은 북한에 대해 ‘통큰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었지 않은가.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와 북한의 산모·유아에 대한 대규모 지원 사업 등을 통한 인도적 문제 해결, 북한에 복합농촌단지 건설과 교통·통신 체계 등 민생 인프라 구축 지원, 문화·스포츠 교류 장려와 북한에 경제 운용 및 금융·조세 교육 지원 등을 통한 남북 동질성 회복이 설령 북한 정권이 보기엔 못마땅한 제안일지라도 무지막지한 욕설과 막말로 매도할 일일 순 없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이성과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집단이라는 사실을 욕설을 통해 스스로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런 집단을 향해 박 대통령이 ‘통일 대박론(論)’의 연장선에서 드레스덴 구상을 밝힌 것은 최소한의 상식과 이성을 김정은 정권에 대해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 기대가 정면으로 배반당한 것이 욕설 차원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의 3대 제안 이틀 뒤인 지난 3월 30일 북한은 4차 핵(核)실험을 사실상 예고했고, 그 다음날엔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역에 최대 사(射)거리 27㎞에 이르는 해안포와 방사포 500여 발을 쐈고, 그중에 100여 발은 해상 휴전선인 NLL 남쪽으로 최대 3.6㎞ 지점까지 넘어왔다. 서정우 하사, 문광욱 일병 등 해병대 병사 2명이 전사(戰死)하고 16명이 중·경상을 입었을 뿐 아니라 민간인도 2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한 2010년의 연평도 포격 도발 이래 북한의 최대 규모 포격 도발이 자행된 것이다. 3대 제안을 통한 박 대통령의 대화와 지원 확대를 통한 북한의 변화 유도 의지는 물론, 통일 문제 접근 또한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북한 무인기(無人機)의 침략과 정탐 활동도 ‘통일 환상(幻想)’을 비웃기는 마찬가지다. 수많은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생화학무기와 포탄도 장착할 수 있는 소형 정찰기가 청와대와 군(軍)부대 상공을 멋대로 날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염탐해왔다. 대한민국은 그 사실조차 경기 파주와 백령도에서 지난 3월 24일과 31일 해당 무인기가 잇달아 추락하기까지는 까맣게 모른 채 먼 미래의 통일에 대한 환상에 젖어 있었다. 극소수만 참석한 간첩 사건 재판정에서 비공개로 한 탈북자 증언이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북한 보위부에 유출되는 것도 현실이다. 북한 정권의 호전성(好戰性)과 반이성·반상식의 예측 불가능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통일 환상을 가져선 안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예는 이밖에도 수두룩하다. 오죽하면 어느 전직 국정원장은 공개 강연에서 “국회에 북한 당국자들이 앉아 있다는 인상”이라며 “북한 추종 세력이 거기뿐만 아니라 법원에도 있고, 검찰에도 없다고 말하기 어렵고, 언론기관에도 침투했다”고까지 개탄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