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물끄러미 바라본 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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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훈 시인이 시집 ‘빛나는 단도’(문학동네)를 내놨다. 문학저널리스트로서 작가를 겸하고 있는 그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광주에서 태어나 구소련 해체 이후 본토에서 러시아 관련 학위를 받은 시인은 이 같은 이력을 바탕으로 강건한 문장을 무기삼아 시와 소설을 넘나들며 역사와 시대의 문제를 다뤄왔다. 한국전쟁으로 이산가족이 된 아버지의 사연, 미증유의 살육을 겪었던 고향의 역사, 현실 사회주의의 패퇴. 이같이 역사와 개인사가 뒤얽힌 경험은 그대로 역사와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작품을 관통해왔다.

하지만 이번 시집에는 러시아나 광주와 관련된 소회를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는 자신의 삶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보인다. 시인은 지하철 문이 열리고 까만 파카를 입은 사내들이 쏟아져 들어올 때 허공에 높이 날아오른 하얀 오리털을 보면서, “오리털은 나의 영혼/ 위로받지 못하는 것들은 스스로 이렇게 날아오른다/ 내가 나를 멀리 날려보낸다는 것/ 날아가면서 이 세상이 볼 수 있도록 피를 묻힌다는 것”(나는 오리 농장을 견학하는 눈을 뜨고)이라고 한다. 식탁에 앉아 밥을 삼키다가도 “나는 나로부터 좀 더 아득해지고 싶은데/ 요즘은 그냥 흘려버릴 사소한 것들이 모두 가슴에 들어 차서/ 바위가 되어 앉아있다//오래전 어느 해 내 국가의 시민은 나뿐이었을 때/ 나는 깃털처럼 가벼웠으니/ 이 세상을 지었다가 부수는/ 나의 힘이 무지와 몽매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어머니도 물리고 아내도 물리고 형제도 물려봤으면”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 모두가 쓸쓸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면서도 시인은 그 자신에게 시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문자를 해독하기 전의 나를 규명하는 일은 그래서 이유 있음이다”(독서의 습관)라는 시구는 이번 시집의 열쇠처럼 느껴진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