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보 機密’ 스스로 공개하는 대한민국

김종호/논설위원

‘적(敵)을 알고 자신을 알면 백 번을 싸워도 결코 위태롭지 않다. 적의 실상을 모른 채 아군(我軍)의 전력만 믿고 싸우면 이기거나 질 확률이 각각 절반이다. 적의 현실뿐 아니라 아군의 실상까지 모른다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진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명장(名將)인 손무가 편찬한 것으로 전해오는 병가(兵家)의 서적 ‘손자(孫子)’에 나오는 대목이다. 그 원문(原文)인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부지피이지기 일승일부(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부지피부지기 매전필패(不知彼不知己 每戰必敗)’를 쉽게 풀이한 것이다. 현대에도 적에게 자신은 최대한 감추면서 상대방에 대해선 한 가지라도 더 파악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모든 국가와 모든 분야의 상식이다. 국가의 존망(存亡)이 달린 국방·안보(安保)와 관련해선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현실은 심각한 우려를 자아낼 만하다. 김정은 북한 정권이 파악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는 ‘안보 기밀(機密)’ 자산까지 무분별하게 까발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안보의 중추 중에 하나인 국방부마저 그러고 있다는 것이 참담한 실상이다. 대한민국 국가원수의 집무실과 거주처, 주요 군사시설 등을 정찰한 북한 무인기(無人機) 침략이 사실상 예고된 지 1년이 지난 뒤에까지 손놓고 있다시피 하다가 ‘기습’을 당한 뒤에 드러낸 행태가 비근한 예다. 국방부는 지난 8일 현재 운용중이거나 실전(實戰)배치 예정인 무인 정찰기의 제원(諸元)과 대북 정보 수집 능력까지 공개했다. 2005년 7월부터 경기 양주 지역의 군 부대에서 임무를 시작한 무인기 ‘송골매’와 내년부터 본격 운용할 ‘리모아이-006’의 활동 범위와 방법 등을 실제 비행을 통해 만천하에 널리 알린 것이다.

송골매는 길이 4.8m, 높이 1.5m, 날개 폭 6.4m이고, 시속 120∼150㎞로 비행할 수 있으며, 작전 반경이 80㎞라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한 번 이륙하면 최대 4㎞ 상공에서 4시간 동안 체공해 북한군의 영상정보를 수집한다고도 밝힌 뒤 이륙·비행·착륙 장면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송골매가 찍은 영상은 수도군단 정보대대뿐 아니라 군 사령부와 합동참모본부에도 동시에 전송된다”며 “정지된 사진을 찍고 한참 뒤에 거둬가야 하는 북한 무인기와는 비교 대상이 안된다”고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현재 10년차 조종사만 해도 30여 명이고, 한 명을 양성하는 데에 2년이 소요되는 조종사 훈련을 전국 각지의 부대에서 200여 명이 받고 있다는 사실도 떠벌렸다. 북한이 설령 이미 알고 있을지라도 명확하게 확인해주지는 말아야 할 정보의 공개에 앞장선 셈이다. 리모아이-006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현재 운용중인 또 다른 정찰기 ‘백두’는 신호정보를 수집하고 있고, ‘금강’과 ‘RF-16’은 북한의 남포에서 함흥을 연결하는 지역까지 영상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는 사실 등 공식 지정 여부를 떠나 사실상 기밀이어야 할 내용까지 북한에 갖다 바치다시피 한 것이다. 북한 무인기 기습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과오에 대한 변명에 급급해 엉뚱하게도 국방정보를 누출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고도 정상이라고 할 순 없다. 그러니까 국방부 산하 정부 출연기관으로, 병기(兵器)와 장비에 대한 핵심 기술을 연구·개발하는 국방과학연구소(ADD) 컴퓨터 3000여 대까지 해킹당해 군사기밀 수백 건이 유출된 사실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배경 역시 그런 식의 기강 해이 외에 달리 있겠는가.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김영주 의원이 지난 9일 밝힌 이런 사실을 두고, 국방 전문가들은 “최근 추락한 북한 무인기들에 대한 ADD의 정밀 분석작업도 실시간으로 북한에 탐지됐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개탄하고 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 국가 기밀이다. 국방·안보 기밀은 더더욱 그렇다. 그러지 못하는 국가기관이나 공직자가 국민 신뢰를 받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 존재 이유부터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국방부를 비롯한 안보기관 전체가 대오각성(大悟覺醒)해 국가 안보 기밀까지 북한에 스스로 제공하는 식의 한심한 행태가 더는 재연되지 않게 해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 수호를 위한 엄중하고 역사적인 책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