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덩어리 규제’ 혁파>편의시설 못짓게해 세탁소 가는데 車로 10분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0일 인천 남동구 인천남동공단의 산업시설구역(왼쪽 사진)은 편의시설 한 곳 없이 무질서하게 주차된 차량들로 황량한 모습이다. 반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산업공단(오른쪽)은 인공연못에 현대적인 휴식공간까지 갖춰 진화된 산업공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인천=정하종 기자 maloo@, 문화일보 자료사진

“우리 같은 근로자들이 공단 안에 머물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어두컴컴한 공장 안에서 하루 종일 작업하다 퇴근 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는 일밖에 없습니다.”

지난 10일 기자가 찾아간 인천 남동구 인천남동공단(남동인더스파크)의 내부 모습은 언뜻 보기에도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오래된 공장들만 줄지어 있을 뿐 잠시 숨을 돌릴 만한 ‘녹색공간’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낮 12시쯤 점심시간, 한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하나둘 나와 인근 구내식당으로 몰려들었다. 10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 식당과 매점까지 들어서 있는 구내식당은 딱 보기에도 매우 좁고 열악했다. 30분쯤 지나자 식사를 마친 근로자들이 식당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지만, 대다수 근로자는 곧바로 각기 공장으로 향했다. 아직 점심시간이 30분이나 남았는데도 근처에는 간식거리를 사거나 잠깐 동안이라도 머물며 피로를 풀 만한 편의점, 커피숍 등 편의시설이 전무했다.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 만한 공원도 없었다. 산업단지 내 산업시설구역 용지는 오직 공장 부지로만 이용할 수 있도록 제한한 관련 규제 때문이다. 일부 규모가 큰 기업들은 임시방편으로 구내식당 및 매점 등을 구비하고 있었지만 근로자들의 ‘마음’을 채워주기에는 시설이나 수준이 열악했다. 소규모의 중소업체들은 이마저도 언감생심이다.

한 금속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모(36) 씨는 “공단 안에는 근로자들이 함께 갈 편의점도, 커피숍도 없다”며 “대부분 점심을 먹고 나면 그냥 공장으로 돌아가 잠깐 휴식을 취한 뒤 곧바로 다시 작업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근로자 김모(33) 씨 역시 “여기 있는 근로자들은 대부분 출근할 때부터 빨리 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만 한다”며 “퇴근 시간만 되면 물밀 듯이 사람들이 빠져나가 거의 죽은 도시가 된다”고 말했다.

공단 내 편의시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산업단지 내 지원시설구역에는 편의점이나 커피숍, 일반음식점, 세탁소 등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올 수 있다. 하지만 산업시설구역 자체가 워낙 넓어 일부 공장의 경우 지원시설구역까지 나가려면 차를 타고 5∼10분가량 이동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남동공단 근로자들이 지원시설구역까지 나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최근 남동공단에 입주한 A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모(38) 씨는 “공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빨랫감을 세탁소에 맡기고 싶은데 산업시설구역 내에는 규제로 인해 세탁소가 들어올 수 없어서 현재 차로 10분 이상 떨어진 아파트 단지 내 세탁소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규제로 인한 산업단지 내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세탁전문 프랜차이즈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이모 대표는 10여 년 전부터 산업단지 내 세탁공장 설립을 추진해왔지만 아직도 입주를 하지 못하고 있다. 세탁업은 산업단지에 입주할 수 있는 업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여러 관계기관을 찾아다니며 민원을 제기하는 각고의 노력 끝에 지난 2006년 국무총리실 규제개혁위원회로부터 세탁업의 산업단지 입주를 허용한다는 공문을 받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진전된 것이 없는 상황이다.

이 대표는 “세탁공장을 지으려면 환경오염을 막기 위한 폐수처리시설 등을 함께 마련해야 하는데, 이런 시설들을 구비할 부지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산업단지 입주를 추진해왔다”면서 “지난 8년 동안 지방자치단체의 담당 공무원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그때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입주허가를 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 정부가 거창하게 서비스산업 육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 세탁업 같은 업종은 제조업과 연결된 서비스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박대를 당하기 일쑤”라며 “최근 외국에서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세탁업을 생각하면 참으로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산업 융·복합의 집적지가 되고, 근로자들의 생활문화가 함께 공존하는 산업단지의 진화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지난 1985년에 조성되기 시작한 남동공단은 시대의 발전과는 동떨어진 ‘규제의 섬’처럼 남아 있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창조경제시대에도 산업단지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려면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산업단지를 공급하고, 산업환경 변화에 대응해 기존 산업단지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 확대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인천 = 장병철 기자 jjangbe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