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1루 슬라이딩’ 하면 0.01초 늦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한·미 프로야구에서 최근 1루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는 장면이 종종 연출되고 있다.

이는 ‘투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1루의 경우 그냥 달려서 통과하는 편이 더 빠르기 때문에 어리석은 플레이일 뿐이다. 그럼에도 선수들이 1루 슬라이딩을 하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반사적 행동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LA 에인절스의 조시 해밀턴(33)은 지난 9일 유격수 땅볼을 치고 1루에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했다가 왼손 엄지손가락 인대를 다쳐 수술대에 올랐다. 해밀턴은 5월 말에나 복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부상 전 9경기에서 타율 0.444에 2홈런, 6타점을 기록 중이었다.‘류현진(27·LA 다저스) 친구’ 야시엘 푸이그(24)도 지난 6일 경기에서 내야안타를 치고 1루에서 슬라이딩하다 다쳐 2경기 결장한 바 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지난 4일 김선빈(25·KIA)이 내야안타 때 1루에서 슬라이딩을 했다. 홍성흔(38·두산)은 8일 경기에서 희생번트를 대놓고 1루로 슬라이딩하다 아웃되는 어이없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2루나 3루에서라면 그냥 달리는 것보다 슬라이딩이 유리하다는 게 정설이다. 슬라이딩 중에서도 다리보다 머리로 들어가는 편이 몸의 무게중심이 앞쪽으로 쏠리기 때문에 더 빠르다. 이는 워싱턴대 연구 결과로 확인됐다. 그러나 1루는 다르다. 2·3루에서는 베이스를 터치하고 멈추지 않으면 태그아웃된다.

반면 1루는 베이스를 밟고 지나가도 된다. 따라서 1루에서 슬라이딩을 하면 가속력은 줄고 지면과 마찰력은 커지기 때문에 유리할 게 없다. ESPN은 16일(한국시간) 실험을 통해 이를 입증한 동영상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대학 야구선수 출신을 섭외해 1루까지 그냥 달리는 경우와 슬라이딩하는 경우를 비교했다. 1루 베이스 앞 마지막 3m를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한 결과, 그냥 달렸을 때는 0.26초였지만 슬라이딩을 하면 0.27초로 더 느려졌다.

특히 슬라이딩을 하기 위해 자세를 취하는 시점에 속도가 50%나 줄어드는 것으로 측정됐다. 일본에서도 2000년대 중반 요미우리에서 내야수로 뛰었던 시미즈 다카유키(41·현 코치)를 통해 측정했더니 스윙 후 1루까지 그냥 달렸을 때 전체 4.06초,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 때는 4.18초가 걸리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결국 1루에서의 슬라이딩은 부상 위험만 높일 뿐 아무런 이득이 없다. 지난해 9월 21일 슬라이딩으로 1루에 들어가다 다쳤던 추신수(32·텍사스 레인저스)는 메이저리그 홈페이지 인터뷰에서 “박빙의 승부 속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인 것 같다”며 “멍청한 플레이였다”고 자책한 바 있다.

이효봉 XTM 해설위원은 “선수들도 1루 슬라이딩의 무용성을 알지만, 순간적으로 급한 마음에 슬라이딩을 하게 된다고 한다”며 “슬라이딩을 한다고 팀 분위기가 고조된다는 말 역시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했다. 메이저리거 출신 해설가 FP 산탄젤로는 “1루에서의 슬라이딩은 주자들이 어차피 아웃 타이밍이라고 생각될 때 심판을 속이려고 하는 행위”라며 “10번에 1번 정도는 세이프 판정을 받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성훈 기자 tarant@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