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탈출’ 선장, 저녁·아침식사 깨끗이 비워

여객선 진도 침몰 참사는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지켜줘야 할 선장과 승무원들이 비상 상황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화를 키운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들은 학생 등 승객 안전을 등한시한 채 침몰 중인 선박을 먼저 빠져나온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17일 목포해경과 구조된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준석(69) 세월호 선장이 사고 순간에 조타실을 지키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경찰 관계자는 “선장이 사고 순간에 조타실에 없었다”는 승무원 진술을 확보하고 이 선장을 상대로 강도 높은 조사를 펼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일부 승무원들이 ‘사고 직후부터 이 선장을 조타실에서 보지 못했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경찰은 사고 순간 선장 위치에 대한 승무원 진술이 엇갈리고 있어 대질신문 등을 통해 진술의 진위 여부를 가릴 방침이다.

선장이 정위치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주장과 함께 선장과 승무원들이 승객들을 저버리고 먼저 탈출한 사실도 드러났다. 비상 상황에서 모든 승객을 대피시킨 뒤 마지막에 여객선을 빠져나와야 할 선장과 승무원들이 승객과 배를 버리고 도망치는 데 급급했다는 것이다.

한 승무원은 “선장이 탈출하는 것을 보고 나도 뒤따라 탈출했다”고 말했다. 16일 오후 목포해경에서 만난 또 다른 승무원은 “오전 9시 기관실을 탈출했다”면서 “기관실에 들어간 지 10분 정도 됐는데 기관장으로부터 탈출하라는 전화를 받고 세 사람이 탈출했다”고 말했다. 선장은 오전 9시 30분쯤 배를 탈출해 9시 50분쯤 구조됐지만 선실에 있던 승무원은 10시 15분 이전까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말라”는 안내방송을 계속해서 내보냈다. 선장과 승무원들은 승객들이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막아 놓고 자기들만 신속하게 탈출했던 것이다.

세월호에서 구조된 승객들도 먼저 탈출한 승무원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한 생존자는 “배에서 뛰어내려 경비정에 올랐는데 여러 사람이 있었다”며 “주변 구조대원들에게 물어보니 선장과 승무원들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선장과 승무원들이 승객들에 앞서 탈출했을 뿐만 아니라 여객선의 기본적인 비상 장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는 선미 일부를 제외하고 배 전체가 바다에 잠겼는데도 긴급 상황시 펼쳐져야 할 구명벌이 1개밖에 펴지지 않았다.

세월호에는 승객 정원을 모두 태우고도 남을 만큼 구명벌이 갖춰져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사고 현장에는 구명벌이 펴지지 않아 대부분의 승객이 바다에 바로 뛰어내렸다.

경찰은 승무원들의 미숙한 대처가 선장의 지시로 이뤄졌는지 조사 중이다. 승객 가족들은 “선장과 승무원들이 잘못 안내해 참사를 불렀다”고 질타하고 있다. 이들은 “사고 발생 이후 2시간 넘게 대피할 시간이 있었던 상황인데도 실종자가 많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17일 목포해양경찰서에서 경찰 조사를 받는 이 선장은 대체로 편안한 모습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전 2시 30분쯤 승무원 조사를 위해 파견을 나온 경찰은 기자와 만나 “이 선장이 ‘슬프다’는 말을 자주 하고 있지만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며 “전날 제공된 저녁도 다 먹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선장은 이날 목포해양경찰서에서 취재진과 만나, “승객 가족에게 죄송하다.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진도 = 손기은 기자 s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