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덩어리 규제’ 혁파-수도권 중복 규제>개발 묶은 ‘30년 그물망 규제’… 첨단공장 증설 꿈도 못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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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6일 현재 반도체 공정시설 증설(위)이 한창인 경기 이천 SK하이닉스 반도체 제조 공장 공사 모습과 공장 부지 내에 직원 기숙사 등이 포함된 증설공사 직전의 모습(조감도). 수도권 규제에 가로막혔던 SK하이닉스 이천공장 증설은 지역주민과 회사 측의 규제 개선 노력으로 7년여만인 지난해 12월 증설 허가가 나와 공사를 벌이고 있다. 이천=정하종 기자 maloo@·SK하이닉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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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규제는 기업 규제정책의 ‘몸통’과 같다. 삼중사중의 중복 규제, 차별적 관점이 깔려 있는 과잉 규제, 수도권 내 양극화를 고려하지 않는 비합리적 규제, 산업 발전에 따라 현실성이 뒤떨어진 낡은 규제의 요소를 모두 구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은 발전, 비수도권은 후진’이라는 이분법적인 관점의 국토균형발전정책에서 벗어나 지역별 특성을 극대화하는 입체적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7일 경기도와 산업계에 따르면 수도권 규제 가운데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 같은 존재는 자연보전권역에 대한 중복 규제다. 수도권 규제의 시작점인 1982년 12월 제정된 수도권정비계획법(수정법)이 근원이다. 이후 수정법은 모든 공장의 신·증설, 대형 건축물 신축은 물론 지역 주민들의 사유재산권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규제가 됐다.

경기 여주시 점봉동 한국코카콜라 공장은 수정법이 만들어지기 전인 1981년에 들어섰다. 몇 년 전부터 공급물량이 모자라 공장을 증설하려 했으나 수정법에 가로막혔다. 수정법은 수도권을 과밀억제·성장관리·자연보전 3개 권역으로 나누고, 이 중 자연보전권역에선 연접한 기존·증설 공장 면적의 합산치가 6만㎡를 넘을 수 없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카콜라는 공장 증설에 1만9000㎡가 필요한데, 이를 추가할 경우 제한치를 넘어버리는 것이다.

여기에 1990년 제정된 산업집적활성화법(산집법)에도 자연보전지역에선 기존 공장 신·증설을 중소기업 3000㎡, 대기업은 1000㎡로 제한하고 있다. 1000㎡(302.5평)는 전원주택을 몇 채 지을 정도밖에 안 되는 면적이다. 아예 대기업더러 자연보전권역에선 공장 신·증설을 꿈도 꾸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 것과 같다. 규제가 생기기 전에 공장 터를 잡아 놓고 있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게 만드는 전형적인 중복 규제인 셈이다. 그곳에서 직선거리로 5㎞ 남짓 떨어진 여주시 가남읍 본두리의 KCC 여주공장도 유리공장 증설 계획이 몇 년째 보류되고 있다. 이곳 역시 수정법과 산집법 외에 업종 특성에 따라 수질 및 수생태계 보전법(수생태계법)의 규제를 받아 증설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 수도권은 토지 이용, 건축,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상수원 보호, 군사시설 보호라는 5개 범주의 규제를 받는다. 공장 신·증설 등 기업 투자를 억제하는 19개 법률, 58개 규제가 마치 그물망으로 전 지역에 드리워져 있다. 소관 부처만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등 7개에 이른다. 이마저도 이명박정부 시절에 다소 줄어든 것이다. 2009년 1월 규제합리화 조치에 따라 과밀억제권역과 성장관리권역에서는 기업입지 규제가 어느 정도 개선됐다. 2011년 3월 수정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공장입지, 대형 건축물, 개발사업, 연수시설 규제 등도 완화됐다. 그런데도 자연보전권역에서는 ‘성역’답게 공업용지조성사업과 첨단공장 신·증설 규제가 지속되고 있다.

자연보전권역은 한강수계의 수질과 녹지를 보전하기 위한 권역이다. 면적은 수도권 전체의 약 33%, 인구는 4% 정도를 차지하는 인구 과소지역이다. 경기도 내부 자료에 따르면 자연보전권역 규제로 투자가 중단·지연된 규모가 2002년 기준 64개 개업, 1조6940억 원에 이른다. 그렇다고 기업들의 입지를 완전히 금지하지는 못했다. 대규모 공장의 신·증설을 막은 채 소규모 공장만 허가를 내주다 보니 기업의 영세화·소규모화를 초래하고 난개발을 유발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전문가들은 자연보전권역의 규제는 자연환경 보전과 기업의 투자애로 개선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최대한 반영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수정법 개정을 통한 자연보전권역 내 공업용지조성사업 허용면적 확대(6만→100만㎡), 폐수처리기준 강화를 전제로 한 폐수처리기술에 따른 공장입지 허용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수정법, 수생태계법 개정안이 지난 2010년 국회에 제출됐으나 18대 국회 회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김은경 경기개발연구원 전략연구센터장은 “기업에 대한 입지 규제에서 배출 규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대규모의 계획적인 기업 활동을 유도해 환경적 관리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도모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반도체 제조공장(이천공장)이다. 지난 15일 찾아간 이천공장의 서쪽 지대는 공장 증설공사가 한창이었다. 아직 뼈대조차 세워지지 않았지만, 증설될 공장의 청사진은 이곳이 향후 SK하이닉스의 글로벌 경쟁력과 지역의 발전을 견인할 전초기지가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천공장도 자연보전권역과 팔당호 수질보전특별대책권역에 포함돼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006년 공장 증설을 추진했으나 구리폐수로 인한 수질오염 유발 문제로 증설이 좌절됐다. 하지만 지역민까지 거들고 나서면서 2010년 관련 법규 개정과 SK하이닉스의 구리공정 전환을 통해 지난 연말 드디어 증설 허가가 났다. SK하이닉스는 이천공장에 향후 8년간 15조 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지역 경제 발전을 열망하는 주민들의 바람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SK하이닉스의 노력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생생한 현장이다.

오승훈·박준희 기자 oshu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