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선 진도 침몰 참사>철문 가까스로 열어 학생들 구출… 승객들이 구조 앞장섰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사고 前평화로운 배 안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조도면 해상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 평온했던 모습이 공개됐다. 승객들은 세월호 내부에서 앞으로 닥칠 끔찍한 사고를 예상하지 못한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생존자 제공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뒤집어진 배…필사 탈출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3㎞ 해상에서 세월호가 침몰하자 해양 경찰 등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전남도 제공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140분만에 결국 침몰 16일 전남 진도군 조도면 해역에서 구조를 위해 어선들이 주변으로 몰려들었지만, 세월호가 물속으로 급격히 가라앉으며 뱃머리만 내보이고 있다. 해양경찰청 제공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해 물이 차오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자신의 안전보다 다른 승객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 앞장선 평범하지만 위대한 영웅들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큰 감동을 주고 있다.

16일 여객선 진도 침몰 참사 당시 생존자 박찬길(44) 씨는 동료인 윤칠상(56) 씨와 오영진(57) 씨와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회고하며 몸을 떨었다.

사고 때 이들은 3층 객실에서 쉬고 있었다. 이후 갑자기 배가 기울자 이상하게 느낀 이들은 쉽게 열리지 않는 철문을 아래에서 위로 가까스로 열고 탈출을 시도했다. 이들은 40∼50대 남성의 힘으로도 쉽게 열리지 않는 철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갇힌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인근 객실 문을 열어 학생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2층 로비에는 구명조끼가 없었고, 이들은 객실 안에 있는 구명조끼를 꺼내 승객들 손에서 손으로 전달해 어린 학생들과 여성들 위주로 입게 했다.

수영을 잘한다는 이유로 이들은 구명조끼마저 입지 않았다. 곳곳에서는 “살려달라”는 비명소리가 쇄도했고 점점 배가 가라앉는 상황이었다. 위로 탈출을 시도해야 하는 위급한 때에 마침 위층에 있었던 탑승객 김홍경(59) 씨는 2층으로 승객들을 끌어올리면 살릴 수 있다고 판단했고 “학생들을 먼저 구하자”고 외쳤다.

아래층에 있던 박 씨는 김 씨와 함께 마음을 모아 방에 있던 커튼을 찢어 묶어 연결해 약 15m가량의 커튼줄을 만들었고 박 씨는 무사히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하지만 선체가 기울어진 상태에서 위로 올라가고 싶어도 미끄러워 올라오지도 못하고 그대로 공포에 떨며 누워있는 학생들을 보고 박 씨는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이어 박 씨는 10여 명의 학생들의 허리춤에 커튼을 매서 위에 있는 김 씨 등과 힘을 합해 이들을 높이 6∼7ｍ가량의 위층 난간으로 올려줬고 무사히 위로 피신할 수 있게 했다.

구조 과정에서 커튼줄을 놓쳐 박 씨가 당황하던 차에 또 다른 생존자 김성묵(37) 씨가 소화전 호스 두 개를 연결해 약 15m가량의 줄을 만들어 밑으로 던졌고 학생들과 박 씨 등이 이 줄을 타고 무사히 올라올 수 있게 도왔다.

이들이 구한 학생들만 20여 명이 넘는다. 커튼과 소화전 호스가 바로 ‘생명의 동아줄’이었다. 박 씨는 “동료들 말고도 함께 다른 사람들을 구한 사람들이 몇 명 있었는데 누군지 모르겠다”면서 “나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고 모두가 도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김성묵 씨도 “끝까지 다른 이들을 도왔던 단원고 출신의 한 통통한 남학생이 기억에 남는다”면서 “위험한 순간에도 4층 객실 쪽에서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히고 올려보냈다”고 말했다.

김홍경 씨는 “선실에 남아 있는 승객들이 눈앞에서 떠나지 않는다”면서 “더 많은 사람을 구하지 못해 가슴이 미어진다”고 한숨을 내뱉었다. 이들은 현재 동료 3명을 제외하고는 각기 다른 병원에 흩어져 서로의 이름이나 얼굴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공통적으로 차가운 물이 밀려오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일심동체로 환상의 팀워크를 자랑하며 승객들을 구조했다는 따뜻한 기억으로 그 순간을 회상하고 있다.

한편 침몰 사건의 첫 사망자로 확인된 승무원 박지영 씨의 책임감과 희생정신에 대한 생존자들의 증언도 끊이지 않고 있다.

사고 당시 2층 매점에 있던 생존자 한승석(37) 씨는 “박 씨가 끝까지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고 응답도 없는 무선을 하면서 상황을 확인했다”면서 “자신은 수영을 못하면서도 다른 이들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했는데 구조되지 못해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사고 현장에서 구조된 안산 단원고 김모(17) 양은 “3층 로비에서 언니(박지영 씨)가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전해주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봤다”면서 “언니는 안 입느냐고 물어보니 선원들은 맨 마지막이다. 너희 친구들 다 구해주고 나중에 난 나갈게라고 말한 게 마지막이었다”고 말했다.

해남·진도 = 고서정·이근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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