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식 기자의 버디 & 보기>‘슬로플레이’에 대해…

프로나 아마추어나 골프라운드에서는 동반자가 중요합니다. 동반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날 플레이가 즐거울 수도, 짜증나는 하루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주 마스터스 때 얘기입니다. 최경주가 동반 파트너의 ‘슬로 플레이’탓에 리듬을 잃었다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1, 2라운드 때 잭 존슨과 함께 한 최경주는 경기 진행이 늦다고 경기위원으로부터 ‘경고’를 받았고, 이후 자신의 리듬이 깨져 2라운드에서 타수를 잃었습니다. 그는 ‘콕 찍어’ “존슨이 알아주는 느림보”라고 했습니다. 최경주는 3라운드 때도 기피 대상인 마이크 위어를 만났고 6오버파를 쳤습니다. 아마추어 이창우도 ‘꿈의 무대’ 첫날 중반까지 4오버파로 혼쭐이 나고 있던 중 13번홀에서 슬로플레이로 경고를 받은 뒤 남은 5개홀에서 무려 4오버파를 더했습니다. 리듬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는 슬로플레이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합니다. 일단 앞 팀과 한 홀 이상 차이가 나면 마샬이 달려와 ‘타임’ 체크에 들어가며 두 개홀에서 앞 팀을 따라잡지 못하면 경고를 줍니다. 이런 경고 후 다시 적발되면 ‘벌타’가 주어집니다.

PGA투어 선수 90% 이상이 이런 경고를 받고 있습니다. 매 대회가 끝나면 각 선수에게 이메일로 시즌 누적 경고 수를 통보해줍니다. 선수마다 연간 10회 경고를 받으면 2만 달러의 벌금을 냅니다. 2년 연속 10회 이상이면 4만 달러로 가중 처벌됩니다. 경고 수가 연간 9회 이내이면 벌금은 없고, 다음 시즌에는 0에서 카운트를 다시 시작합니다. 선수들이 낸 벌금은 기금으로 적립됩니다. ‘영건’ 노승열은 미국 진출 첫해 슬로플레이로 10개의 경고를 먹고 그해 말 2만 달러짜리 수표를 끊어서 PGA투어에 우편으로 보내준 적이 있다고 합니다. 경고는 대회 1, 2라운드에서 3명씩 플레이할 때 집중되는 편입니다.

PGA투어에서 악명 높은 느림보는 벤 크레인으로, 같은 조 선수들이 “오늘 잘 치긴 틀렸네”라고 하는 ‘기피 대상 1호’입니다. 재미교포 나상욱은 따분한 ‘왜글’병을 고치긴 했지만 여전히 플레이 속도가 느리기로 정평 나 있습니다. 최근 2승을 거두며 ‘백인 타이거’로 떠오른 패트릭 리드는 새로운 느림보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투어에서는 자신이 늦지 않아도 파트너나 앞팀에 의해 ‘희생양’이 된 경우도 많습니다. 슬로플레이는 어찌보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선수라면 감수해야 할 ‘복불복’과도 같습니다. 그럼에도 PGA투어가 선수들에게 이처럼 가혹하게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팬들을 위해서입니다.

주말 골퍼들은 선수들처럼 벌금을 내거나 벌타를 먹지는 않지만 그보다 더 가혹한 대가를 치를 수 있습니다. 친선 게임이 싸움이 되고, 골프 친구까지 잃기도 합니다. 골프가 신사의 운동이고, 배려의 스포츠라는 이유도 나보다는 동반자와 뒷 사람을 위하기 때문입니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