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구보타 오쿠주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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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용/논설위원

요즘 금융가가 ‘구보타 풍문’으로 들썩이고 있다. 구보타(久保田)는 일본의 대표적인 사케(청주) 브랜드다. 줄줄이 터져나오는 각종 사고로 ‘신뢰의 위기’에 직면한 금융업계에 웬 한가한 소리냐고 하겠지만 은행 도쿄지점 관련 얘기다.

들리는 말인즉 이렇다. 당국의 도쿄지점 검사 과정에서 모 금융지주의 전 고위층이 도쿄를 들락거리면서 임원들과 호화 만찬을 자주 했다는 진술이 나왔다고 한다. 서울과 도쿄 술자리에서 일본인도 구하기 힘든 ‘구보타 오쿠주(億壽)’를 즐겨 마셨다고도 한다. 이런 소문이 흘러나오면서 “구보타 중 최고급은 ‘만주(萬壽)’로 알고 있는데, 그 위에 오쿠주가 있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다” “만주는 국내 호텔에서 한 병에 40만 원 가량 하는데 오쿠주는 얼마냐”는 등의 쑥덕공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알려진 바로는 구보타 시리즈엔 ‘준마이다이긴조’로 불리는 최고 등급 만주와 중간이하 급(혼조조) ‘센주(千壽)’‘햐쿠주(百壽)’등이 있다. 일본에 정통한 지인은 “오쿠주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한 해 3번밖에 만들지 않는, 만주보다 배 이상 비싼 ‘구보타 센신(洗心)’이라는 희귀주가 있는데, 그걸 보고 오쿠주라고 하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은행 도쿄지점이 ‘비자금 금고지기’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어느 고위층은 도쿄지점장에게서 수십억 원을 상납받았다느니, 누구는 도쿄 고급 술집에 수시로 드나들며 신선놀음을 했다느니 등의 소문도 무성하다. 도쿄지점의 ‘특수임무’는 금융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 우리와 인접해 고위층의 ‘잠깐 휴식처’로 애용되고, 정·관계 ‘로비처’로도 활용된다. 고위층의 측근이 지점장으로 발탁되는 이유다. 저(低)신용 교민과 ‘한류(韓流) 자영업’ 한국인(뉴 커머)을 상대로 고금리 대출업을 하면서 떼는 리베이트는 ‘눈먼 돈’에 가깝다. 회계 규정이 없어 비공식 업무추진비로 쓰이거나 개인이 챙기는 경우도 있다. 한때 “일본에 가면 집 한 채 산다”는 말이 나돌았을 정도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시중 은행장을 모아놓고 불호령을 쳤다. 상주검사역 도입 등 현 인원으론 엄두도 못낼 초강력 규제들도 쏟아내고 있다. 이번 ‘금융의 위기’는 해당사와 임직원에게 1차 책임이 있다. 그러나 당국도 책임이 크다. 도쿄 사태는 오랜 악습이 곪아 터져 나온 예고된 비리인 만큼 사전 감독만 제대로 했더라면 막았을 ‘인재(人災)’다. 그래서 감독 당국의 맹성(猛省)이 더더욱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