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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4년 04월 25일(金)
“삶을 빚듯 한옥짓는 목소리 전하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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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한옥 한 채를 짓다’의 저자 황인범(오른쪽) 도편수와 한옥 ‘어락당’의 주인인 로버트 파우저 교수가 23일 서울 종로구 누하동 어락당 앞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작은 한옥 한 채를 짓다 / 황인범 지음 / 돌베개

“농사를 짓는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라 몸을 움직여 뭔가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나무를 만지는 걸 좋아했고요.”

‘황 목수’로 불리는 황인범(45) 씨는 대학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한 후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목수 일을 하게 된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문화재수리기능사 제3702호 대목 자격을 지닌 그는 대학을 졸업한 이듬해인 지난 1997년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 목수에 입문했고, 이후 지리산 실상사 약수암, 설악산 백담사 요사채, 경기 가평 현등사 2층 목탑 등 전국 곳곳의 문화재 수리 현장에서 목수와 도편수로 일해왔다. 그러다 2010년 우연한 기회에 서울 서촌(종로구 누하동) 한옥 건축 현장에서 도편수를 맡은 후 한옥 시공업체인 ‘서울한옥’을 차려 한옥의 산파 역할을 하고 있다.

23일 서촌의 한 한옥 수리 현장에서 만난 그는 “대학 4학년 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뭘까’ 하는 고민을 시작했다”며 “그러다 나무를 만지며 몸을 쓰는 전통건축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몸 쓰는 일을 잘하게 생기지 않았냐”고 되물었다. “그렇다”고 즉답을 하진 않았지만 듬직한 외모에 뚝심 있고, 서글서글한 인상을 지닌 그와 목수라는 직업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졸업 후 무작정 지리산 자락에 있는 사찰을 돌며 일자리를 찾던 그는 선암사 문화재 보수공사 현장에서 심부름을 하며 목수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문화재 보수 전문가로 자리잡았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을 고치는 일에 회의가 들었다. 그러던 중 자신의 이름을 알고 찾아온 서촌 주민에게 이끌려 처음 한옥을 지었고, 차츰 한옥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황 목수가 한옥 대수선 과정을 세세하게 풀어낸 책 ‘작은 한옥 한 채를 짓다’를 냈다. 책의 부제는 ‘서촌 파 교수댁 어락당 탄생기’다. 이 집의 주인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인 미국인 로버트 파우저(53) 씨로, 언어학자인 그는 이 집에 ‘말을 즐기는 집’이란 뜻의 ‘어락당(語樂堂)’이란 이름을 붙였다.

황 목수는 “서촌에서 처음 지은 한옥은 문화재 한옥이었다. 그때 ‘제대로 된 한옥 건축이 시작됐다’며 서울시장과 시 공무원들이 기자들과 함께 몰려와서 인터뷰를 하고 난리였다”며 “하지만 여섯 채 정도 짓고 나니 서촌에는 문화재 한옥보다는 도시형 한옥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과 몸이 도시형 한옥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을 때 동네 모임에서 알고 지내던 파우저 교수가 자신의 집을 1930년대식 도시형 한옥으로 고쳐달라고 요청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파우저 교수의 집을 대수선하기 위해 두 사람이 3개월 동안 붙어다니며 나눈 얘기를 비롯해 공사 진행 과정, 현장에서 기술자들과 나눈 대화 등을 세세히 기록했다. 황 목수는 “그동안 온갖 일을 겪으며 안정된 관점이 생겼고, 건축주인 파우저 교수의 한옥에 대한 관점도 확고해 ‘수리 과정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현장에서 스마트폰 노트 애플리케이션에 상황을 정리했고, 전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책에는 한옥을 짓거나 수리하기 위한 준비과정부터, 철거, 재료 선택, 주초석과 기둥 바로잡기, 설비공사, 지붕 만들기, 공간디자인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기술적인 설명과 함께 건축주와 설계자, 도편수, 분야별 기술자 등이 현장에서 의견을 조율한 내용도 자세히 기록돼 있다. 황 목수는 “한옥 건축이나 수리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 보니 비싼 돈을 들이고도 불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와 건축주가 상처를 받게 된다”며 “한옥을 짓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한옥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전하고 싶었다”고 책을 펴낸 동기를 밝혔다.

마을잔치로 벌인 어락당 상량식 이야기는 웃음을 자아낸다. 황 목수는 파우저 교수가 밤을 새워 써온 상량문을 보고 “이 양반이 상량문을 쓰랬더니 이력서를 써왔다”고 했다. 보통 상량문에는 집을 다시 짓게 된 경위와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 축원 등이 들어가는데 파우저 교수의 상량문에는 한국과의 인연, 학력, 경력 등이 담겨 있었으며 부모님에 대한 감사로 끝을 맺었다. 파우저 교수는 “평생 글을 써왔지만 상량문이란 형식의 글은 처음이었다”며 “내가 죽고 나서 다른 사람이 발견할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부모님 생각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글·사진 =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e-mail 김구철 기자 / 문화부 / 부장 김구철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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