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는 아이들· 이해 못받는 10대· 보호 받아야할 노인… 가족 사랑이 ‘묘약’입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 ‘소원’, ‘우아한 거짓말’,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한 장면(왼쪽부터)

우리 아이들이 굶고 있어요 / 아카하타 취재반 / 미래를 소유한 사람들

나는 감정이 있는 존재입니다 / 이브 엔슬러 지음 / 민음인

알츠하이머병 가족에게 다가가기 / 조앤 쾨니그 코스테 지음 / 부키


“고전적 의미에서의 가족은 우리 영토에서 소멸 중이다.” 이 시대 이야기가 아니다. 1895년 영국 신문에 실린 기사이다.

100년도 더 된 영국 신문기사 한 줄을 인용하는 것은 가족이 (우리 사회의 경우) 1990년대부터 빠르게 해체되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 내내 변해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가족이 혈족이 아닌 직계로 규정된 것도 17세기, 부르주아적 핵가족이 된 것도 19세기부터다. 물론 우리 시대 가족의 변화가 급격하긴 하다. 1990년대 초, 한 신문이 ‘가족해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뒤 우리사회도 담론과 문화 전반에서 가족의 변화를 빠르게 수용해왔다. 1996년 베스트셀러 소설 ‘아버지’에서 부권이 충격적으로 무너졌고, 엄마는 바람 났으며 (영화 ‘바람난 가족’), 혈연이 아닌 새 가족이 탄생했고(영화 ‘가족의 탄생’), 다문화 가족도 끌어안았다(완득이).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스위트 홈(Sweet Home)’ 신화에 묶여있다. 이상화된 신화의 문제는 현실의 변화를 잘못된 것으로 보고, 때로는 문제를 덮어버리는 데 있다. ‘가정의 달’을 시작하며 이번 주 나온 신간들로 변화 중인 우리 시대 가족의 스냅샷을 그려봤다. 행복한 가족보다는 그 뒤에 있는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에 초점을 맞췄더니 이런 단면들이 보였다. 고통받는 어린이, 이해못받는 10대, 보호받아야 할 노인, 그리고 역할 목록이 갈수록 늘어가는 엄마 아빠이다.

일본 일간 아카하타(赤旗) 취재반의 르포 ‘우리 아이들이 굶고 있어요’는 ‘스위트 홈’ 신화 속이라면 언제나 사랑받아야 할 아이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보여준다. 2010년 7월 오사카(大阪) 니시(西)구에서 두 아이의 시신이 발견된다. 엄마는 23세 싱글맘. 그녀는 6월 하순 아이들을 원룸 아파트에 두고 외출한 뒤 아이들을 방치했다. 경찰에서 엄마는 “아이 키우기가 귀찮아졌다”고 말해 일본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아카하타 취재반은 이 같은 사건의 이면을 추적해 심화되는 소득격차, 빈곤, 경쟁주의적 교육, 이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아동학대 문제를 드러낸다. 선진국 일본에서도 어린이 100명 중 14명이 빈곤상태에서 고통받고 있다고 한다.

‘버자이너 모놀로그’로 여성의 억압된 성 문제를 도발적으로 제기한 극작가 이브 엔슬러의 ‘나는 감정이 있는 존재입니다’는 ‘이해받지 못하는 10대’를 이야기한다. 한국의 평범한 가정이라면 10대 자녀가 식탁 메뉴와 텔레비전 채널권까지 쥔 최상의 ‘갑’이지만 사춘기 불안과 대입을 향한 한줄 서기 때문에 가장 공감받지 못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저자는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만난 10대 소녀의 인터뷰를 재구성해 일기, 편지, 혹은 시로 이들 이야기를 전한다. 저자는 “미국 청소년 다섯 명 중 한 명은 문제가 생겼을 때 찾아갈 수 있는 어른이 세 명도 되지 않는다”며 “십대는 일시적으로 정신병자가 된 것처럼 어른들이 바보취급하고, 입다물게 하고, 네가 느끼는 것을 배신하라고 요구받는다”고 말한다. 우리 10대들은 이들과 다르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저자는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자신의 속도로 움직이며 자신의 걸음으로 걸으라”고 충고한다. 10대 소녀를 향한 조언이지만 10대 청소년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보호받지 못한 어린이, 이해받지 못한 10대와 함께 노인도 가족 내 약자이다. 미국 최고의 알츠하이머 전문가인 조앤 쾨니그 코스테가 쓴 ‘알츠하이머병 가족에게 다가가기’는 6년간 알츠하이머에 걸린 남편을 돌보고 그 뒤 30년 넘게 치매 환자를 보살핀 경험을 토대로 효과적인 간호법에 대해 쓴 책이다. 우리나라 65세 인구 중 57만6000여 명이 치매를 앓고 2025년에는 1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는 시대에 가족이 어떻게 아픈 노인을 보살펴야 하는 지에 대한 혜안을 전한다. 환경을 바꿔라, 환자가 아직 의사소통이 가능함을 잊지 말라, 환자에게 남아 있는 능력에 집중하라, 환자의 세계에 살라, 환자의 삶을 풍요롭게 하라.

저자가 전하는 다섯가지 원칙이다. 한편 왕상한 서강대 교수는 ‘여자도 아내가 필요하다’(은행나무)에서 남편들에게 아내의 속마음과 가치를 이해하라고 조언하고, 구근회 오름교육연구소 소장은 ‘잘되는 집은 아빠가 다르다’(와이즈베리)에서 자녀 인성, 습관, 독서, 학습, 시간관리는 물론 진로결정까지 아빠의 역할을 조언한다. 이 시대 엄마와 아빠가 해야할 일의 항목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게 분명하다.

흑빛 문제들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결국 이들 책들이 근본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유대, 관심, 사랑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시대 가족의 변화를 절묘하게 담아내 영화로도 제작된 소설 ‘고령화 가족’이 겹쳐 떠오른다. 인생에서 실패한 중년의 루저 2남 1녀가 혼자남은 엄마 집에 말그대로 기어 들어온다. 엄마는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요구하지 않고 이들 남매들에게 매일 삼결살을 굽고, 된장찌개를 끓여 상을 차려준다. 말 그대로 ‘식구(食口)’가 된 이들은 엄마의 밥심으로 다시 세상으로 나간다. 역사 내내 가족의 틀이 변해도 가족을 구성하는 본질은 결국 사랑이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