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독일 같은 謝過 못한다’는 아베 궤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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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 유지/세종대 교수·정치학

한국은 세월호 침몰 이후 나라 전체가 ‘우울증’을 겪고 있는데 주변국에서는 이를 기회로 삼아 움직이는 이들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4월 30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유럽 6개국 순방의 첫 방문지인 독일에서 유력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과 인터뷰를 했다. 이때 “제2차 대전 후 아시아의 상황은 유럽과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독일의 전후 처리 방식을 일본은 따를 수 없다” “일본은 비록 독일과는 다른 형태지만 주변국들과 타협해 평화협정을 맺고 그에 따라 배상 문제에 관한 기준을 세웠다” “일본은 전후 아시아 국가들을 개발협력 형태로 지원했다”고 말한 것이다.

즉, 일본은 제2차 대전 후 주변국들과 평화협정을 맺고 사과(謝過)나 배상 문제를 종료시켰고, 그 후에는 주로 경제 협력으로 각 나라들을 지원했기 때문에 피해를 준 만큼 충분히 도와줬고 배상 문제는 모두 끝난 상태임을 아베는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그는 교묘하게 본질을 회피했다. 한국이나 중국 등 아시아의 나라들이 일본에 원하는 것은 독일과 같은 침략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다. 표면적으로는 경제 협력을 하면서도 뒤에서는 법과 교과서를 개악해 과거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하면서 억지로 영토 문제를 거론하는 그 외교 태도를 고치라는 것이 특히 한국과 중국의 요구다. 아베는 독일에서 일본의 핵심 문제점을 피해 궤변(詭辯)을 늘어 놓았다.

그리고 아베 발언의 배경에는 앞으로 한·일 국장급회의 등에서 제기될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한국 측의 태도를 견제할 목적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아베의 독일 궤변은 결국 ‘1965년도 한일협정으로 청구권 문제는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모두 종료됐다’는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과 중국에서는 일제강점기의 강제징용에 대한 보상 청구 소송에서 양국 법원들이 일본 기업에 지급을 명령하는 판결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것의 확정과 확산을 막기 위한 발언으로 이번 독일 궤변이 등장한 것으로 풀이된다.

보상 문제의 핵심은 개인적 청구권이 소멸됐는지 여부다. 그런데 1991년 8월 27일 오히려 일본 정부 쪽에서 개인적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국회 답변이 있었다. 야나이 슌지 당시 외무성 조약국장은 “1965년 한일협정에서 양국 간의 청구권이 최종적으로 완전히 해결됐다. 그런데 그 뜻은 양국이 국가로서 갖고 있는 외교보호권을 포기했다는 의미이고, 개인적 청구권 자체를 국내법적으로 소멸시켰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 곧, 개인이 상대국이나 기업에 대해 청구권을 청구할 때 개인이 소속된 국가가 외교적 보호권을 발동할 수는 없지만, 개인이 청구권을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한국인이 개인적 청구권을 주장해 소송을 일으키는 게 불법이 아니며, 현재까지 일본 내에서도 수많은 소송이 제기돼 왔다. 즉, 아베 정권이 주장하는 개인적 청구권 문제 소멸론은 일본 역대 내각의 입장을 부정하는 또 하나의 우경화 산물에 불과하다.

일본에는, 한국 법원의 보상 지급 명령 선고에 대해 ‘한국이 1965년 한일협정을 지키지 않는, 신뢰할 수 없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확산돼 있다. 그것도 아베 정권의 그릇된 선전에 의한 결과다. 물론 청구권 문제에 대한 한국 역대 정부의 입장도 있고, 문제가 그리 쉽지만은 않지만 한국의 사법적 입장으로는 1991년의 일본 측 답변과 같은 결론으로 개인적 청구권을 인정할 수 있고 그것이 합법적 판단인 것이다. 아베의 독일 궤변을 계기로 개인적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인식이 논리적으로도 한국과 일본 내에서, 나아가 국제적으로도 정착되도록 하는 홍보 노력이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