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문10답 뉴스 깊이보기>인공조명에 오염된 밤… 빛공해 A to Z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경기 하남시 학암동 남한산성 서문에서 바라 본 서울의 야경. 서울은 전체 조명지역의 45%가 국제조명위원회(CIE) 기준치를 초과한다. 김동훈 기자 dhk@munhwa.com

‘어둡지 않은 밤’ 생체리듬 깨 發癌 원인… 21개 세계 주요도시중 서울이 가장 밝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밤이 된 지구의 모습을 촬영한 장면을 보면, 지구를 수놓는 도시의 불빛이 더없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도시화 정도에 따라 지역마다 내뿜는 불빛의 밝기는 천양지차다. 한반도의 경우, 도시화가 진행된 남한은 밤에도 꺼지지 않는 불빛들로 환히 빛나는 반면 미개발지가 많은 북한은 밤이 되면 암흑에 묻힌다. 어두운 밤을 밝히는 인공조명은 인류가 이룩한 풍요로움을 나타내는 상징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밤에도 멈추지 않는 경제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도시의 조명들은 그 아름다움 이면에 적잖은 부작용을 안고 있다. 지구의 탄생 이래 100년 전까지만 해도 인류는 낮이면 활동하고 밤이면 쉬었다. 동식물도 그랬다. 인공조명의 과도한 사용이 인간을 비롯한 자연생태계에 혼란을 가져오는 ‘빛공해’ 현상은 어찌보면 필연적인 일이었는지 모른다. 빛공해의 실태와 관련 규제, 방지대책 등을 살펴본다.


1. 빛공해란

2013년 2월부터 시행된 ‘인공조명에 의한 빛공해 방지법’은 빛공해를 ‘인공조명의 부적절한 사용으로 과도한 빛이나 누출되는 빛이 국민의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을 방해하거나 환경에 피해를 주는 상태’라고 규정하고 있다. 인공조명에 의한 피해만을 말하고, 태양 등의 자연광에 의한 피해는 빛공해 방지법에서 정의한 빛공해에 포함되지 않는다. 빛공해 방지법 제2조는 빛공해를 초래할 수 있는 인공조명의 범주에 가로등, 형광등, 보안등, 광고조명, 장식조명 등을 명시하고 있다.


2. 빛공해의 폐해

빛공해는 사람의 생체리듬을 파괴한다. 사람이 자연스럽게 수면상태로 접어들기 위해선 몸에서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돼야 한다. 멜라토닌은 어두운 상태에서 생성되는 호르몬이다. 해가 지면 잠이 오고, 방 안의 불을 껐을 때 더 깊게 잠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야간에 빛공해가 지속되면 멜라토닌 호르몬 생성 억제로 생체리듬이 깨지고 불면증에 시달리게 된다. 이에 따른 피로, 스트레스와 불안 증세는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2007년 국제보건기구(WHO)산하 국제암연구기구(IARC)에서는 빛공해를 발암물질로 볼 수 있다고 인정했다. 빛공해는 동·식물의 생태계도 교란한다. 빛공해로 낮과 밤이 모호해지면 식물 번식률이 떨어지고, 양서류·포유류 등의 생식률이 저하된다. 밤하늘이 밝아져서 천체관측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세계 인구의 3분의 2는 도시 조명 때문에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없는 상황이다.


3. 빛공해의 종류

당초 목적으로 했던 장소 밖으로 누출돼 빛공해를 유발하는 조명을 ‘침입광’이라고 한다. 침입광은 강한 불빛이 외부에서 생활공간의 창문을 통해 들어가는데 불면증, 내분기계 장애 등을 유발한다. ‘눈부심’은 눈이 순응하고 있는 정도보다 강렬한 빛에 눈이 노출돼 순간적으로 시각이 마비되거나 불쾌감을 유발하는 현상이다. 운전자에게 일시적인 시각장애를 유발해 사고로 연결될 수 있다. ‘산란광’은 상향으로 누출된 빛이 대기 중의 수증기, 먼지 등에 의해 굴절·산란되면서 하늘의 전체적인 밝기가 밝아지는 현상이다. 자연 상태의 밤하늘은 육안으로 수천개의 별과 은하수가 분명하게 보이지만, 산란광이 심한 지역에서는 별을 거의 볼 수가 없다. ‘군집된 빛’은 한 장소에 과도하게 조명이 집중돼 혼란스러움을 유발하는 현상이다.


4. 우리나라 빛공해 실태

환경부가 2012년 국내 빛공해 실태를 조사한 결과 서울은 세계 주요 도시 21개 중 가장 밝다. 전체 조명지역의 45%가 국제조명위원회(CIE)기준치를 초과하고 서비스 상가와 복합쇼핑 건물 등 일부 조명은 CIE의 상업지역 기준(25cd/㎡)의 7배 이상이다. 부산 해안지역의 조명은 교외지역 기준(5cd/㎡)의 7∼20배에 달한다. 목포의 자연경관지역은 기준 대비 4∼80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해 국내 빛공해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옥외조명기구의 27%가량이 우리나라 빛방사허용기준을 초과하고 있었다. 국제기준(국제조명위원회)을 적용했을 경우 절반에 가까운(47%) 옥외조명기구가 기준을 초과한다.


5. 관련 민원은 얼마나

전국 6개 지역(서울·광주·경기·강원·충남·전남)을 대상으로 빛공해 민원 현황을 분석한 결과 빛공해 민원은 매년 늘고 있다. 연도별 추이를 보면 빛공해방지법 제정 논의가 본격화된 2009년 이후 민원이 급증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2007년까지 한 해 100건도 되지 않았던 빛공해 분쟁건수가 2008년 170여 건, 2009년 500여 건, 2010년에는 1000건을 넘어섰고, 2011년에는 1400여 건에 달했다. 주거지역이 많은 서울에서는 빛공해로 수면방해가 발생한다는 민원이 전체 빛공해 민원의 78%에 달했다. 농업지역이 많은 지자체의 경우 빛공해가 농작물 피해를 초래하고 있다는 민원이 대다수다. 경기는 전체 빛공해 민원의 83%, 충남은 88%, 전남은 91%, 강원은 90%, 제주는 48% 정도가 농작물 피해를 호소하고 있었다.


6. 해외에서는 어떻게 해결하나

미국은 1972년 애리조나주를 시작으로 100개 넘는 도시에서 관련 법규와 조례가 시행되고 있다. 애리조나주의 경우 옥외조명의 정도에 따라 전등갓을 씌우도록 규제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구역 성격에 따라 조도와 조명시간을 제한하고, 조명갓을 씌우는 방법, 사용 램프의 규정 등 기술적 규제뿐만 아니라 에너지 저감대책까지 세워놓고 있다.

호주는 환경보호법을 제정해 지나친 조명으로 인한 빛공해를 불법행위로 간주해 관리하고 있다. 일본은 1989년 오카야마(岡山)현에서 빛공해 방지 조례가 최초로 제정됐다. 이후 각 지역에서 빛공해 관련 조례들이 생겼고, 1998년에는 일본 환경성에서 빛공해 대책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영국은 청정근린 환경법에 따라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불빛에 대해 이의제기를 할 수 있도록 하고, 해당 지자체는 시정명령 조치 불이행 시 최고 5만 파운드의 벌금을 부과 받는다.


7. 환경부의 방지 대책

환경부는 빛공해 기준 초과율 27%를 2018년까지 13%로 떨어뜨리는 것을 목표로한 ‘빛공해방지종합계획(2014∼2018)’을 지난 14일 발표했다. 이를 위해 2018년까지 국토의 50%를 조명환경관리구역으로 지정키로 했다. 자연환경보전지역은 가장 엄격한 빛공해기준을 적용하고, 도시지역은 조명환경관리지역으로 지정해 관리한다는 계획이다. 조명환경관리구역 지정을 위해 인공조명이 미치는 영향을 분석·평가하는 빛공해영향평가를 실시할 방침이다. 환경부는 또 에너지 낭비를 초래하는 상향광이나 보행자에게 눈부심을 유발하는 가로등에 대한 제한기준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를 국가표준인증, 안전인증 기준에 반영하고 조명환경관리구역 내 조명 등을 단계적으로 교체해 나갈 계획이다.


8. 시행하고 있는 관련 법은

지난해부터 시행된 ‘인공조명에 의한 빛공해 방지법’은 인공조명으로부터 발생하는 국민 건강 또는 환경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고 인공조명을 환경친화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환경부 장관이 빛공해방지계획을 5년마다 수립·시행하고 빛공해방지위원회를 구성, 계획수립 및 제도정비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도록 하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관할 지역의 빛공해 방지를 위한 시·도 빛공해방지계획을 수립하고 빛공해방지지역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9. 도시가 어두워지나

최근 빛공해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한편으로 빛공해 저감 노력이 도시를 어둡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범죄가 유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밝은 거리가 범죄를 예방하고 어두운 거리는 범죄를 유발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하지만 빛공해 방지 대책은 빛공해가 심하고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의 조명기구를 교체해서 조명이 필요한 곳 이외로의 침투를 최소화하려는 것이지 단순히 도시를 어둡게 만들려는 취지가 아니다. 빛공해 방지대책 역시 빛을 줄이는 방향이 아닌 필요한 조명을 적절히 관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10. 개인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옥외조명 설치 시 환경과 이웃을 배려하는 일이 중요하다. 환경부는 ‘좋은빛 만들기’를 위한 8개 체크항목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빛이 위쪽으로 불필요하게 누출되지 않는가. 둘째, 주변지역 거주자의 수면방해 등 생활에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는가. 셋째, 주변의 농작물이나 가축 등에 직접 빛이 비칠 가능성이 없는가. 넷째, 야생동식물이 생식하고 있는 지역과 인접하지 않은가. 다섯째, 천문관측 등의 연구 활동에 피해를 주고 있지 않는가. 여섯째, 보행자·운전자의 눈에 광원의 빛이 직접 비칠 가능성은 없는가. 일곱째, 운전자가 보행자를 알아보는데 장해를 발생시킬 가능성은 없는가. 여덟째, 근처의 신호, 교통표식 등에 빛이 반사될 가능성이 없는가.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