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문10답 뉴스 깊이보기>‘재난안전통신망’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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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 진도 침몰 참사 이후 사고 조사 과정에서 재난대응 기관 간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11년째 도입이 미뤄진 재난안전통신망 구축을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졌다. 이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19일 세월호 사고 관련 대국민 담화에서 조속한 시일 안에 재난안전통신망 도입을 추진할 것이라고 언급했고 안전행정부 등은 그 후속조치로 올해부터 박차를 가해 2017년까지 재난안전통신 전국망 구축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 한 마디에 10년 이상 지지부진했던 사업이 갑자기 탄력을 받는 것은 희한한 일이지만 좌우지간 재난안전통신망 도입이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재난안전통신망이란 무엇이며 왜 11년째 도입이 미뤄졌는가, 세월호 사고 당시 재난안전통신망이 구축됐다고 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까, 과연 정부의 재난안전통신망 구축 계획은 차질없이 진행될 것인가 등 재난안전통신망 관련 의문점을 10문 10답 형식을 통해 알아본다.


1. 어떤 역할 하나

재난안전통신망이란 경찰, 소방본부 등 재난 관련 기관들의 무선 교신 방식과 망을 일원화하는 것을 말한다. 세월호 사고와 같은 대형 재난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통상 경찰, 소방본부, 해경, 군 등이 동시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각 기관 간 원활한 의사소통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의사소통이 매끄럽지 못해 피해를 키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컨트롤 타워 역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즉시 파악해야 하고 재난 수습에 참여한 현장 인원들에게 신속한 지시를 일제히 하달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 골든타임(사고 발생 직후 인명을 구조하거나 사고 확대를 막을 수 있는 짧은 시간대)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강력한 의사소통 수단이 요구됐고 재난안전통신망은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2. 도입 추진 계기

재난안전통신망 도입 추진의 계기는 지난 2003년 2월 발생한 대구지하철화재참사였다. 50대 중반의 한 지적장애인이 자신의 신병을 비관, 지하철 객실 안에서 방화를 했고 이로 인해 192명이 사망한 끔찍한 사고였다. 특히 이 사고에는 경찰, 소방본부 등이 투입돼 지하철 운영기관과 함께 구조 작업에 나섰지만 기관 간 의사소통이 원활치 못하다는 지적이 사후 재난 대응 검토 과정에서 나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재난안전통신망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특히 대부분의 기관들은 아날로그 초단파 무선통신(VHF) 등 다소 오래된 무선 교신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어 이를 디지털 방식으로 교체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3. 왜 11년간 연기됐나

재난안전통신망 도입 지연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업체 간 갈등이었다. 재난안전통신망은 특정 기술을 채택할 수밖에 없는데 이와 관련된 이해 관계로 인해 갈등은 불가피하다. 왜냐하면 특정 기술을 채택하는 순간 채택되지 못한 다른 기술을 바탕으로 사업을 전개한 업체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재난안전통신망 도입 과정에서 가장 먼저 거론된 기술은 테트라였다. 테트라란 재난사고 발생 시 활용할 수 있는 무선 교신 시스템으로 유럽전기통신표준협회(ETST)가 개발해 유럽형이라고도 불린다. 많은 회사들이 테트라 관련 사업을 하고 있지만 미국 모토로라는 이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상태다. 경찰과 소방본부는 재난안전통신망 도입을 염두에 두고 서울 등 대도시 위주로 테트라 시스템을 구축했다. 하지만 문제가 불거졌다. 테트라 도입은 특정회사(모토로라)에 대한 기술 종속 우려가 있고 테트라 도입 과정에서 특혜 의혹이 정치권에서 제기됐기 때문이다. 감사원에서도 이러한 점을 고려해 사업을 중단시킨 바 있다. 하지만 대안도 크게 없었다. 대안은 없으나 특정 기술 도입은 부담되고 경쟁체제를 맞추자니 여건이 여의치 않아 재난안전통신망 도입은 계속 연기된 것이다. 이명박정부에서도 안행부(당시 행안부)를 중심으로 재난안전통신망 도입이 진행됐으나 역시 똑같은 문제로 한없이 연기됐다. 안행부는 지난 2012년 기획재정부 산하 한국개발연구원(KDI)에 테트라, 휴대인터넷(와이브로) 등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의뢰한 바 있다. 하지만 KDI는 최근까지 이에 대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가 지난 27일 안행부 등의 발표를 통해 두 기술의 경제성이 없다는 내용의 최종 결론을 내렸다.


4. 재난대응 기관들 교신 방식

각기 제각각이다. 경찰은 테트라 기반의 시스템을 도입해 무선 교신을 하고 있다. 소방방재청도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테트라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 문제가 됐던 해경은 두 가지 방식을 병행하고 있다. 선박과의 무선통신은 VHF 방식을, 지역 간 무선 교신은 KT파워텔의 사용망(아이덴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전국의 지하철 운영 기관들은 VHF 방식을 쓰고 있다. 군도 VHF, 극초단파 무선통신(UHF)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제각각 다른 방식의 무선 교신을 하다 보니 기관 간 의사소통은 현실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다중 무선 교신 방식은 평상시에는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 같은 대형 참사가 났을 경우에는 한계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가장 단적인 예로 안행부 중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사고 초기 사고 현황 파악 면에서 무력한 모습을 보여줬다. 또 구조 작업 과정에서 미비점을 드러냈다. 재난안전통신망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는 말할 순 없지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던 것은 분명하다. 더욱이 사고 신고 접수 이후 구조 작업까지의 과정에서도 만일 재난안전통신망이 있었다면 구조작업에 큰 도움이 됐으리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5. 재난안전통신망 기술 표준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력한 재난 대응 관련 무선 교신 기술은 테트라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 기술을 도입해 재난안전망을 구성해놓고 있다. 미국에선 독자적으로 ‘앱코(APCO) 25’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와이브로를 재난안전통신망 기술 표준으로 추진하기도 했으나 최근 KDI의 예비 타당성 조사에서 불합격을 받았다. 와이브로의 경우 우리나라 민·관에서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어 기술 유출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전 세계적으로 보면 거의 세(勢)를 잃어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모토로라 독자 기술인 아이덴 방식의 경우 KT파워텔 등에서 활용하고 있지만 시장 지배력은 극히 떨어지는 편이다.


6. 외국의 재난안전통신망

유럽 대부분의 선진 국가들이 테트라 기술을 활용한 재난안전통신망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3년 당시 비교적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재난안전통신망을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11년째 이를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러는 사이에 유럽 지역 국가들은 재난안전통신망을 구축한 것이다. 중국 역시 테트라 방식의 재난안전통신망을 도입했다. 미국은 자국 독자 기술 표준인 앱코 25 방식의 재난안전통신망을 쓰고 있다. 결국 미국을 제외한 주요 국가들은 테트라 기술을 활용해 재난안전통신망을 구축해놓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공공안전 롱텀에볼루션(PS LTE)을 새로운 무선 교실 기술로 채택하려는 움직임이 많다. 다시 말해 테트라를 기반으로 하되 상대적으로 성능·기능이 뛰어난 PS LTE를 부분적으로 차용하고 있는 상태라고 보면 무난하다. 단 이와 관련된 전 세계적인 기술 표준화 작업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7. KDI의 예비타당성 불합격 판정

KDI는 안행부의 의뢰를 받아 테트라와 와이브로에 대해 예비 타당성 조사를 벌였다. 투자 대비 편익의 경제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사실 와이브로가 시장에서 점점 스러져가는 기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KDI의 예비 타당성 조사는 테트라에 집중됐다. KDI 내부적으로는 일찌감치 결론을 지었지만 안행부와 발표 시기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대통령 공약 사항으로 재난안전통신망 도입을 내걸었는데 특별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두 기술의 경제성이 없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세월호 사고가 터지기 전까지 안행부 등은 재난안전통신망 도입과 관련해 일하는 척만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8. 정부가 추진하는 LTE 기반

안행부 등은 오는 2017년까지 LTE 기반의 재난안전통신망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LTE는 일대일 음성·데이터 통신이 가능한 대표 4세대(G) 이동통신 표준인데 PS LTE란 여기에 일대다 통신·다대다 통신·기지국을 통하지 않은 단말기와 단말기간 통신, 기지국이 손상됐을 경우 자동으로 다른 기지국을 활용할 수 있는 기술 등의 기능을 추가한 재난 대응 무선 교신 기술이다. 하지만 PS LTE는 국제적으로 재난 대응 무선 교신 기술 표준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전 세계 이동통신업계는 PS LTE를 재난 대응 무선 교신 기술 표준으로 만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추세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정보화전략계획(ISP)을 수립한 뒤 2017년까지 단계적으로 LTE 기반 재난안전통신망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9. 구축 비용

정부가 추진키로 한 LTE 기반의 재난안전통신망 구축 비용은 현재로선 가늠하기 힘들다. 다만 테트라와 와이브로 구축 비용 계획을 감안해 추정할 수 있을 따름이다. 와이브로의 경우 총 1조100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다. PS LTE 구축과 운영비용 역시 이와 비슷한 수준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안행부 등은 LTE 방식의 재난안전통신망에 대해선 예비 타당성 조사를 면제해주기로 했다. 테트라와 와이브로가 KDI의 예비 타당성 조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았던 일이 재현되지 않도록 하는 방지 장치라고 볼 수 있고 한편으로는 재난안전통신망 구축에 대한 정부의 의지로도 읽힐 수 있다. 안행부에 따르면 정부는 우선 경찰과 소방본부 위주로 재난안전통신망을 구축했다가 이후 지하철 운영기관, 해경, 군 등 다른 기관에서 요청이 있을 경우 이를 추가하는 식으로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럴 경우 구축과 운영 비용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10. 2017년까지 구축 가능할까

현재로선 미지수다. 박 대통령의 담화 이후 정부의 재난안전통신망 구축 의지는 충만하지만 외부 변수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PS LTE가 상용화된 기술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제 표준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다른 나라에서도 기존 재난안전통신망에 PS LTE를 추가해 사용하는 것은 이런 점을 고려해서다. 더욱이 정부 로드맵에 따르면 미래창조과학부는 올해 7월까지 PS LTE에 대한 기술 검증 작업을 완료할 예정인데 이 역시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정부의 이번 발표가 졸속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기존 경찰과 소방본부의 테트라망을 어떻게 할 것이냐도 관건이다. 정부는 PS LTE를 구축해 나가되 기존 테트라와 연동하는 식으로 이를 해결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유회경 기자 yoolog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