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을 법정에 세운 ‘논픽션 드라마’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꽉 찬 스콥스 재판 법정 안에서 클래런스 대로(왼쪽)가 배심원단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글항아리 제공

신들을 위한 여름 / 에드워드 J 라슨, 한유정 옮김 / 글항아리

1925년 7월 10일, 테네시강이 굽이쳐 흐르는 테네시주 동부 산기슭의 작은 마을 데이턴 법정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38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에도 오전 8시 45분, 방청석이 꽉 찼다. 사람이 너무 몰려 바닥이 내려앉을 것을 걱정한 재판관은 재판 장소를 법원 잔디밭으로 옮겼고, 피고와 원고 측은 엄청난 수의 구경꾼 앞에 설치된 나무 연단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200여 명의 기자가 몰려, 하루에 전송된 전신기사 글자수가 당시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2만 자를 넘었다.

피고는 고등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기소된 24세의 과학교사 존 스콥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을 흥분시킨 주인공은 스콥스가 아니었다.

한때 미국 최연소 대통령 후보였던 65세의 열정적인 기독교 원리주의자인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과 최고 형사변호사이자 반교권주의 투사로 절정을 맞이한 68세의 클래런스 대로였다.

무료로 원고 측 지원자와 피고 측 변호사로 나선 이들은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재판을 ‘창조론 대 진화론’ ‘원리주의 대 진화론’ ‘종교 대 과학’을 내세운 역사적 재판으로 만들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버나드 쇼까지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혔을 정도니, 재판이 당시 어느 정도 ‘사건’이었는지 알 수 있다.

페퍼다인대 법학과와 조지아대 역사학과 에드워드 J 라슨 교수의 1996년 저작이자, 이듬해 퓰리처상 역사부문 수상작인 책은 이 역사적 재판을 소설보다 더 흥미롭게 써내려간 논픽션이다. 단순한 사건뿐 아니라 185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발표 이후 진화론의 역사, 진화론이 보수적 종교세력과 어떻게 대립했는지를 추적하고, 1차 세계대전 후 지식인 사회에 번진 자유주의 사상이 어떻게 진화론과 손을 잡고 ‘원리주의’에 대한 공동전선을 형성했는지도 살핀다. 여명기 미국 지식사회에 대한 입문서라는 평가가 가능한 이유이다.

세기의 재판이 벌어진 1925년. 세계대전 이후 사회가 보수화되면서 보수적 기독교 전통은 원리주의 운동과 합쳐져 세를 확장했고, 기독교 내부에선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수그러든다. 진화론과의 부딪힘은 더 격렬해졌고, 반동으로 자유주의자는 더 절박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자유주의 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이 우연히 테네시주 신문 특보에서 ‘테네시주가 고등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한다’는 기사를 보게 된다. ACLU는 곧 테네시주 신문에 성명을 내고, 그 일로 고발당하는 교사가 있으면 무조건 변론하겠다며, 이 법률을 법정의 심판대에 올리는 데 도움을 줄 테네시주 교사를 찾는다고 덧붙였다. 모든 비용을 지불하고 최고의 변호사를 붙여 직업을 잃는 일이 없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ACLU는 이를 통해 자유로운 교육권에 대한 판례를 만들고 싶었다.

이에 답한 것이 데이턴의 광산주 조지 W 래플리에였다. 진화론자인 그는 데이턴의 지역 유지를 찾아다니며 재판이 열리면 데이턴을 전국 단위로 홍보할 수 있다고 부추겼다. 이들은 재판에 세울 가장 적절한 인물로 스콥스를 찾았고, 과학교사로 진화론을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 스콥스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래플리에 등은 스콥스를 테네시주 법 위반으로 고소하고, ACLU에 도움을 요청했다. ACLU는 하버드대 명예총장까지 지원군으로 끌어들였고, 최고의 변호사 팀을 꾸렸다. 하지만 ACLU는 물론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원고 측을 무료로 지원하겠다고 나섰고, 브라이언의 참여 소식을 들은 클래런스 대로 역시 브라이언을 막겠다며 스콥스 측 무료 변론을 요청했다.

책의 하이라이트는 재판과 이를 전후해 벌이는 브라이언과 대로의 뜨거운 논쟁이다. 이들은 ‘대로는 무신론자이고, 나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브라이언), ‘네로가 박해와 법률로 기독교를 말살하려 했다면 브라이언은 법률적 깨우침의 길을 막고 있다’(대로)는 상호 비난부터, ‘아이들의 교육을 과학자의 과두정치에 맡길 수 없다’(브라이언), ‘인간의 정신에 계몽, 문화를 불러오려 했던 용감한 사람들을 불태워 죽였던 16세기로 후퇴하고 있다’(대로)는 신념과 원칙으로 팽팽히 맞섰다. 또 ‘유인원에서 인류로 진화하는 데 결정적인 잃어버린 고리를 증명하라’(브라이언) vs ‘성경직역주의는 지식 있는 기독교인조차 믿지 않는다’는 논리적 주장도 벌어진다. 당시 한 언론은 이들의 대결엔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며 대로는 브라이언이 과학에 문외한이라는 사실을 증명했지만, 브라이언은 스스로를 인간 지식을 초월한 자신의 신앙을 증명했다고 평했다.

결국 재판은 스콥스에게 100달러의 벌금형을 내리는 것으로 결론났다. 하지만 재판은 그뒤 진화론과 창조론의 불꽃 튀는 논쟁으로 이어졌다. 스콥스 재판이 일어난 지 약 90년. 기독교 사회인 미국에서는 여전히 진화론과 창조론을 둘러싼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종교적인 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하지만 책은 진화론과 기독교의 부딪힘을 넘어, 새로운 발견이 기존의 신념과 충돌할 때에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매우 드라마틱한 생각할 거리를 전해 준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