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예술에 완벽이란 없어… 더 깊은 표현 위해 끊임없이 노력”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정경화 씨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구기동 자택에서 “다쳤던 손가락이 완전히 나았고, 몸과 마음이 이전보다 훨씬 편안해졌다”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음악으로 봉사하는 일을 계속 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정하종 기자 maloo@munhwa.com

바이올린의 여제(女帝). 현(絃)의 마녀. 지난 40여 년 동안 그를 수식해 온 말이다. 무대에서 청중을 압도하는 그를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제가 무대에서 좀 열정적으로 했잖아요. 그런데 무대 밖에서 저를 만난 분들은 너무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하더라고요.”

지난 2일 만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66) 씨는 서그러웠다. 흔한 농담에도 깔깔깔 웃고, 작은 칭찬에도 고마워했다. 사진기자가 요구하는 갖은 포즈에 기껍게 응했다. 선글라스와 모자, 구두를 챙기며 “어떤 게 좋아요?”라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서울 종로구 구기동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동네. 비가 막 개어서 밖에서 사진 찍기 좋은 날씨였다. 그는 “내가 (하나님께 날씨 좋게 해 달라고) 일부러 시켰어요”라며 농담을 했다.

그의 집으로 들어가니 강아지 두 마리가 그에게 뛰어와 매달렸다. 두 강아지를 품에 안은 그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퍼졌다. 그는 음악가 이름을 지닌 두 강아지 ‘요하네스’ ‘클라라’가 주는 위로가 얼마나 큰지 모른다고 자랑했다.

정 씨는 이 동네의 한 빌라에서 3년째 살고 있다. 맞은편 빌라엔 언니 명화(70) 씨가 거주하고 있다. 명화 씨에게 전화로 안부 인사를 했더니 “동생이 오랫동안 미국(뉴욕)에 살았잖아요? 한국으로 오고 싶어 하기에 제 곁으로 오라고 했어요”라고 전했다. 이들 자매가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남동생 명훈(61) 씨와 함께 ‘정트리오’로 활동해 온 것은 유명하다.

정트리오의 활약은 1970년대까지 클래식 불모지였던 한국의 자존심이었다. 세계에 내놓고 자랑할 것 없던 시절에 정트리오는 구미 각국을 누비며 한국이라는 이름을 알렸다. 그 스스로 자부심이 크지 않을까. 그러나 그는 예술가로서 더 잘 해야 한다는 생각에 시달렸다고 했다.

“예술은 완벽이란 게 없어요. 제 연주가 마음에 들면 예술인으로 끝난 거잖아요. 예술가로서 좀 더 깊이 있는 표현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썼어요. 그러다 보니 항상 손이 아팠고, 몸이 괴로웠지요. 지금은 다 괜찮아요. 지금은 아픈 데 없이 편안해요. 이게 꿈이냐, 생시냐 싶을 정도로 행복해요.”

그는 지난 2005년 9월 23일 손가락 부상으로 연주 인생의 큰 위기를 맞았다. 러시아의 거장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키로프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기 위한 자리였다. 기자는 당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객석에 있었는데, 그가 바이올린 대신 마이크를 들고 무대에 나왔던 게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는 “리허설 도중 왼손에 통증을 느껴 마취제를 맞았으나 연주를 할 상황이 안 돼 포기한다”며 “오늘 관객은 27일의 협연에 무료로 초청할 것이니 양해를 바란다”고 침통하게 말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손가락을 어루만졌다.

“기억하시겠지만, 약속대로 27일 협연은 강행했습니다. 손이 아팠지만 그것을 생각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 이후 6년 동안 (연주 활동을) 중단해야 했지요.”

그 시련의 시기를 그는 후학 양성과 사회 활동을 하는 계기로 삼았다. 2007년 모교인 미국 뉴욕 줄리어드음대 교수를 맡았으며, 2010년부터는 명화 씨와 함께 대관령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역할을 하고 있다.

2011년 연주 활동을 재개한 그는 이전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안정된 연주를 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올해 봄부터는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임용돼 국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줄리어드대는 코칭만 해요. 아주 특별한 애가 들어왔다고 연락이 오면 가서 코칭을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주로 여기(서울)에 있어요. 지금은 이화여대에서 코칭을 하고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앞으로 실내악으로 나갈 건지, 솔로로 할 건지, 사회생활은 어떻게 할 건지 의논을 합니다. 사실 공부할 때도 중요하지만 학교를 나가서 어떻게 자기네들 상황을 잘 매니지하느냐에 따라서 길이 달라집니다. 그럴 때 도와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코칭을 하는 아이들이 오는 17일 이화여대 중강당에서 연주를 해요. 그런 연주를 잡아 줘야 아이들에게 자극도 되죠.”

13세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간 이후 줄곧 해외에서 생활해 온 그는 말할 때 영어 단어를 많이 섞어 썼다.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아서 알아듣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는 요즘 ‘나눔’을 화두로 삼고 자선음악회를 잇달아 열고 있다. 지난 5월 2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미국 피아니스트 케빈 커너 등과 함께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콘서트 ‘그래도 사랑’을 열었다. 오는 13일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르완다 어린이들을 위한 기부 콘서트 ‘그래도 희망’을 무대에 올린다. ‘그래도 사랑’과 ‘그래도 희망’ 중간 시기에 인터뷰가 이뤄진 셈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그렇게 예쁜 애들이, 그렇게 반짝이는 별들이 갔다고 생각하니까, 정말로 마음이 아팠어요. 어떻게 (그 아이들과 유족들을) 위로할까 하다가 콘서트를 열었죠. 그 전날엔 김효근(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선생님이 작곡한 ‘내 영혼 바람 되어’를 리코딩했어요. 그걸 디지털 앨범으로 만들어 수익금을 기부했으면 해요.”

‘내 영혼 바람 되어’는 김효근 교수가 가족을 잃은 슬픔을 치유하기 위해 만든 음악으로 외국시 ‘천 개의 바람(A Thousand Winds)’에 곡을 붙인 것이다. 정통 클래식만 고집했던 그가 이곡을 녹음한 것은 큰 변화다.

“지난 2000년쯤에 크로스오버(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접합)가 생겼는데, 그때는 제가 하도 꼿꼿하고 뻣뻣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클래식은 직선으로만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 달라졌지요. 희생된 아이들의 부모들에게 위로가 된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순수하게 아름다운 시와 곡이 제 마음에 와 닿았어요.”

그는 ‘그래도 희망’ 콘서트에서 커너와 슈베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그랑 두오’를 들려준다. 첼리스트 양성원 씨도 함께 슈베르트의 ‘피아노 트리오 E플랫장조 D.929’를 선보인다.

“오는 8월 말쯤에 르완다에 가 보려고 합니다. 아프리카에 굶어죽는 애들이 너무 많잖아요, 너무 비참하게. 그래서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직접 가서 상황을 보고 싶어요. 가서 듣기에 어렵지 않은 연주를 하고, 애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둘러보고 싶어요.”

이번 콘서트는 나눔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음악적으로도 그가 ‘정트리오’와만 했던 실내악을 선보인다는 게 뜻깊다. 그는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무척 궁금하다”고 했다.

특히 그가 최근 몇 년간 호흡을 맞춰온 케빈 커너와의 무대여서 클래식 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케빈 커너를) 3년 전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처음 만났어요. 쇼팽 콩쿠르에서 입상했다니까 톱 레벨 아티스트라고 생각했는데, 처음 앙상블은 기대만큼 좋지 않았어요. 알고 봤더니 바이올리니스트하고는 한 번도 (협연을) 안 했대요. 물론 학생하고는 했지만 하이레벨 파트너는 없었나 보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흥미 있다고 하더라고요. 같이 해보니까 습관이 안 돼서 어느 장르의 파트너십도 시간이 걸려요. 지금 3년째인데 이제 일치가 되는 그게 나와요. 어제 일균이(‘그래도 희망’ 콘서트를 하는 피아니스트 임일균)도 좀 봐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자기가 쇼팽을 (가르쳐) 준대요. 그래서 그 곡을 한 번 쳐달라고 했는데 정말 기∼가 막히게 쳐요. 정말 기가 막힙니다. 제가 이 사람 칭찬을 침이 마르게 하는데 인간성도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순수하고 정말 깨끗해요.”

그가 언급한 14세의 꿈나무 임일균 군은 이번에 그와 함께 드보르자크(네 개의 낭만적 소품 Op.75)를 협연한다. 13세의 첼리스트 유지인 양은 커너와 함께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 Op.20’을 연주할 예정이다. 임 군과 유 양은 그가 후원하는 음악 꿈나무들이다.

“(재능 있는) 아이들이 음악에서 좀 더 깊어지고 인간으로서 그레이스풀(graceful·품격이 있고)하고 험블(humble·겸손한)하며,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상황이 되려면 꾸준히 뒷받침을 해줘야 해요. 한국 사람들은 정말 재주가 좋습니다. 그러나 음악을 경쟁적으로 하면 멀리 갈 수가 없습니다. 구라파에 가면 뼛속까지 느낄 수가 있지만, 시민들이 예술에 조예가 깊어요. 그게 양식과 마찬가지예요. 클래식은 마음의 평화를 찾게 하고 영혼을 깊게 합니다. 사회생활에서 클래식 컬처가 없으면 안 돼요. 사회가 문란해져서 안 돼요. 한국 사람도 예술을 정말 좋아하지만, 국가적으로 보면 약해요. 나는 클래식 분야에서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고 싶습니다. 대관령음악제로 인연을 맺은 강원 횡계 지역 분들을 위해 작은 콘서트를 하는 것도 그 일의 하나예요. 시골 분들이 제 음악을 들어줄 때 기쁘기 한량이 없습니다. 그런 일을 앞으로 많이 하려고 해요.”

이렇게 말하던 그가 갑자기 손뼉을 치며 감탄을 했다. 옆방에서 들려 온 음악 때문이었다.

“저거예요, 저거. 너∼무 잘 하지 않아요.”

그의 집에 찾아 온 유 양이 커너와 협연 호흡을 맞추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옆방에 가서 유 양에게 “너무 잘 한다. 참 예쁘구나”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세계적 거장인 그가 어떻게 10대 아이와 협연할 생각을 했을까.

“정명훈 감독이 미국 뉴욕에서 리사이틀을 한 게 14세 때였습니다. 그때 19세였던 제가 데리고 나가서 같이 했습니다. 그게 어머니 아이디어였습니다. 이번 콘서트는 제 아이디어입니다. 저는 어머니 딸이니까, 하하!”

그의 어머니 이원숙 여사. 미국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면서 ‘정트리오’를 길러낸 이 여사의 스토리는 우리 국민들에게 전설로 남아 있다. 그에게 “어머니가 자식 교육에서 엄격하셨던 게 아니냐”고 물었더니 “아니었다”고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지난 2011년 타계한 어머니에 대한 그의 존경과 그리움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인 듯했다.

“어머니가 배화여고와 이화여전 가사과 나온 것 아시죠? 그렇게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자식들을 키우셨어요. 자식들이 무슨 말을 해도 어머니는 들어줬어요. 어머니가 우리한테 뭐를 시키잖아요? 그럼 우리가 안 했으면서도 했습니다, 하면 그냥 딱 믿어주세요. 너 그거 안 한 거 아니야? 그런 의심 같은 것을 안 했습니다. 아주 독특하셨죠. 그렇기 때문에 자식들은 한두 번은 몰라도 나중엔 거짓말을 안 하게 돼요. 또 칭찬을 정말 많이 하셨어요. 아무 칭찬이나 하는 게 아니었어요. 아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칭찬했어요. 자식이 못하는 것에 대해선 아무 말도 안 합니다.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은 섬세함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영어로 ‘멕슈어(Make sure)’라고 했어요. 또 다짐하고, 또 다짐했어요. 이게 정말로 완벽하냐. (정트리오의)매니저로서 항상 노력을 하셨지요.”

그는 1971년 영국에서 앨범을 처음 녹음했을 때, 그것을 베스트 레코드에 올리기 위해 어머니가 했던 노력들을 자세히 설명했다. 또 1972년 미국 뉴욕에서 당시 유망주에 불과했던 정명훈 리사이틀에 객석이 꽉 차게 관객을 동원하는 실력을 발휘했던 것을 되뇌었다. 명훈 씨의 누나인 경화 씨를 함께 출연시킴으로써 ‘음악신동 남매 콘서트’로 이름이 나게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그의 어머니였다.

그는 올가을 이후 빽빽한 해외 공연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10월엔 중국 상하이(上海)와 항저우(杭州) 투어에 오르고 12월엔 영국 런던에서 리사이틀을 갖는다. 런던 공연은 이곳에서 데뷔한 지 44년 만에 갖는 공연이어서 의미가 각별하다.

“영국에 가야겠다고 부킹을 했는데 갑자기 속이 울렁울렁하더라고요. 케빈 (커너)한테 우리가 가서 이거 개망신 당하는 거 아니냐고 했어요. 무슨 생각이 들었느냐 하면 옛날에 비외른 보그라고 테니스 선수 기억하시죠? 윔블던에서 수차례 우승하고 은퇴한 후 다시 나왔잖아요. 그렇게 사랑을 받던 사람인데 다시 나와서 잘못됐잖아요.”

그에게 “영국은 골수팬들이 많은 곳인데, 6년 공백에 그렇게 떨 것은 없지 않으냐”고 하니까,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답했다.

“긴장이 돼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무대에서 연주할 생각을 하니까 참 좋다고 하는 것으로는 표현이 부족합니다. 이런 찬스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기적적으로 손을 회복해서 다시 연주할 수 있다는 게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어떻게 이런 날이 나에게 왔나 싶습니다. 흠뻑 그것을 누릴 겁니다.”

그는 손가락 부상 등의 시련을 이겨낸 뒤에 과거보다 훨씬 편안해졌고, 음악 열정은 더 커진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은 울림이 컸다.

“매번 나는 이번 연주가 마지막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공연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음악하는 아이들이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관객들은 여유를 갖고 즐기며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전 세계 사람들이 여유라는 것 없이 사는 듯싶은데, 그것은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예술 속에서는.”

인터뷰=장재선 문화부장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