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환 기자의 부동산 깊이보기>고무줄 감정평가 철퇴 절실

‘1조1699억 원 대 2조5512억 원’

누가 봐도 어이가 없을 정도의 차이가 나지만 같은 물건(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 더힐’아파트)을 두고 나온 감정평가금액입니다. 1조1699억 원은 세입자 측이 감정평가법인에 의뢰한 금액이고, 2조5512억 원은 시행사 측이 다른 감정평가법인에 의뢰해서 나왔지요. 양측이 이 같은 감정평가금액을 두고 논란을 벌이자 국토교통부가 나서 두 감정평가금액 모두 ‘부적정’하다며 재평가를 했습니다. 한남더힐은 2009년 2월 분양된 10년 민간 임대아파트로 지난해 7월 의무 임대기간(5년)의 절반이 지나면서 분양 전환에 들어갔지요. 임대아파트는 입주민의 동의가 있으면 의무 임대기간의 50%를 넘기면 분양전환이 가능합니다.

한국감정원이 지난 2일 끝낸 한남더힐에 대한 감정평가 타당성조사 결과는 1조6800억~1조9800억 원이었습니다. 한국감정원은 민간 감정평가법인의 한남더힐 감정평가액이 적정가격 범위를 벗어나 현저하게 과소(세입자 측) 또는 과다(시행사 측)한 것으로 판명됐다고 발표했지요. 참고로 한국감정원의 이런 평가 결과에도 불구, 법적 구속력은 없습니다.

이에 대해 세입자 측과 시행사 측, 한국감정평가협회 등 모두 볼멘소리를 하는 상황입니다. 세입자 측은 한국감정원의 감정평가액이 국내 최고가 아파트(갤러리아 포레 분양가 3.3㎡당 4310만 원) 수준인 3.3㎡당 평균 4300만 원에 달한다며 반발하고, 시행사 측은 오히려 저평가됐다고 주장하고 있지요. 한국감정평가협회는 경쟁관계에 있는 한국감정원이 다른 법인들의 평가 결과에 대해 타당성 조사를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고요.

하지만 국토부는 고무줄 감정평가 결과를 내놓은 해당 감정평가사(법인)를 ‘부동산 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에 따라 엄정 조치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해당 감정평가사(법인 포함)에 대해 6월 중 감정평가사징계위원회 심의·의결 등을 거쳐 징계(감정평가사 자격등록 취소·업무정지 및 감정평가법인 업무정지·과징금 등)처분하겠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부실 감정평가에 대한 징계 강화와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현행 감정평가 시스템을 혁신하지 않으면 의뢰자의 입맛대로 감정평가액이 나오는 일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국토부나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감정평가협회의 말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임기응변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부동산에 대한 고무줄 감정평가와 비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제라도 재발 방지를 위한 강력한 ‘징계 철퇴’와 뼈를 깎는 자정이 뒤따라야 합니다. 한국감정원과 민간 감정평가법인 등을 포함, 현행 부동산 감정평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편할 것을 주문합니다.

김순환 기자 so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