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일 기자의 길에서 만난 세상>이쪽에선 깎아주고…저쪽에선 올려받고

지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즈음으로 기억합니다. 사회 전반에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을 때였습니다. 그 무렵 한 고위 공직자가 “주말에 고속도로를 나가보니 아직도 차가 많더라”고 했습니다. 사뭇 힐난조였습니다.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때이니 짐작건대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놀러나 다닌다’는 뜻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당시 불황의 그늘을 더 어둡게 했던 것은 밑도 끝도 없는 공포와 이에 따른 수요 급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모르긴 해도 주말에 고속도로에 차를 몰고 나온 여행자들의 건전한 소비는 불황 극복에 보탬이 됐으면 됐지 해가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세월호 사고로 인해 여행 수요가 급감하면서 관광업계 전반이 불황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단체 여행객을 상대하는 여행사는 말할 것도 없고, 리조트나 콘도미니엄, 펜션 등 숙박업소 등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과거 여행이 ‘소비 행위’쯤으로만 인식되던 때라면 여행수요 감소는 곧 국민들의 내핍이나 절약 등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졌겠지요. 그러나 이제 관광은 높은 부가가치에다 일자리 창출 효과는 물론이고 지역 경기를 진작하는 주요 수단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여행 수요의 급감이 곧 지역 경기 활성화를 가로막는 적신호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국내여행 기반을 확대하고 관광 수요를 창출하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정부는 최근 국내여행 총량의 증가 목표치까지 정해놓고 국내관광 수요 진작을 위한 다양한 정책수단을 속속 내놓고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봄, 가을에 ‘관광주간’을 정해놓고 이 기간에 관광지 입장료와 숙박요금 등을 대폭 할인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주말과 휴일에 고속도로 통행료를 더 비싸게 받는 할증제도입니다. 한국도로공사가 나들이 차량이 몰리는 주말의 통행량을 감소시킨다는 명분을 앞세워 주말 통행료를 5%씩 더 받는 할증제를 도입한 지 벌써 3년째입니다. 짐작하다시피 통행료 할증이 교통량 감소로 이어지는 효과는 거의 없었습니다. 설사 감소 효과가 있었다 해도 줄어든 차량의 운전자들은 통행료 5%를 더 내는 것에도 부담을 느끼는 저소득층이었겠지요. 그 사이에 도로공사만 매달 30억 원 이상의 추가 수입을 챙기고 있습니다.

할증제도 시행에 따른 고속도로 교통량 감소 폭이 미미한 만큼, 할증제도를 폐지한다 해도 차량이나 관광객이 그다지 늘어나는 건 아닐 겁니다. 주말 통행료 할증의 가장 큰 문제는 돈도 돈이지만, 정부 정책의 일관성 훼손에 있는 듯합니다. 한 쪽에서 국내여행 수요를 진작한다며 숙박료와 관광지 입장권 등을 깎아주면서, 다른 한 쪽에서는 주말이나 휴일에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관광객들에게 통행료를 더 비싸게 받아 챙기고 있는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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