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obal Focus >올 939만 명 응시 중국판 수능 ‘가오카오’

도로 곡예를 하듯 질주하는 오토바이에 한 학생이 매달려 있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한 학교, 바로 대입시험장이다. 시험장 주변은 응원을 나온 후배들과 부모들로 가득하다. 이들은 아는 학생들이 시험장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마다 환호를 하며 응원을 한다. 그런데 들리는 환호 소리가 “자유!(加油·힘내라!), 자유!” 한국어가 아닌 중국어다. 바로 지난 7일부터 이틀간(일부 지역 3일간) 진행되면서 세계인의 관심을 집중시킨, 중국 대입시험 ‘가오카오(高考)’ 현장의 모습이다.

매년 응시 인원만 약 930만 명. 말 그대로 세계 최대규모의 시험이 가오카오다. 시험 때마다 벌어지는 각종 해프닝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다. 무엇보다 우리 대입시험처럼 가오카오는 중국사회 민낯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현재 중국에서는 ‘좋은 교육 → 명문대 입학 → 우수한 일자리 → 자녀에게 좋은 교육 제공’이라는 순환구조가 정착되고 있다. 우리 대입시험의 모습을 닮아간다고나 할까. 문제는 중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이 한국보다 더 많고 복잡하다는 데 있다.

◆세계 최대규모의 시험장 = 매년 6월 7일부터 진행되는 가오카오는 약 930만 명 이상이 참여한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되는 시험을 순조롭게 치르기 위해 중국 각 지역마다 경찰이 배치되고 부정 시험을 막기 위한 첨단 장비가 동원된다. 올해는 총 939만 명이 응시했다. 이는 지난 2013년보다 27만여 명이 더 응시했는데, 약 3%가량 늘어난 수치다. 테러 우려가 어느 때보다 높아 경비도 크게 강화됐다. 올해도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시에서 대학생 18명이 대리 응시를 했다가 경찰에 체포됐지만 매년 가오카오에서 빠지지 않는 게 부정시험이다. 부정시험을 방지하기 위해 금속탐지기에서 감시카메라까지 각종 첨단 장비가 동원된다. 일부 지역에서는 여학생들에게 브래지어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각종 특이한 수험생 사연이 나온다. 올해는 5월 31일 버스강도를 잡는 과정에서 다쳐 가오카오를 보지 못한 장시(江西)성 이춘(宜春)시의 류옌빙(柳艶兵) 군 사연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르바오(人民日報)가 지난 8일 1면 기사로 버스강도를 잡다가 가오카오를 보지 못하게 된 학생의 사연을 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당국은 류 군을 위해 따로 유례없는 ‘개인 전용 가오카오’를 치르게 해줄 예정이다.

◆사회 모순의 투영 = 가오카오 응시자 수는 지난 5년간 줄어왔다. 2013년 약 100만 명의 고졸자들이 가오카오를 포기한 것으로 집계됐다. 상하이(上海)만 해도 2006년 가오카오 응시생이 약 11만3800명이었으나 올해 응시생은 5만2000명으로 반토막났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름없는 대학은 나와 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베이징(北京)대, 칭화(淸華)대, 푸단(複旦)대, 자오퉁(交通)대를 4대 명문으로 꼽고 있지만 본래 중국의 대학들은 전문성을 앞세운 전문대가 유명했다.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가 졸업한 베이징지질대학이 한 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각 대학들이 종합대학으로 변신하고 나서면서 서열화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유명대 쏠림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아예 가오카오 응시가 어려운 학생들도 적지 않다. 중국 사회는 ‘호적사회’다. 한 지역에 호적을 두면 이적이 사실상 어렵다. 2013년 이전까지 가오카오도 자신의 호적이 있는 곳에서만 치를 수 있도록 제한했다. 이에 그 동안 농민공(農民工·농촌지역에 호적을 둔 도시 근로자) 자녀들은 가오카오를 볼 기회조차 박탈당해왔다. 2013년 시진핑(習近平) 지도부가 들어서면서 이 제한이 폐지됐다. 이 덕분에 2013년에는 약 5000명, 올해는 약 5만 명의 농민공 자녀들이 가오카오에 응시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사회교육 불평등의 대물림 현상은 이미 심각한 수준에 다다른 상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구화에 대한 과민(?)반응 =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지난 7일자 논평을 통해 중국 당국이 당면 교육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가오카오에서 영어 시험 비중만 낮추면 되는 듯 여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에서 영어 교육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교육열 때문이지만 여기에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 당국의 체제이념적 고민도 담겨져 있다. 한국의 극성 아줌마 격인 중국 ‘다마’(大)들 사이에서 영어 광풍이 불면서 중국 사회에는 한때 영어 유치원 등 유아 영어 교육까지 판쳤다. 도를 넘은 사교육비 지출 등 지나친 교육열이 가져온 부작용도 문제지만 이런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서구적 가치에 물들어 중국 당국을 긴장시켰다.

실제로 당국은 2013년 10월 가오카오에서 영어 시험 점수를 크게 낮추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올 초 한때 오는 2017년부터는 가오카오에서 영어시험 항목을 없애려 한다는 소문이 돌기까지 했다. 교육부는 3월 가오카오 개혁추진 방안에 대해 언급하면서 관련 소식은 영어 시험 방식을 가오카오에서 한 차례 시험 보는 것이 아니라 연간 수차례 시험을 통해 평가하자는 방안이 와전된 것이라 해명했다. 그러나 중국당국이 가오카오에서 영어비중을 더욱 줄이려는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베이징= 박선호 특파원 shp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