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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4년 06월 27일(金)
불확실한 시대… 그러나 숨 쉬는 한 희망해야 한다
인디고 연구소, 사회학자 바우만을 만나다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  2009년 여름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영국 리즈 자택에서 인디고 연구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바우만은 멀리 한국에서 온 젊은 인문학도들을 위해 직접 준비한 음식을 내놓으며 따뜻하게 환대했다고 한다. 인디고 연구소 제공
▲  2012년 다시 찾은 지그문트 바우만 자택에서 바우만(뒷줄 맨 오른쪽)과 인디고 연구원들.
희망, 살아있는 자의 의무 / 지그문트 바우만 인터뷰·인디고 연구소
기획·정리 / 궁리


“저는 지나치게 오래 살아왔습니다. 많은 역사를 내 피부로 직접 느꼈지요. 서로 다른 제도와 체제를 가진 사회에 살았고, 극단적으로 다른 두 전체주의를 경험했지요. 삶의 끝자락에서 저는 오랫동안 이상적인 사회를 꿈꿔 왔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좋은 사회에 대한 저의 정의는 아주 간단합니다. 좋은 사회란 자신이 속한 사회가 현재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입니다. 자기비판적이면서도 잘못된 것을 개선하고, 변화를 원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좋은 사회입니다. 나머지 것들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완벽히 예측 가능한 미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희망하기를 멈추는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지난해에만 그의 책이 10권 가까이 번역 출간되며 ‘바우만 신드롬’을 만든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89) 영국 리즈대 명예교수는 끝없이 변하는 현재와 예측 불가능의 미래 속에서도 좋은 사회, 공동선을 위한 희망을 이야기했다.

책은 오는 8월, 창립 10돌을 맞는 부산 청소년 인문서점 ‘인디고 서원’에서 공부하며 자란 청년들 인문 집단인 ‘인디고 연구소’가 2009년과 2012년 바우만의 리즈 자택을 방문해 3차례 인터뷰하고, 수십 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은 결과를 정리한 인터뷰집이다. 2012년 세계적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 인터뷰집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에 이은 두 번째 작업이다.

중심의 논리로 보자면 서울이 아닌 부산, 학문에도 계급이 있다면 교수나 박사후 직업 전공자가 아닌 대학생까지 속한 청년 인문집단이 이메일 주소 하나만 갖고 시작해, 세계적 석학을 만나고 뛰어난 수준의 인터뷰집을 내놨다는 것이 놀랍다. 그런데 어쩌면 이런 작업 자체가 바우만의 핵심 개념인 ‘유동하는 근대’ 혹은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의 긍정적 결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기도 하다.

2000년에 발표돼 바우만을 세계적으로 대중적인 학자로 부상시킨 ‘액체 근대’는 현대 사회가 견고한 구조·제도·풍속·도덕이 해체되면서 혁명적 변화와 불확실성의 시대가 됐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100년 전 ‘고체 근대’ 시대에 르노, 포드, 푸조 등에 취직했다면 대략 40년 정도 일하고, 그곳에서 은퇴할 것으로 확신했지만 지금은 세계 최고 기업에서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 일하는 이들조차도 내년에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정체성도 견고한 무언가에 귀속되던 시대엔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가듯 만들어졌지만 액체 근대엔 끝없이 재성취를 요구받고 매순간에 삶을 걸게 됐다는 것이다.

바우만은 액체 근대의 어두운 면을 이야기했지만 부산의 젊은 인문학도들이 세계 최고의 학자를 만나 책을 내놓게 된 것은 기존의 관습이 무너진 자리, 네트워크화된 세계 속에서, 주변이 세계의 중심으로 치고 나갈 수 있는 유동적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박용준(31), 유진재(25), 윤한결(26), 이윤영(26), 정다은(25) 등 다섯 연구원들이 바우만을 만나기 위해 처음 이메일을 보낸 2009년엔 국내에 출판된 그의 책이 3, 4권에 불과할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번 인터뷰집은 바우만 신드롬 중에 나왔다는 점도 의미 있다. 이는 2007년부터 준비한 지젝 인터뷰책을 지젝이 한국에서 스타 철학자로 떠오른 2012년에 내놨다는 전례와 겹친다. 타이밍이나 행운의 결과라기보다는 공부 집단으로, 대중보다는 한발 빨리 이들이 한국 사회에 갖는 의미를 알아챈 것으로 볼 수 있다.

책은 전체적으로 바우만의 성찰과 사유를 그의 말을 통해 쉽게 전해준다. 그는 세계화, 소비주의, 불평등, 파편화된 개인, 위험을 피하려는 사랑,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현대인의 일상을 미시적으로 진단한다는 점에서 인기가 높지만 그의 저작이 그리 쉽게 읽히는 편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책은 바우만 입문서로 최적의 책이다.

또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즘을 피해 소련으로 도피했다가, 1970년대엔 조국 폴란드 공산당의 반유대 캠페인으로 국적을 박탈당하고 영국에 정착한, 현대사를 몸으로 관통한 깊이있는 노학자가 이 시대를 전반적으로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 만만찮은 시대를 통과해야 하는 독자들에게 유용하다.

“나의 소명은 보통 사람들에게 그들이 사는 세계가 어떻게 구성됐는지 보여주는 것”이라는 그는 액체 근대 개념부터 책임부재사회, 파편화된 개인, 불가능한 사랑 등을 전반적으로 훑은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주문했다. “액체 근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세 가지 조건 속에 던져졌다. 첫째 불확실성 속에 살아야 한다. 둘째 원칙적으로 측정되지 않는 지속적 위험 속에 살아가야 한다. 셋째 그렇기에 더욱 과감히 행동해야 한다. 자기 결단, 위험을 감수하려는 의지, 공동의 노력을 향한 책임의 통각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2000년 전 라틴어 격언을 인용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숨쉬는 한 나는 희망한다.’ 새로운 세계가 불가능해지는 지점은 오직 우리가 희망하기를 멈출 때이다.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오랫동안 희망해온 것들에 분명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인디고 청년들은 인터뷰집을 마무리하며 “바우만 선생님의 사유뿐 아니라 행간에 담긴 인간적인 면모가 함께 전해지기를 바란다”며 철학자 마크 롤랜즈의 말을 바우만 선생님께 바친다고 했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그가 형성하도록 도와준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인터뷰집 뒤에는 바우만 연구 학자들의 인터뷰와 글을 실어 바우만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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