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事가 萬事>산하기관까지 ‘내리꽂기’…장관 ‘집행인 역할’에 머물러

국무총리 지명자 2명(안대희·문창극)의 잇단 사퇴와 부총리 후보자(김명수)의 낙마 위기 등 박근혜정부의 ‘인사 참사’가 잇따르면서 그동안 물밑에 잠복해 있던 청와대의 인사 전횡과 파행에 대한 불만이 각계에서 쏟아지고 있다. 비단 부실한 인사 검증만이 아니라 정부 부처 국장급을 넘어 중간 간부, 산하 공공기관 인사까지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게 주된 불만이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의 공무원 인사권은 존중돼야 하지만 청와대의 무분별한 인사 개입이 박 대통령 스스로 공약한 ‘책임장관제’ 정신을 무너뜨린다는 지적이 많다. 그 결과 간부 인사 하나 제대로 못 챙기는 장관들은 극도로 무력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부처의 장관들은 위(청와대)에서 내리꽂는 인사들에 대해 절차만 갖춰 임명하는 사실상의 집행인 역할에 그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일반적인 예상을 뛰어넘어 ‘황당하다’는 반응까지 낳는 부적절한 인사 기용, 길게는 수개월씩 이어지는 장기 인사 지연 등 그동안 제기됐던 문제들의 이면에 청와대의 인사 전횡이 있었다는 얘기다. 또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심지어 새누리당에서까지 분출되고 있는 이 같은 불만과 논란의 중심에는 청와대 인사위원장이자 핵심실세로 불리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있다.

◆ 부처 간부 인사 좌지우지= 각 행정부처에서는 “이번 정부 들어 인사 사전검열이 심해졌다”면서 “사실상 후보군을 두 번씩 올리는 셈”이라며 인사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과거 정부에서는 국장급 인사를 할 경우 해당 부처에서 3배수 후보를 정해 청와대에 올리면 이 중 한 명이 승진 대상자로 찍혀 내려왔다. 하지만 이번 정부에서는 각 부처에서 청와대에 보낸 후보군 안에 청와대에서 염두에 두고 있는 후보가 있으면 괜찮은데, 없으면 청와대에서 한 명을 찍어 내려보낸다. 사전 후보군에 청와대가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면 해당자를 포함시켜 다시 후보군을 청와대로 보내고, 확정을 받는 절차를 거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해당 부처에서 사실상 두 번 후보군을 보내는 것으로, 청와대가 부처 국장급 이상 인사를 다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인사 사전 검열 시스템은 중앙부처 국장급 고위 인사뿐 아니라 산하기관장 인사에도 전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산하기관장을 임명한 A 부처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있었던 산하기관장 인사에서 해당 부처에서 올린 후보군에 청와대가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 포함돼 있지 않자, 청와대가 특정인을 지정해 포함시켜 다시 올릴 것을 주문했다는 것이다. 결국 A부처는 청와대가 주문한 인사를 보완해 후보군 명단을 청와대로 보낸 뒤 내락을 받아 기관장에 임명했다.

◆ 중앙부처 과장급 인사까지= 관가에는 중앙부처 국장 이상급뿐 아니라 과장급까지 인사권이 미친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 대선 당시 박 대통령 캠프에서 일했던 원외 친박계 인사는 “친분이 있던 모 장관을 만났는데, 장관이 부처의 국장급은커녕 과장급 인사 하나 마음대로 못 한다고 하더라”면서 “청와대에서 워낙 간섭이 심하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공기업 인사가 제때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청와대가 인사를 다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인사는 “책임장관제를 하기로 했으면 장관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면서 “힘은 예산과 인사에서 나오는데, 어차피 예산권은 없고 인사권마저 빼앗으면 장관이 뭘 가지고 힘을 쓸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중진 의원은 “요즘 각 중앙부처 과장급 이상 인사는 다 청와대에서 한다고 한다”면서 “결국 김 실장이 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 정부들을 봐도 청와대가 인사에 지나치게 개입하면 장관이 힘이 없고 공무원들이 청와대만 바라보는 현상이 벌어졌었다”면서 “지금은 정도가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 청와대, 장관의 대통령 독대 막았나= 지난해 10월에는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퇴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기초연금안에 대해 박 대통령과 면담을 신청했다가 비서실로부터 거절당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김 실장이 직접 나서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지만 김 실장이 장관들뿐 아니라 청와대의 다른 수석들의 대통령 독대까지 막고 영향력을 독점하려는 게 아니냐는 불만은 계속 터져나오고 있다. 한 여권 인사는 “지난해 말 이정현 전 홍보수석이 김 실장과 크게 다툰 뒤 홍보수석이 행사하는 인사 추천권이 제약을 받았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 여당 당직 인사·공천권 관여설= 새누리당에서는 최근 있었던 당내 핵심 당직자 인사에서 김 실장이 개입해 B 인사를 앉힌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한 여당 인사는 “김 실장이 당 업무에 대해 직접 핵심 인사들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 파다하다”고 전했다. 여권에서는 김 실장이 지난 6·4 지방선거뿐만 아니라 오는 7·30 재·보궐선거 공천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박세영 기자 g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