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일 기자의 길에서 만난 세상>차량에 붙여놓은 전화번호 ‘스팸문자 진원지’

하루에 수십 건이 넘었습니다. 휴대전화 스팸문자 말입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불법 인터넷 카지노 사이트의 접속을 권유하는 휴대전화 스팸문자가 갑자기 폭주했습니다. 스팸문자는 ‘카지노, 대박, 강원랜드…’ 이런 문구들과 인터넷 카지노 사이트 주소 등으로 이뤄져 있었습니다. 문자는 시도 때도 없이 날아왔습니다. 새벽에도, 한낮에도, 한밤중에도 문자 도착 알림음이 울렸습니다. 가히 ‘폭탄’수준이었습니다. 문자를 보내오는 전화번호를 그때마다 수신차단 번호로 등록했지만 매번 번호를 바꾸고 문자를 보내오니 그래봐야 소용이 없었습니다. 어느날 특정 시점부터 스팸문자가 폭주하는 걸 보면, 분명 어디선가 전화번호가 유출된 모양이었습니다. 대체 어디서 전화번호 정보가 나갔을까요. 그리고 왜 유독 인터넷 불법 카지노 사이트의 스팸메일만 이렇게 쇄도할까요.

스팸문자가 처음 밀려들기 시작한 날을 곰곰이 따져보니 강원 정선 지역으로 취재를 갔던 때와 딱 맞았습니다. 강원랜드 카지노가 있는 하이원리조트 인근의 정선군 사북, 고한 일대를 찾았을 때 차창에 붙여놓은 휴대전화 번호를 누군가 적어서 이 번호로 인터넷 카지노 사이트의 스팸문자를 집중적으로 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하이원리조트 측에 문의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런 사례가 빈발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이원리조트와 인근 숙박업소 주차장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사북, 고한 일대에 잠시 세워둔 차량에 적어둔 전화번호를 누군가 적어가서 그 번호로 스팸문자의 폭탄을 투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차량에 적어둔 휴대전화 번호로 스팸문자를 보낸다는 사실을 모르는 고객들은 자신이 묵은 숙박업소에서 전화번호 정보를 외부로 유출시킨 것으로 의심해 이를 항의하는 민원이 쇄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급기야 하이원리조트 측은 주차장에 폐쇄회로 카메라를 설치하고 직원까지 동원하고 있지만 적발이 쉽지 않아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불법 인터넷 도박사이트들의 스팸메일 발송은 거의 기업형 수준입니다. 지난 4월 적발된 판돈 규모 5000억 원의 불법 도박사이트의 경우는 아예 문자메시지 발송업체까지 차려놓고 스팸문자를 보냈는데, 여기에 사용한 개인정보가 무려 160만 건이나 됐습니다. 모르긴 해도 이런 강원 정선 일대로 여행을 갔다가 차량에 적어둔 전화번호 때문에 스팸문자에 시달린 이들도 적잖을 겁니다.

이렇게 개인 전화번호 정보가 불법 인터넷 도박사이트 업자들에게 흘러들어가는 경로가 확실하다면, 사법 당국과 강원랜드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는 하이원리조트가 집중적인 단속으로 막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혹 올 여름 휴가의 목적지를 정선이나 태백 일대로 잡았다면, 먼저 차량에 적어놓은 전화번호부터 가리고 가길 권합니다. 휴가가 끝난 뒤 불법 인터넷 도박 사이트의 스팸문자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는 없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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