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obal Focus >‘日 군국주의’ 향한 ‘中 민족주의’의 대반격

“르커우(日寇·일본 도적)에 민족이 힘을 모아 저항했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말이다. 르커우는 명, 청시대 일본의 해적에 대한 욕설이다. 일반인이라면 몰라도 국가를 대표하는 주석의 입에서 쉽게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지난 7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노구교(盧溝橋) 사변’ 77주년 기념식은 더도 덜도 아닌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비난의 장이었다. 시 주석이 언급한 르커우는 일본의 과거만 지칭한 게 아니다. 그는 “중국 인민의 항일(抗日) 전쟁과 세계의 반(反)파시스트 전쟁이 승리로 끝난 지 7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나 전쟁 때 희생당한 무고한 생명을 무시하면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며 현 일본 정부의 행태를 강력히 비난했다.

올 7월 들어 중국의 대일 비난 여론전은 국가의 거의 모든 역량을 동원한 전면전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중·일 양국 간 ‘국지전’ 가능성은 이제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중국의 노림수는 과연 무엇일까?

중·일 양국 갈등은 해가 갈수록 심화하고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갈수록 우경화하는 일본 현 정권이 근본적 문제지만 중국의 굴기와 함께 ‘중화(中華)민족주의’의 발아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그만큼 중국은 실익보다 자존심 문제인 역사문제, 영유권문제에서 갈수록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올해는 청나라의 패배로 끝난 청·일전쟁의 120주년이 되는 해다. 1937년 7월 7일 발생한 7·7 노구교 사건이 발생한 지도 77년째다.

이에 중국에서는 올 연초부터 120년 전 청·일 간 갑오전쟁을 되새기며 일본 군국주의 발호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당 기관지인 런민르바오(人民日報) 산하 주간지 환추런우(環球人物)의 지난 2월 7일자 특집기사는 현 일본에 대한 중국 지식층의 인식을 대변한다. 잡지는 “일본은 갑오전쟁의 승리를 계기로 담을 키웠다. 이어 본격적으로 중국을 침략하고 러시아와 전쟁을 벌였다. 뒤에 종전을 앞두고 러시아는 실제 일본군을 격퇴했지만 중국은 그러지 못했다. 현재 일본이 중국을 우습게 보는 것은 아직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생각을 꺾을 수 있는 것은 실제 실력을 보여주는 것뿐이다”고 밝혔다. 일본과 ‘일전불사(一戰不辭)’는 중국 군내 강경파들이 일시적 감정에서 하는 말이 아닌 것이다.

연초 중국의 대일 여론 공세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시작됐다. 1월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賓) 역사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개관했다. 2월에는 외신기자들을 데리고 난징(南京)대학살 기념관을 탐방했고 ‘항일전쟁 승리 기념일’(9월 3일)과 ‘난징대학살 희생자 국가애도일’(12월 13일)도 지정했다. 본래 중국과 일본 간의 갈등은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영유권 분쟁이 모태다. 역사문제는 부차적이었다는 의미다.

지난해만 해도 댜오위다오 해역에 대한 중·일 양국 간 해경순시가 갈등 표출의 형태였다. 대일 역사 여론전이 초점이 된 것은 지난해 말부터다. 여기에는 중국의 세밀한 전략이 숨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제무대에서 일본의 외교력은 중국보다 한 수 위면 위지 아래가 아니다. 댜오위다오 갈등에서 더 많은 국제적 지지를 얻기 위해 중국은 일본의 과거와 현재의 군국주의 성향을 문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전략 속에 당장 중국의 눈에 들어온 것이 한국이다. 한국은 중국처럼 일본의 침략을 받았다. 특히 한국은 일본을 지지하는 미국, 중국이 진정 두려워하는 상대인 미국의 맹방이다. 이 같은 배경에서 1월 안중근 의사 기념관 설립에 이어 6월 광복군 기념비 설립까지 일련의 한·중 역사 공조가 이뤄졌다.

여기에 일본은 7월 들어 마침내 패전국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위권을 확보하면서 더욱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 일본 내각은 지난 1일 헌법해석 변경을 통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을 결정했다. 중국은 즉각 반박했다. 국제문제 전문가인 저우융성(周永生) 중국외교학원 일본연구센터 부주임은 중궈칭녠바오(中國靑年報)에 “일본이 자기 영토 밖에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세계 평화에 잠재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며 “(전쟁의)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고 말했다.

중국 대일 여론전도 격화됐다. 중국 당국은 지난 3일부터 일본 만주군 전범의 자술서를 45일간 매일 1건씩 공개하고 있다. 일정에 따르면 공개는 오는 8월 16일까지 이어진다. 8월 15일 일본은 패전을 선언했고 16일은 일본 대본영이 종전을 명령한 날이다. 지난 9일 7번째 전범의 독가스를 살포해 주민 100여 명을 살해했다는 자술서가 공개됐다. 중국 당국은 또 지난 6일 난징대학살 희생자를 인터넷에서 추모하는 사이트를 개설했고 앞서 4일에는 항일전쟁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오는 2015년 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을 맞아 중국은 현재 한국은 물론 러시아 등에 승전 기념행사를 공동으로 진행하자고 제안해놓은 상태다. 중국의 대일 여론 공세는 최소 2015년까지 그 열기를 더할 태세다.

베이징 = 박선호 특파원 shpark@munhwa.com